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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목회 35년과 나의 달려온 길. 딤후4:7-8
내일이면 우리 신생교회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게 됩니다. 제가 그 간 35년 동안의 목회생활을 거두고 은퇴하는 원로목사 추대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은 제가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하는 일에 그리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직 후임목사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후임목사가 위임할 때까지 제가 그대로 여러분과 함께 신생교회에서 얼마간 말씀도 계속 전하고 또 그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맺어진 끈끈한 정이 든든한 밧줄처럼 여러분과 나의 마음을 단단히 얽어맸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법적인 정년이 되어 원로목사 추대식을 갖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당회장인 담임목사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원로목사로서 교회를 돌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누구인가 우리 교회에 시무하게 될 담임목사가 결정되어 위임목사로 부임하면 저는 여러분과 이별 식이 없는 결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는 담임목사로서의 마지막 설교가 되며 다음 주부터는 원로목사로서 여러분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마음엔 지난날의 오랜 목회생활의 추억이 마치 한편의 영상처럼 떠올라 만감이 교차되는 감정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의미에서 제가 아직까지 달려온 목회의 길을 간단히 뒤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저의 걸어갈 길에 대한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림으로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나는 나의 신앙생활의 시작과 목회생활을 세 가지 대지로 나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생생한 세 가지 꿈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은 별것이 아니며 잠에서 깨어나면 잊어버리는 것이지만 그러나 성경에는 때로는 꿈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는 인생의 비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경우를 본다면 창28장에 나오는 벧엘에서 꾼 야곱의 경우입니다.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하는 길에 어느 한적한 곳에서 돌을 베게 하여 잠을 잘 때, 꿈에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왔는데 야곱은 그 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듣고 그 꿈을 그의 인생의 비전으로 삼아 자신의 생애를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꿈을 잘 분별하여 자기 생애와 연결 지으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퍽이나 유익이 되며 자기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첫 번째 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부르심
나의 생전에 잊지 못할 세 가지 꿈 중에 첫 번째 꿈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 굉장히 오래전의 일입니다. 23세 때쯤입니다. 50여 년 전 일이라 석탄으로 불을 지펴 수중기로 달려가는 호남선 열차를 타고 이리역 근방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아줌마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저는 예수를 믿기는 고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토론을 자청하기도 하고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성경의 내용을 들춰내어 공박하는 것으로 취미를 삼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좀 당돌하기고 하고 끈질기기도 하면서 정연한 이론으로 성경을 공격하는 저와의 토론을 시골 아줌마가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제 내릴 역에 다다라서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청년, 지금은 그렇게 예수를 믿지 않고 성경을 공박하지만 하나님이 청년의 마음을 열어 언제인가 예수를 믿게 하시면 아마 청년은 사도바울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이 말이 예언이 되어 저의 생애를 180도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승리감에 만족했습니다.
바로 그날 밤 친구의 집을 찾아가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평생 잊지 못할 꿈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내 앞이 훤해지면서 어떤 언덕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꿈에 그 언덕이 갈보리 언덕이 아닌가 여기면서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랜 후에 그 언덕이 평소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고 또 장차 하늘의 거룩한 무리들, 곧 144000명의 무리와 함께 강림하실 감람산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저 높은 하늘 끝에서 처음엔 작은 흰 구름처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것이 차츰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듯 뚜렷해지면서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이가 틀림없는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그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시든 예수님이 내가 서 있는 전면에서 머무시더니 내게 향하여 손을 내미시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네가 나를 부인하느냐”는 심한 꾸지람을 내리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꿈에서지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빌었습니다. 