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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태어나실 약속의 목자
미가 5:1~15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반가운 메시야 예언의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740여 년 후 신약 시대 헤롯 왕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헤롯 왕궁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헤롯 왕이 성경을 밝히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서 별 세계에까지 그 징조가 나타날 분은 바로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참 목자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장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태복음 2:5,6)
즉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 그 탄생지를 정확히 베들레헴이라고 왕에게 대답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미가 5장 2절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은 미가 선지자의 성경 예언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목소리로 즉시 왕에게 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모친과 보호자 요셉이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의하여 그들의 본적지 베들레헴에 와서 호적을 기록하러 왔다가 출산일이 닥쳐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게 하려고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가 선지서를 함께 살펴보게 되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 말씀도 오늘 함께 살펴 보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참 기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시야의 탄생 예언이 담긴 이 말씀이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취지로 예고되었고 이 메시야 예언과 관련된 본문 말씀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로부터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이 본문 말씀은 앞장 4장 9절 이하에 연결된 말씀입니다. 4장 9절 이하에 보면, 유다는 그들의 죄악 때문에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스러운 형편에 있습니다. 그들은 성읍에서 끌려나가고 들에 거주하며 바벨론까지 끌려가게 된다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고난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고 바벨론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회복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절에서도 보면 하나님 백성들은 지금 이방 민족들에게 에워쌈을 당하고 있으며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관은 뺨을 맞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데 이미 우리가 3장에서 보았듯이, 그들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수탈하고 돈을 받아 점을 치며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죄악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이방 나라에게 나라가 망하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재판관들이 이방 나라 군대에게 에워싸인 가운데 끌려나와 뺨을 맞는 상황이니 그들은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 예고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훗날 앗수르의 간헐적인 공격으로 무너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의 성읍에서 성취되었으며, 그 후에도 바벨론의 여러 차례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계와 심판의 와중에 하나님께서 한 가지 소망의 약속을 베푸십니다. 그것이 바로 미가가 5:2 말씀에 나오는 메시야의 탄생 약속입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에브라다’는 야곱의 아내 라헬이 산고를 겪다가 죽어 묻힌 장소 에브랏을 의미합니다. 미가는 에브랏과 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들레헴’이 하나로 통합되어 부르게 되어 이렇게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은 작은 동네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지인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많은 도시라고 전해집니다. 미가 당시에는 작은 성읍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윗 이후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 이방 민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진정한 목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이렇게 미가에 의하여 선포된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참 목자는 근본이 상고에, 영원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이분의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요한복음 1:1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일치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께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1~3)
또한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는 말씀도 하신 바와 일치합니다. 요한복음 8:58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한복음 8:58,59)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태초에 만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요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성부와 성령과 함께 일하신 분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인하여 이방 나라들에게 고통을 겪고 재판관들이 뺨을 맞고 그 백성들이 이방 나라에 끌려가 곤욕을 치를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역사 속에 들어오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예언 후에 700여년 후에 선민 유다 백성들이 신앙이 떨어지고 내부 분열이 생기는 중에 열 발가락 시대인 로마 제국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곤욕을 치를 때에 뜨인 돌과 같이 이 세상에 나타나서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펼쳐나가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기이하고 놀랍습니다.
3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우리 구주 예수님을 모친 마리아가 해산하기까지 선민 유다는 이방 나라에 붙여서 고통을 겪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신 후에야 그의 형제 가운데서 남은 자 곧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신약 백성들이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와 사역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요? 4절에 이렇게 예고되어 있습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선민 이스라엘의 참 목자로 세상에 오실 분은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지도자, 유다의 목자들과 다릅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참 목자는 그 능력과 위엄과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일하며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의 권세를 가지고 목양합니다. 그래서 양인 백성들을 먹이고 기르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며 악한 짐승들 사자, 곰, 이리 떼들로부터 그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냅니다. 그리하여 ‘거주할 것이라’고 했는데, 원문으로 보면, 야샤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샤브‘라는 단어는 집을 짓고 먹고 자고 평안히 쉰다는 뜻입니다. 마치 시편 23:1,2 말씀에서 다윗이 노래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목자는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목양함으로 인하여 그 양된 백성들이 풍족히 먹고 마시며 물가에 누워 쉬는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 목자의 통치는 창대하게 되어 다윗과 솔로몬 때와 같이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그 지배권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 지역을 뛰어넘어 그의 나라는 땅끝까지 미치게 된다고 미가는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야 권력이 얼마나 크고 그의 통치의 영향력이 얼마나 드넓은지 온 세상 땅 끝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과거 다윗의 이름이 드높아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며 솔로몬의 이름이 대단하여 저 멀리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혹은 아라비아 예멘으로 알려진 스바의 여왕까지 소문을 듣고 직접 멀리 찾아왔거니와 이제 약속의 목자는 그 이름이 땅끝까지 이르게 될 정도로 창대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실제로 약속의 목자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를 경배하며 섬기는 나라와 백성과 방언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계시록 7:9 이하에 이르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주 하나님과 어린 양 우리 구주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천국 백성들은 수많은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15 말씀에서도 사도가 묵시 중에 본 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이는 온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7:13,1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다니엘이 미래의 일을 환상 중에 