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 & Reader 실록 윤석열 시대
“용산 이전 겨우 막았는데 ‘도사’들이!”…어느 윤핵관의 절규
카드 발행 일시2025.11.07
실록 윤석열 시대
제16회 용산 이전의 전말, 그리고 무속①
어? 아닌데?
2022년 3월 20일 TV를 지켜보던 여권 고위 인사 A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날은 인수위가 꾸려진 뒤 맞은
첫 일요일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소 격차인 0.73%포인트 차로 대선 승리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기자회견이 예고된 날이기도 했다. (이하 경칭 생략)
A가 놀란 건 그 기자회견 직전 TV 화면 아래 흐르던 자막을 보고서였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이란 자막이었다.
취재 똑바로 안 하는구먼. 아니면 방송사고인가?
그는 그 자막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윤석열로부터 직접
“용산은 문제가 많더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1년여전인 2021년 1월의 청와대 설경.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건 윤석열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식언(食言)할 생각이 없었다. 당선 직후부터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등으로의
이전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선 국면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된 적 없었던 장소가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용산이었다.
다음은 A의 이야기다.
제가 보기에 용산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용산 이전을 서두르면 안 되는 이유를 적은 서류들을
한 뭉치나 들고 윤 당선인을 설득하러 갔어요. 그런데 윤 당선인이 먼저 ‘용산에 가보니까 문제가 많더라고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 용산으로 가지 않겠다는 뜻이구나’라고 이해했죠.
한 템포를 쉰 A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루나 이틀쯤 지났을까, TV 하단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인가 뭐 그런 자막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믿었죠. ‘자막이 왜 이러지? 기자들이 취재를 똑바로 안 하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분 후 윤 당선인이 직접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발표를 하더라고요. 경악했죠.
A뿐만이 아니었다. 윤석열에게 용산 이전 반대 의견을 전했던 많은 이들이 그걸 보고는 함께 한탄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22년 5월 9일, 대통령 집무 공간으로의 변신을 마무리한 용산 국방부 청사 모습.
김상선 기자
그는 도대체 왜 용산 이전을 밀어붙였을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윤석열의 최측근 B는 ‘실록 윤석열 시대’ 취재팀의
질문을 받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뒤이어 꺼낸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내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SOS를 요청하면서까지 용산 이전이 엎어지도록 노력했고 거의 다 됐거든.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김용현과 ‘도사’들이 끼어들면서 결국 용산 이전으로 결론이 나버렸어. ‘건진 법사’ 말고도 무슨 교수라고
도사가 하나 더 있었어.
12·3 비상계엄의 핵심 중 한 명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당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의 부팀장이었다.
김용현과 도사들?
취재팀은 구체적인 배경을 더 캐물었지만, 그의 입은 그 순간 닫혀버렸다. 무속인들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아니면 억측에 불과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무속’이 수많은 요인 중 하나로
존재하긴 했던 걸까.
환영받지 못한 프로젝트 ‘용산 이전’
확실한 건 용산 이전 계획이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등 반대 세력뿐만이
아니었다. 윤석열의 측근이나 멘토들 역시 마뜩잖아했다. 청와대 이전 TF팀에서 일했던 C는 이렇게 기억했다.
반대했거든.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양한 논리로 윤석열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청와대에서 임시로 집무를 보신 뒤에 추후 이전을 추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광화문 청사에서 1년만 일하신 뒤에 용산으로 이동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윤석열은 요지부동이었다.
보수 진영 유력 인사인 D의 이야기다.
용산으로 이전한 건 내가 봐도 미스터리야. 용산으로 당장 들어가야 한다고 한 정치인 그룹이 거의 없었는데,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듣고 단번에 용산으로 들어갔는지. 윤석열이 당시 최고 실세라던 장제원 말도 안 들었어.
윤석열이 나한테 ‘장제원이 지금 옮기지 말고 광화문 시대부터 연 다음에 차차 용산으로 갈 준비가 되면 그때
가자고 2단계 구상을 제안했는데 내가 안 들었다’고 하더라고.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모두 친한 E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산에 왜 갔는지는 나도 진짜 모르겠어.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일하고 국무총리 공관을 사저로 쓰는 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용산이라니. 왜 용산인지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데 도통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윤 당선인과 제일 많이 싸웠어요.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용산과 국방부 청사의 모습. 김현동 기자
“윤석열, 대통령감이었다”...참모가 경탄한 이유는?
물론 용산은 길지(吉地)다. 경복궁이 있는 광화문에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덕택에 조선 시대 물산의
집하장이었던 노른자위 땅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그 요충지를 차지했고,
뒤이어 들어온 일본군과 미군도 거기에 터를 잡았다. 미군이 떠난 뒤 용산 개발이 본격화했고, 그 땅을 주목한 정치권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국방부를 쫓아내야 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 20일 인수위 사무실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년 3월 20일 윤석열의 용산 이전 발표는 그야말로 군사작전을 펴듯 속전속결식이었다. 감색 정장에 국민의힘
상징색인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카메라 앞에 선 윤석열도 반대 여론을 의식했다.
