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 비산
외할아버지는
동네 어르신들보다
분명 지성인? 이셨을게다
끝순이 간난이
삼월이 ??자
이름짓던 시절
어머니 이름을
'보배'라고
작명하신 걸 보면.
생전에 계실때나
돌아가신 후에도
이름을 자랑스러웠다
어머니 새색시 때
흑백사진을 보면
흑진주처럼 빛났지!
지금도 생생한
사랑스러운
내 어머닌 '보~배’
이름 하나에 담긴 사랑의 계보
― 비산 「보배」 평론
비산의 「보배」는 어머니의 이름을 중심으로 가족의 사랑과 시대의 풍속, 그리고 한 사람의 존재 가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낸 서정시이다. 이 작품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오직 '보배'라는 이름 하나를 통해 외할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삶, 그리고 자식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잔잔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이 시의 미덕은 이름을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운명과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첫 연은 다소 유쾌한 시선으로 시작한다.
외할아버지는
동네 어르신들보다
분명 지성인이셨을게다
'지성인'이라는 표현에는 약간의 익살과 존경이 함께 녹아 있다. 화자는 학문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선 감각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음 연으로 이끌린다.
이어지는
끝순이 간난이
삼월이 …
라는 대목은 당시 농촌 사회의 작명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름보다 출생 순서나 태어난 달을 따서 부르던 시대상이 짧은 몇 개의 이름만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부분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우리 사회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시는 핵심에 이른다.
어머니 이름을
'보배'라고
작명하신 걸 보면.
여기서 '보배'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딸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응축된 상징이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곧 사랑을 선언하는 행위였음을 시인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이름과 삶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생전에 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에도
이름이 자랑스러웠다
여기서 자랑스러운 것은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사랑이다. 화자는 외할아버지의 안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보배'로 살아온 어머니의 존재를 자랑하고 있다.
후반부의
어머니 새색시 때
흑백사진을 보면
흑진주처럼 빛났지!
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유 가운데 하나이다.
흑백사진에는 실제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흑백 속에서 '흑진주'를 발견한다. 이는 사진의 색이 아니라 기억의 색이다. 흑진주는 화려한 보석보다 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 역시 그러하다. 꾸밈없는 삶 속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지금도 생생한
사랑스러운
내 어머닌 '보~배'
마지막의 '보~배'라는 늘여 부르는 호명은 시 전체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장치이다. 이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어린 시절 어머니를 부르던 목소리이며, 지금도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사랑의 울림이다. 특히 물결표 하나는 발음의 길이를 넘어 그리움과 애정의 길이를 상징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는 그 호명 속에 담긴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작품의 미학적 성취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의 참신함보다 시선의 진정성이다. 이름 하나에서 출발하여 한 가족의 사랑과 시대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 담백한 언어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
또한 개인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끝순이', '간난이', '삼월이'는 특정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을 환기한다. 그래서 독자는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아쉬운 점과 보완 가능성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다.
첫째, 첫 연의
"분명 지성인이셨을게다"
는 다소 현대적 표현이라 이후의 서정적 분위기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지혜로운 분이셨을게다' 또는 '생각이 남다른 분이셨을게다'처럼 정서를 살리는 표현이었다면 시의 결이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생전에 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에도
이름이 자랑스러웠다
에서는 주어가 약간 모호하다. 외할아버지를 말하는지, 어머니를 말하는지 독자가 잠시 멈칫하게 된다. 표현을 조금만 다듬으면 의미 전달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셋째, 마지막 연은 감정적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앞선 연들에 비해 다소 급하게 끝나는 느낌도 있다. '보배'라는 이름이 오늘의 화자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남겼는지 한 행 정도 더 확장되었다면 작품의 여운이 한층 깊어질 수 있다.
또한 원문의
삼월이 ??자
부분은 오탈자나 누락으로 보이므로, 원고를 정리할 때 정확한 표현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자 들어간느 이름이라는 뜻으로 썼을 것인데 물믚표 처리하는 것 시에서 다소 예의에 어긋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합 평가
「보배」는 이름 하나에 담긴 사랑을 통해 가족의 역사와 인간의 존엄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화자는 특별한 사건을 말하지 않지만, '보배'라는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 것만으로도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삶, 그리고 자식의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이어 낸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의식으로 승화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길게 불러 보는 "보~배"에는 어린 시절의 목소리와 현재의 그리움이 함께 실려 있다. 독자는 그 한마디 속에서 한 사람의 생애와 한 가족의 역사를 동시에 듣게 된다.
결국 「보배」는 어머니를 위한 시이면서도, 우리 모두의 부모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평범한 일상의 기억을 따뜻한 서정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가장 소중한 보배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불러 준 사랑임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일깨워 주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