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보리암(錦山菩提庵) /전통사찰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초당을 짓고 수행,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 초암은 보광사(普光寺)라 함.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錦山)이라 하였다.
1660년(현종 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菩提庵)이라 개액(改額)하였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 1969년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음..한국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정리)
원효(617~686).
절에 대한 알량한 지식이 없을 땐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고 흘렸다.
이젠 알량한 지식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의문이 든다.
신문왕 3년, 683년이면 원효 나이가 66세 노인이다. 남해 이곳에 들어 오려면 배를 이용하고 몇 시간을 걸어야 한다.
세상을 떠돌며 수행하기엔 원효대사 나이가 많다.
이성계(1335~1408, 1392년 왕위/고려, 1393년 조선을 국호로 삼음).
이성계 본거지는 동북면(지금 함경도 지역)이며 고려 북방 경계를 책임진 장수이다.
북방을 평정하고 남부지역으로 들어오는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남으로 내려왔다.
함양, 상주, 경산 등으로 올라온 왜구를 황산에서 섬멸, 황산대첩이다.
(상주, 경산/지금 경상북도. 함양/경상남도이지만 전북 남원시 운봉과 가깝다. 황산은 지금 남원시 운봉읍)
이성계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한가롭게 섬 남해로 들어와 100일 간이나 기도할 형편이 아니다.
만들어진 이야기든 사실이든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시비하지 말라는 말도 듣자.
남해 보리암은 기도처로 유명하고 사철 관공객이 끊이지 않는다.
경내에 볼 만한 것이라고 그리 없지만 금산 정상 주위를 어슬렁거리면 보리암이 아름다운 절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금산은 말하면 무엇하랴!
여러 차례 온 곳이라 절만 보고 가려고 하였지만 쌍홍교, 좌선대, 상사암, 단군성전 등을 돌아 봤다. 금산은 과연 금산이다.
보리암..쌍홍문..좌선대..상사암..단군성전..보리암(이성계 기도처, 산신각)
금산 절벽 좁은 공간에 절집이 크게 들어서 있다.
극락전
보광전과 예성당은 마주 보고 있으며 등을 달아 놓아서 전각 사진 직기가 쉽지 않다.
보광전
남해 금산 보리암 목조 관음보살좌상 불감 /경남 유형문화재
독립된 관음보살상, 선재동자와 용왕이 협시한 불감 형식의 작품. 현재 불감 윗부분은 없고 남은 형태도 완전하지는 않다.
이와 같은 형식은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불감(1637-1644년)을 시작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행하였다.
관음보살상은 통통한 뺨, 보발이 없는 점, 대칭인 연판, 양 측면에 늘어진 옷자락 등에서 조선 전기 특징을 계승한
조선 후기 17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한 관음보살 삼존 도상의 특징, 사례가 적은 목조 불감, 17세기 제작 시기 등 자료 가치가 높다.
향나무 금칠로 좌고(座高, 앉은 높이) 46cm, 슬폭 23cm. 슬폭은 앉은 자세에서 무릎 폭을 말하는 것 같다.
예성당 문은 잠겨져 있다. 글씨는 고산큰스님 솜씨.
범종각은 보광전 옆에 있다.
관음보살상과 상주은모래해수욕장
예성당
극락전, 오른편에 이성계 기도처가 보인다.
이성계 기도처
남해 보리암 전 삼층석탑菩提庵前三層石塔 / 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
높이 2.3m. 화강암, 고려 초기 양식이다.
각(角) 하성기단(下成基壇)은 단일석(單一石)으로 2구(軀)에 안상이 새겨졌고 옥개석 처마 받침은 3단이다.
단층 기단(基壇) 위 높이 1.65m의 우아한 탑신(塔身)은 각 층마다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새겨졌고
상륜부(相輪部)에는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683년 원효가 금산 개산(錦山開山)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로왕비(金首露王妃)인 허태후(許太后)가 인도의 월지국(月之國)에서 가져 온 파사석으로 세웠다고 한다."
전해 내려온 이 이야기는 말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월지국은 마한 54국 하나이기도 하고, 인도에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상사암에서 본 보리암
화엄봉에서 본 보리암
보광전 뒤편에 석불전이 있다.
선은전은 두 비를 보호하고 있다.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 대한 증흥 소덕 축성비 /경남 문화재자료 제277호
이 비는 1903년 윤정구란 사람이 세웠다. 이 비문에 이 터에서 이성계가 100일 기도 후 왕위에 올랐다란 이야기가 있을까?
비문 내용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였지만....
비석 크기에 비하여 귀부는 초라하다.
선은전에서 본 보리암
이씨기단, 실제 이성계는 이곳에서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내 추측일 뿐이다.)
왼편은 예성당, 오른편은 극락전
향성각, 종무소이다. 적혀진 기도값이 나를 씁쓰렙하게 만든다. 정말 기도 효험이 있을까? 그저 마음 편하고자 하는 짓일까?
요행을 바라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산령각, 보광전/향성각 뒤편에 있다.
단군성전은 개인 사찰 같은 느낌이다.
보리암은 상주쪽 바다를 바라보지만 단군성전 그 반대편, 앵강만과 호구산을 바라본다.
2023년 4월 14일 목요일 오전
금산 정상부를 다닌 경치 사진은 '산행후기'에 올렸음.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