꿈에서 깨보니 온몸이 땀에 질 퍽이 젖어 있었습니다. 저는 큰 고민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교회에 나가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고 그 후 10여 년이 지난 후에 매형이 돌아가신 교회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감동을 받아 그때야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12월 하순이었으며 서울에 올라와 그 다음 주인 1월 첫 주일에 마포중앙교회에 출석하여 등록하게 된 것입니다. 열심 있는 청년으로 보였던지라 목사님께서 신학교에 추천하여 목회자를 지망하는 신학생이 되었고 저에게는 이때부터 목회자가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두 번째 꿈과 목회의 시작
신학교는 졸업했지만 일할 복음의 일터가 없었습니다. 일터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대전 보문산에 있는 겟세마네 기도원에 들어가 사흘간의 단식과 1주일간의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금식을 마치는 날 밤 10시경에 기도원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금식을 마치는 감사기도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때 제 평생에 잊지 못할 두 번째 꿈을 꾼 것입니다. 이 꿈은 꿈이라기보다 비몽사몽간에 나타난 영적체험이라고 말하기가 합당할는지 모릅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내 머리맡에 누구인가 와서 앉았습니다. 저는 눈을 감은채로 직감적으로 아, 이 분이 하나님이시구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당신의 입으로 내 머리 끝부분부터 부드러운 입김으로 바람을 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그 입의 바람이 얼마나 센지 온 세상의 공기가 바람이 되어 내 몸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 반복되는데 마지막 번 바람은 얼마나 뜨거웠든지 몸이 불덩어리가 된 기분이라 나는 이 뜨거운 하나님의 바람에 온몸이 타 죽게 될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그 분은 살아지고 나는 깨어나 놀라 나를 살펴보니 나는 처음에 기도하든 자세 그대로 무릎 꿇어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내 목회생활에 신유의 능력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자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김홍조 집사란 교인은 포도송이 자궁암에 걸려 죽음 직전에서 저에게서 기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하려고 복부를 갈라보니 자궁전체가 암 덩어리가 되어 도저히 수술이 불가능해져서 다시 배를 꿰맨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상태가 달라지더니 한 달가량 지난 후 사진을 찍어보니 그렇게 번성했던 암 덩어리가 젓가락 짝 만큼 가느려졌으며 또 얼마 후에는 퇴원해도 좋을 정도로 치료되어 지금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순심 집사는 나이 많은 분이신데 그 손과 발이 징그럽게 뭉그러져 몸에 문둥병 징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하고 교회에 나오면서 기도 받고 문둥병이 치료 받아 깨끗함을 받은 것입니다.
어느 날 세브란스 병원에 나가는 집사님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습니다. 한 청년이 손목뼈에 골수암이 생겨 손목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와서 기도 좀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쫓아가보니 외아들의 손목을 절단해야 하는 어머니의 애타는 눈물이 병실에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 청년이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나갔으나 커지면서 주일학교를 끊었고 신앙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이 청년은 위해 둘이 회개하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곧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과연 손목을 자르는 수술이 잘 되었을까 마음을 졸이면서 우리는 수술실 문에서 시선을 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손목이 잘려진 것이 아니라 손목이 붙은 채로 휠 치어를 타고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술 받기 전에 수술 받을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데 좀 전까지 있었던 골수암이 말짱히 없어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자매님 집을 심방 갔습니다. 그 자매님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는 복부에 큰 혹이 들어 있어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혹을 수술한다 해도 마찬가지란 것입니다. 저는 그 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그 자매님은 배에 혹이 붙은 상태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샐 수 없이 많습니다.
