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왜 중요한가?>
내 평생의 탐구는 존재의 참된 본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과학과 동떨어져 있던 의식이 어떻게 물리학 및 생물학에 근거하여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고,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세계관에 적합할지 이해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종족의 독특한 한계 내에서 어느 정도 이 질문에 대한 이해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경험의 내적 빛이 표준적 서구의 법규 내에서 가정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우주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면의 빛은 신경계의 복잡성에 비례하며, 인간과 동물 왕국의 거주자들에게 더 밝거나 더 어둡게 빛난다. 통합정보이론(IIT)은 모든 세포 생명이 무언가를 느낄 가능성을 예측한다. 정신과 육체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한 가지 근원적 실재(reality)의 두 측면일 뿐이다.
이런 두 측면은 철학적, 과학적, 미학적 가치와 관련된 통찰이다. 그렇지만 나는 단지 과학자이지만은 않다. 나는 또한 윤리적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추상적인 이해에서 어떤 도덕적(moral)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서술적인 것에서 처방적(prescriptive, 규범적)이고 규제적(proscriptive)인 문제로 나아가고, 선과 악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결국 행동에 대한 촉구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가장 중요하게, 인간이 윤리적으로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나머지 자연 세계는 인류의 목적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 즉 서구 문화와 전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념을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는 진화한 생명체이며, 생명의 나무에 달린 수백만 잎사귀 중 하나이다. 물론, 우리는 강력한 인지능력, 특히 언어와 상징적 사고, “나”라는 강한 감각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능력들은 생명의 나무 위에 우리 친족들이 할 수 없는 성취들, 예를 들어 과학, 니벨룽겐의 반지, 보편적 인권, 홀로코스트, 지구온난화 등의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우리 몸이 점점 더 기계와 얽히게 될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와 포스트휴머니스트(post-humanist)의 문턱에 서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물학과 중력 내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인간성의 나르시시즘(자기애)과 동물과 식물이 오로지 우리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뿌리 깊은 믿음을 치료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주체, 모든 완전체의 도덕적 지위가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의식에 근거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체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세 가지 정당성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각력(sentience), 경험적(experiential), 인지적(cognitive) 기준이라 부른다.
정서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지각력에 가장 쉽게 공감한다. 우리 모두는 학대받는 아이나 개를 보면 본능적으로 강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타자의 고통을 느끼며 공감한다. 따라서 나의 도덕적 직관은 고통받을 수 있는 주체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어느 정도 고통을 겪을 수 있고, 삶을 즐길 수 있으며, 세상을 보고, 냄새 맡고, 들을 수 있는 존재이다. 모두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
물고기는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를 수 없고, 냉혈을 지니며,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복지를 옹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그들이 신속하게 죽을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끔찍하고 무분별한 방식으로 매년 약 1조 마리의 물고기를 죽이고 있으며, 지각력을 지닌 생명체를 100억 마리를 죽이고 있다. 만약 도덕적 원호(圓弧)가 정의(正義)로 향한다면 인류는 우리 모두가 연루된 일상적인 잔학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지각력(衆生)에 대한 불교의 태도는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다. 우리는 모든 동물을 의식이 있는 존재로, 그 자체로서 느끼는 존재로 대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의 울타리, 동물 우리, 칼날, 총알, 앞에 그리고 레벤스라움(Lebensraum, 식민 이주 정책)을 향한 우리의 무자비한 욕망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이 우주를 함께 여행하는 우리의 동반자들에게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언젠가 인류는 생명의 나무 위의 우리 친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그것이 말을 하든, 울든, 짖든, 우른 소리를 내든, 울부짖든, 지저귀든, 비명을 지르든, 윙윙거리든, 아무 소리도 없든, 그 여부를 떠나서 보편적인 윤리적 태도를 적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삶을 경험하며, 결국은 두 영원(천당과 지옥 즉, 6도윤회)를 함께 여행하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생명, 그 자체의 감각-크리스토퍼 코흐 저> p324~332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