보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예언된 모든 말씀들, 많은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만의 백성이 아니요 모든 나라와 백성 족속들과 수많은 언어들을 말하는 많은 언어 부족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세계적인 나라인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수많은 예언들을 들었으나 예수님 오셨을 때에도 이방 나라들을 절대로 구원받을 백성으로 치지 않고 자기들만 구원받을 자라고 제한하였으니, 그들은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과 같은 영적 맹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들조차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성령께서 친히 그들을 이끌어서 이방 세계로 억지로 떼밀어 전도하게 하시어 주의 이름이 땅끝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받지 않는 이들에게 주의 복음을 힘써 전하기 위하여 애쓰는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식구들, 양가 가족들, 주변의 믿지 않는 이웃, 친구들도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이 되도록 힘을 다하여 전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5절로부터 6절까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는 평강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선민 유다의 소망이 바로 약속의 목자에게 있음을 선지자는 여기서 선언합니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할까요? 하나님 백성들은 죄악 때문에 이방 나라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앗수르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 니므롯’이란 이름도 등장하는데, 창세기 10장에 보면 노아의 홍수 후에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영걸로서 바벨과 여러 나라들을 건설한 함 자손의 군주로서 조직적인 나라를 건설한 최초의 강력한 세상 군주였습니다. 그래서 니므롯이라는 땅 이름이 나오는데 당시 바벨론 지역을 일컫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앗수르가 주의 나라를 치려고 덤벼들고 그 사람들이 유다 지경을 짓밟는 일이 생길 때에 약속의 목자는 그 백성들의 평강이 되어 주신다고 선지자는 예고합니다. 그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앗수르를 칠 것이며 아수르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약속의 목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미가 선지자의 이 예언 후에 700년이 지난 후에 세상에 오시지만, 그 이전에도 그의 선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하시면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들을 일으켜 앗수르를 막아주시고 그 나라에 평강을 주신 줄 믿습니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 왕 때에 한 천사가 나타나 18만 5천 명의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를 쳐 죽여 유다를 건져주셨지 않습니까?그러므로 일곱, 여덟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보내시어 주의 백성을 앗수르로부터 완전히 패망하지 않도록 일하도록 일으키신 여러 왕과 장군들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앗수르는 유다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 역시 평강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들을 앗수르로부터 지켜주시도록 일하신 덕분인 줄 믿습니다. 유다는 이처럼 이미 그리스도에게 돌보심과 보호의 빚을 지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7절로부터 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여기서 다루는 것은 남은 자들의 역할이요 그들의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고난 중에 연단받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여러 나라들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백성들도 고난의 섭리 속에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습니다. 한국민의 디아스포라 백성들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때에 고난 중에 이민을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하와이에도 한국인들이 그 때 많이 건너갔습니다. 저 쿠바에도 사탕수수 수확을 위하여 많이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저 중국의 만주와 저 러시아의 연해주에 많이 한국인의 디아스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해주에 있다가 포악한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 의하여 연해주에서 강제로 열차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곧 우즈베크스탄 등 여러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 유대인들이 흩어졌는데, 그들은 그 고난 중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그 여러 민족 중에 이슬과 단비처럼 생명의 진리를 맛보는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유대인들로서 그 이민족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도록 이끌었습니다. 나중에 이들이 통로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귀중한 생명의 이슬과 단비 역할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 이들은 사자처럼 담대하여 대적들을 쳐서 굴복하는 자들이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페르시아의 남은 자들이었던 모르드개와 그의 사촌 누이 에스더와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페르시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오히려 사자처럼 싸워 승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연단받은 남은 자들은 세상 각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자 같은 믿음의 용사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실제로 그들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자처럼 담대하여 로마 제국의 칼창을 굴복시키고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바꾸는 위대한 역사를 썼습니다. 그 이후 가는 곳마다 모든 우상 숭배, 잡신 숭배의 처소들을 부수어갔으며,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까지 신앙의 승리를 바꾸어나가는 영적 사자들이 다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나라에서도 우리는 생명의 이슬과 단비의 역할을 감당하며 대적들을 쳐서 무너뜨리는 사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0절로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내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내가 네게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 영적인 정화가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주의 백성들이 메시야 시대를 맞아 영적 개혁이 일어나게 됨을 말합니다. 그 개혁과 성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그들이 이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군마를 멸절하고 병거를 부수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평화 시대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주의 백성을 치는 전쟁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한분을 방패와 성벽 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람과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 열국들이 사방에서 쳐들어 왔을 때에 다윗은 노획한 적군의 군마들의 발목을 끊었습니다.
사무엘하 8:4 말씀에,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얼마든지 적군의 말과 병거를 다윗 군대의 군사력으로 전용할 수 있었지만 다윗이 이처럼 말의 힘줄을 끊은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스가랴 9:10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고 하였으며, 이사야 31:1,2 말씀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 메시야 시대 주의 백성들이 지켜 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점에서 우리 인생의 싸움에서 오직 주님만을 우리의 병거와 요새로 삼고 행하는 자들이 됩시다.
또 한 가지는 메시야 시대에 주의 백성들이 모든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를 다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재앙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 아닌 우상과 잡신 숭배에 있었습니다. 신명기 12:2,3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제 메시야 시대에 이 명령에 주의 백성들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 점치고 궁합 보는 가증한 일들을 서서히 행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단 사이비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와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접붙이지 못하도록 합시다. 철저히 기도하며 성령으로 무장하고 복음을 전하고 철저한 복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우리와 우리 자손과 이 민족이 주님 오실 때까지 귀하게 쓰임받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러한 영적 정화, 영적 성숙을 이루는 주체가 “내가”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 가운데 영적 정화와 성숙을 이루는 일에 친히 나서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보내신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실 놀라운 은혜들을 우리가 이렇게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넘치는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으니, 우리는 이에 합당하게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고 약속하신 목자를 통하여 주의 백성들을 끝까지 살리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