국민께서 ‘조금 급한 것 아니냐’, ‘ 시간을 갖고 봐야 하지 않느냐’고 우려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직접 나서서 국민께 이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윤석열은 가느다란 지시봉으로 조감도 속 건물을 하나씩 짚으며 5분간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관한 대국민
프레젠테이션(PT)을 했다. 그러면서 ‘결단’이란 말을 여러 번 썼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이 제왕적 대통령제 같은 방식이라고 하시는데요. 이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와대 이전 TF에 있었던 C도 그 결단을 언급했다. 그는 그 결단을 높이 평가하는 축이었다.
반대가 하도 많으니까 윤 당선인도 한참을 고민하더라고. 하지만 결국 ‘그러면 문재인과 똑같아진다’며 반대를
뚫고 결단을 내리더라고. 난 외려 그걸 보고 ‘대통령 자질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 결단하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결단은 그가 언급한 대로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와 엮여 있었다. 조금 더 부연해 설명하면 윤석열은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 집무공간이 기자실과 동떨어져 있어 국민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폐쇄적 구조라고 봤다. 윤석열
스스로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그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 도어스테핑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건 제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대통령직 수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문 칼럼 보고 5일 만에 결정?...석연치 않은 해명과 ‘무속 의혹’의 부상
그렇지만 그게 반드시 용산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진 못했다. 그 직후 여론조사에서 용산 이전 반대 여론이 더
높게 나온 것은 국민도 선뜻 납득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급히 방어에 나선 측근들의 해명도 석연치 않았다. 용산 이전 발표 다음 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MBN의
‘판도라’ 프로그램에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가 묘한 말을 했다.
처음에는 광화문이 후보지였는데 경향신문 국방 전문기자가 ‘용산 시대를 열라’면서 칼럼을 썼어요. 담당
실무자가 그걸 보고 용산 국방부에 가본 겁니다. (권)
그럼 경향신문 기자 아이디어에서 나온 거예요, 용산이? (사회자)
그렇죠. (권)
‘청와대는 국방부로 가야···용의 땅, 대통령 시대’라는 제목의 그 칼럼은 2022년 3월 15일 게재된 것이었다.
용산 이전 발표일로부터 5일 전이다. 권성동의 주장대로라면 불과 5일 만에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국가 대사의
흐름을 급변경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겨우 신문 칼럼 하나로 말이다.
그 무렵부터 이전 발표일 브리핑에서 나온 한 기자의 질문이 새삼 부각되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풍수지리, 무속이 개입된 게 아니냐’고 민주당에서 의혹을 제기하는데요.
그때 윤석열은 웃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무속 의혹이) 나왔지만, 무속은 뭐 민주당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웃음)”
하지만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용산 이전’을 종용한 ‘도사’들의 과거 발언이
‘발견’되면서 의혹의 강도는 더 강해졌다.
“용산에 용이 와야 해!”...‘천공 스승’의 지시?
먼저 주목받은 건 윤석열의 ‘스승’을 자임해온 천공이었다. ‘우리는 용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2018년 강의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이 등장한다.
천공이 지난 2021년 10월 유튜브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났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jungbub2013' 캡처
용산에는 어떻게 힘을 쓰느냐 하면 용이 와야 해. 용이 어떻게 와요. 용은 그냥 오면 쓸모가 없어요. 여의주를
들고 와야 해. 여의주가 뭐예요. 법이에요. 인간한테, 사람한테 최고의 사람을 용이라고 합니다. 용.
천공은 용산 이전 발표 직후에도 이를 공개 지지했다.
참 잘하는 거죠. 너무 잘하는 겁니다. 앞으로 그쪽(용산)이 빛나기 시작하고 발복(發福)하기 시작하면 국제
귀빈들이 오더라도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2022년 3월 23일 YTN)
민주당은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천공처럼 생긴 사람이 관저 후보지를
돌아다녔다는 목격담이 속출했다.
한남동 공관촌 일대의 모습. 윤석열 대통령은 이 곳에 있던 외교부 장관 공관을 관저로 사용하게 된다. 사진 구글
어스
해당 의혹에 대해 수사한 경찰은 2023년 8월 “천공 관여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관저 후보지를
역술인이 둘러본 건 사실이었다. 천공처럼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백재권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였다.
“용산 이전으로 혈을 뚫었다”...백재권의 가세
백재권은 관저 부지를 혼자 몰래 보고 온 게 아니었다. 청와대 이전 TF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부팀장인
김용현과 함께 여러 후보지를 둘러본 뒤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관저 부지로 추천까지 했다.
201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중인 백재권 교수. 중앙포토
그 역시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었다. 15회에 등장한 대로 대선 직전에 김건희 여사의 관상을 본 뒤 “공작상이다.
공작상의 귀함 덕으로 남편이 출세한다”고 말해준 게 바로 백재권이다. 김건희가 영부인이 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MBC 보도에 따르면 관저 개입 의혹으로 논란이 된 2023년 7~9월 김건희가 통화한 사람은
모두 81명이었는데 이 중 가장 길게 전화한 사람이 바로 백재권이었다. 총 13차례 4시간 26분 48초 동안이나
통화했다.
백재권은 2022년 지방선거 직전 여성경제신문에 기고한 ‘6·1 지방선거, 국민의힘 압도적 우세 예상’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용산 이전을 극찬하기도 했다.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준 것은 역사적인 결단이었다. 불통과 단절의 상징이었던 청와대였으나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그동안 막힌 혈(穴)이 ‘뻥’ 뚫리는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계속)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