찾으면 살리라
암 5:1-6
아모스는 유다 땅 베들레헴 남쪽 약 12마일 정도 떨어진 드고아(Tekoa)에 살면서 양을 치던 목자였으며(1:1),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습니다(7:14).
아모스는 변방의 목자 출신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모스를 선지자로 부르셔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아마도 아모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아모스는 남왕국 유다 사람으로서 북쪽 이스라엘에 올라가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예언한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편애가 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두 형제로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부르셔서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아모스는 먼저 이방 나라들인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과 암몬과 모압의 죄를 지적하면서 심판을 선언하였습니다(1:3-2:3).
이방 나라들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한 아모스는, 이어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였습니다(2:4-16).
아모스서의 책망과 심판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과는 다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모스가 예언활동을 했던 당시의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로 이스라엘 최대의 번성기였습니다(왕하 14:23-29).
하지만 외부적 환경이 좋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적 불의와 도덕적 타락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의인을 팔았으며 신 한 켤레 값을 받고 가난한 자를 매매하였습니다(2:6).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머리의 티끌까지도 탐을 내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젊은 여자에게 드나들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기도 하였습니다(2:7).
심각한 도덕적 부패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문제는 도덕적인 부패가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 깊은 원인을 찾아보면 거기에는 영적 암매와 부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대하셨고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저버렸으며, 하나님이 내신 은혜의 제도와 방도들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습니다(2:8-12).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2:13-16).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아모스 선지자는 우리의 인생에서 찾고 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찾아 소유한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잃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은 허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목숨과도 같은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찾아도 되고, 찾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꼭 찾아야 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모스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고, 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또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토록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은 죽은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1절)
아모스 선지자는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애가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 이를 슬퍼하며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아모스가 슬퍼 탄식하는 것은, 지금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는데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일으켜줄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지금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하며 애가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때인데, 이 때는 사회적으로 애가를 부를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보통 한 나라가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슬퍼할 정도면, 나라가 외적에 의해서 망할 위기에 처하거나,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고생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요즘 중남미에 위치한 온도라스를 도망나온 난민들 몇천명이 과테말라 시티에까지 왔다고 합니다. 이 정도되야 온도라스는 살만한 땅이 아니라고 슬퍼할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가 살던 그 당시 북이스라엘은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에 아주 부하였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적들도 없었고, 내부적으로는 부를 누리고 있던 때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쓰러져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은 소유한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잃어 버리게 되니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사회가 불의하게 된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 때에 국가가 강하고 부자였지만, 도리어 불의한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저울의 무게를 속여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부하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백성들이 그 부함을 누렸던 것이 아닙니다.
강한자들은 더욱 부해졌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를 당하여서 더욱 가난해져서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세상적으로 부하고 강해졌지만, 하나님을 잃어 버리고 영적으로 죽음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악된 삶을 살게 되고, 결국 언제 망할지 모르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둘째 :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산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4절)
(히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가져야 할 믿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의 특징은, 늘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상급이 되심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심으로 상을 주셨습니다.
그러한 상급은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영생을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실 때에 안타까웠던 것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명도 주시고,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상급으로 주실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세상적인 것들을 구하면서 살다가 이스라엘이 죄악 가운데 망하게 된 것입니다.
(마5: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구하는 것이 모든 삶의 최우선적인 과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그 마음이 즐거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105:3,4)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기뻐하며,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그 얼굴을 보면 즐겁고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꾸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기분이 좋고, 힘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의 마음은 즐거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을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기를 꺼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제발 하나님을 찾아 주기를 원하신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셋째 : 가지 말아야 할 곳도 있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5절)
하나님은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특별히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고, 신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꿈에서 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에 요단강을 갈라서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이를 기념하며 돌비석을 세운 곳입니다.
브엘세바에서도 하갈이나, 야곱, 엘리야 선지자 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지 말라고 합니다. 과거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는데,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상을 세워놓고, 섬기는 장소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과거의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장소가, 우상을 찾는 장소로 바뀐 것입니다.
(시105:3,4)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과거에 하나님을 찾고 경험했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