저에게 하나님께서 목사된 후, 첫 목회지로 강원도 아야진이란 고장의 농어촌 마을의 자그마한 교회였는데 마침 도착한 날이 주일 낮 예배시간이었습니다. 1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가족과 떨어져 나 홀론 이곳에서 목회할 생각을 하니 기가 찼습니다. 하여튼 제직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마음으로 다짐하고 기다리는데 제직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그곳 아야진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아야진 산등선 입구에 위치한 교회인데 교회는 그런 대로 아름답고 보기에 좋았습니다. 앞에는 시원하게 뚫린 동해바다가 깔려있고 처음에는 꽤 마음에 끌렸습니다. 그런데 밤에 잠자리에 드니 파도소리가 맹수의 괴성처럼 들리는데 하루 밤 지내기가 지겨웠습니다. 답답하고 서울 소식이 궁금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우체부 아저씨 지나가는 시간만 되면 교회 언덕에서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약 1년가량 지나니 가족을 데리고 올 수는 없고 가족과 떨어져 목회하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집에 생활비를 보낼 처지도 못됐습니다. 집 사람은 김장때면 밤에 배추를 파는 시장터에 나가 다듬다 버린 배춧잎을 주어다 김치를 담갔습니다. 그때 여고1학년이었던 큰 딸 지금 민금령집사는 싸줄 도시락이 없어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 몰래 수도 깐에 가서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어 마시고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제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집에 가서 집안을 돌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벌써 우리 식구는 7남매에 어머니까지 10식구가 되어 이 대식구를 맡아 목회할 목회지가 나설 리 없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자는 마음을 먹고 개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인가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이 실내화를 착안하게 해서 공업용 재봉틀을 사드리고 집에서 우리 내외가 가내공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저 그런대로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생도 하고 수난도 겪었습니다. 사모님은 재봉틀을 돌리면서 졸다가 바늘이 엄지손톱을 뚫고 손가락 아래까지 내리꽂았던 일까지 있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목사가 물건을 만들어 점포에 넘겨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매일 사장에 다니면서 속으로 울었습니다. 아는 목사님이나 친지들을 보면 고개를 멀리 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입이 있으면 생활비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꼭 개척교회 자금마련으로 적금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4년간 힘들여 마련한 돈으로 1977년3월17일 지금의 우리 신생교회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불길처럼 부흥되었습니다. 곧 넓은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개척한지 5년 만에 성전건축에 들어갔습니다. 자리는 좋지 않았지만 값이 싸고 조건이 좋아서 지금 이 자리, 169평 대지를 사고 건축에 들어간 것입니다. 물론 돈도 없었고 헌금도 턱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우선 송월동에 어렵게 마련한 저의 집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전세로 살아온 방도 전세 값을 빼고 20년 전에 이사 온 저기 판잣집 사택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저는 교회 지하실에 서재와 방을 마련한 것이 지금까지 그 지하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밤중소리 본부도 이 지하실에서 운영하고 제가 그 동안 저술한 십여 권의 종말론 책도 바로 이 아래 캄캄한 적은 지하실 방이 그 산실인 것입니다.
저는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종말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신학을 마치고 목회생활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연구와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새벽기도 때 계속적으로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면서 차분히 연구하면서 정리해 나갔습니다. 신생교회를 창립할 때는 그 창립취지문에 신생교회는 주 재림의 소망가운데 사탄의 권세와 싸울 것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매월 첫 주면 청계산 기도원에 올라가 한 주간 동안 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전체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처음 서적인 ‘맥으로 풀이한 요한계시록’은 25년 전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기도원에 오시는 목사님들을 한방에 모아 강해를 시작하면서 퍽 넓게 활동하는 무대의 토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성도들을 상대로 종말론을 증거 하기 위해 스피카를 짊어지고 경기도 계룡산 중턱에까지 올라갔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기독교100주년기념회관에서 요단서적 세미나실에서 목사님을 상대로 하는 전국적인 세미나를 계속했습니다.
저를 도와줄 수 있는 교인이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정도 전혀 없었습니다. 워낙 교세가 약하다보니 교회에도 기댈 수 없었습니다. 프린트 교재를 팔고 어렵게 만들어낸 몇 권의 책을 팔아가면서 그것을 재원으로 하여 전국 어디든지 필요로 하는 곳이면 달려가 전했습니다. 책을 쓰고 세미나에 뛰어다니다보니 교회는 부흥이 안 되고 교세는 더욱 열악해 졌습니다. 교인들이 제 곁에서 떠나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는 대교회를 이루거나 많은 교인을 확보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목회보다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대담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에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내가 평소에 새벽이면 즐겨하는 운동으로 줄넘기를 해왔습니다. 줄넘기라면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프로급이라 노회 안에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줄넘기 하는 중에 자꾸 오른 발이 줄에 걸려 줄을 넘기지 못해 무슨 일인가 여러 각도로 살펴보았더니 원인이 중풍증세로 나왔습니다. 곧 동서한방병원에 입원하여 일주일간의 입원치료를 하고는 다행히 병세가 가벼워 퇴원할 수 있었지만 몸 관리나 건강 체크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밤중소리’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우고는 홈페이지에 실릴 모든 재료를 수집하고 기록하기를 2년간이나 했습니다. 세계최초로 종말론 홈페이지를 인터넷에 개설하고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그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약 4년 전에는 줄넘기 운동에서 걷기 운동으로 바뀐 후, 실내에서 러닝모션 운동을 하는 중, 가슴에 따끔따끔한 통증의 느낌을 받아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세브란스 혈관심장병원에서 협심증 진단을 받고 스텐드 삽입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퇴원하자마자 교회에서 요한계시록 특별강해를 또 시작했습니다. 국민일보에서 기사를 좋게 기재해 주어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22회에 걸쳐 보람 있게 마쳤습니다.
