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에서 그는 더이상 운명과의 투쟁도 환희의 노래도 부르지 않고
자유에의 열망과 정신적인 해탈을 천상의 음률로 엮어 내."
베토벤(1770~1827)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교향곡"과 "장엄미사'의 작곡을 끝낸 후
몇개의 카논과 피아노곡을 썼지만 그의 가슴에는 새로운 비상(飛上)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구축한 음의 세계와는 판이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그의 청각은 오래전부터 그 기능을 상실하여 외부 소리의 세계와는 완전히
두절된 이 노(老)작곡가의 관심은 점점 그의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이고 침잠해 들어갔다.
그의 과거의 기억들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그를 둘러싼 가혹한
운명과의 불굴의 투쟁, 그리고 그 운명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환희의 노래들-은 용해되어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정점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었다. 그의 후기 현악4중주는 이렇게 해서 작곡 되어졌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소나타, 16곡의 현악4중주곡은 그의 예술과
정신세계의 근간을 이루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후기 현악4중주곡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그는 라주모프스키로 대표되는 중기 현악4중주곡을 완성한 후 14년이란 세월이 지난 1824년
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133의 대푸가를 포함한 12번부터 16번까지의 일련의 후기
현악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 곡들의 직접적인 작곡 동기는 러시아의 갈리틴공작의 권유였지만 이미 그의 마음에는 새로운
음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움트고 있었다. 12번의 밝고 따뜻한 기분, 심오한 카바티나 악장을
포함한 13번, 슈베르트가 찬탄한 그 비할 바 없는 14번, 질병에서 회복된 자가 부르는 감사의
노래인 15번, 그리고 명상적인 16번, 이 모든 것은 만년의 베토벤이 비로소 도달한 고고한
정신 세계였다. 이 곡들은 현실세계를 뛰어 넘은 종교적인 정화감, 숭고하고 가을하늘 같은
투명함이 충만한 바하적인 음의 울림이었다. 이 장르의 곡 중에서 베토벤 이후 오직 바르톡이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 만이 이 4중주곡과 비견될 수 있었다.
현악4중주 16번은 앞서의 13,14,15번이 각각 6.7.5악장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고전적인 원래의
4악장으로 쓰여졌고 따라서 연주 시간도 짧지만 이 곡에서 그는 지고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의한 간결한 악장이며, 2악장은 구성은 단순하나 약동감과 해학에
넘쳐 있고, 3악장은 깊은 내용의 즉흥적인 환상곡 풍이며, 마지막 악장은 2개의 이상한 동기
-‘그래야만 하는가?’와 ‘그래야만 한다’-가 전체를 지배하는 소나타 형식이다.
이 곡에서 그는 더이상 운명과의 투쟁도 환희의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그의 마음속에는 자유에의
열망과 정신적인 해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은 오히려 가장 전 인류적인
작품이 되었다. 그는 후기 현악4중주라는 천상의 음률로 엮어 짠 강철의 날개, 그러면서도 한없이
포근한 그 날개들 그가 도달한 구름 위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 ‘서상중’의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https://youtu.be/mWW7vuSBqvM?si=OYMFNr-LN4d7gX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