이런 특별집회를 계기로 여러 많은 젊은 목사님들과 연결되어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1년간 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목회자들의 집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민목사님이 연세가 많으신지라 젊은 세대의 목회자들이 지금 배워두지 않으면 이 종말론이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계속적인 종말론 강해와 소명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밤중소리 사역회’를 조직하게 된 것입니다.
3. 세 번째 꿈과 나의 남은 생애
그런데 말입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저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세 번째 꿈이 바로 이 시점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초저녁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살며시 눈이 감겨지면서 그 놀라운 이상이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내 앞에 큰 나무가 서 있고 굵은 나뭇가지가 뻗어 있는데 그 가지에 하늘에서 크나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있어 나와 눈이 마주치면서 나를 응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함으로 그 독수리를 향하여 ‘독수리야 네가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냐’ 이렇게 한번, 두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외치며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수리가 나뭇가지에서 내 앞으로 살짝 내려오더니 몸집이 작아지면서 내 앞에서 내 오른 손을 잡고 악수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핏 보니 내 바로 오른편 곁에 밤중소리 사역에 귀한 일꾼으로 보내신 한 분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독수리에게 내 친구를 소개한다고 그 분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하늘을 향하여 힘껏 할렐루야를 연거푸 외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사모님이 놀래서 여보 왜 그래 왜 그래 하기에 꿈에서 깨어나 이상 중에서 본 이 놀라운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안가 대구에 계시는 어느 한 집사님이 동영상 운영자금으로 많은 돈을 보내주셨고 우리 신생교회가 모체가 되어 출범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밤중소리 사역회가 더 큰 소망 가운데 종말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홈페이지 밤중소리와 또 밤중소리 사역회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효의 흰옷 입은 무리를 이끌어 내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까? 이 꿈에서 독수리의 이상을 본 저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날개 아래 업어 인도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친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어 그 길을 인도해 주시는 이상으로 보이신 것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일 저는 우리 신생교회의 원로목사로 추대 받게 됩니다. 이 원로목사 추대는 민목사의 목회의 사명을 마쳤다는 뜻일 뿐, 이제 새로운 사명, 밤중소리 사역회를 통한 하나님의 새 일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이 꿈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에 세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비전은 바울은 빌3장에서 예수님과 같은 부활을 사모했습니다. 바울은 순교자의 부활을 생의 마지막 비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천년왕국에서 첫째 부활자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왕권을 소망했습니다. 세 번째 비전은 딤후4장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바울은 관제와 같이 그의 수명이 부음이 되어 세상을 떠날 기약이 이를 때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다고 했습니다.
나는 밤중소리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곳을 방문한 분들 중, 종말적인 사명을 이룰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일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이 밤중소리가 100만 명의 방문자가 생길 때, 주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기대합니다. 지금 20만 명에 들어섰습니다. 5년에 20만이니 백만 명이 되려면 20년이 걸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종말에 가까이 올수록 그 방문자 수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하나님께서 10년 안에 100만 명을 채우실 것입니다. 저에게는 쉴 짬도 없습니다. 휴식할 여유도 없습니다. 종말론 연구를 위해 시간을 바치면 바칠수록, 주 재림의 메시지를 증거 하면 증거 할수록 청년의 힘이 새롭게 솟아오릅니다. 저는 바울의 이 세 가지 비전을 또한 저의 비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주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아 첫째부활의 영광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부음의 날까지 이 밤중소리사역을 계속할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들은 주 재림의 소망이 이루어질 시점에 살아가고 있는 복이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우니라“고 하신 그 가까운 때가 여러분의 생애에 펼쳐져 있습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오실 주님을 맞이하여 천년왕국의 축복을 누리다가 살아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아 저와 같이 저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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