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구속사 강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유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셉은 형들이 베냐민을 아끼고 있으며 아버지 야곱이 자기를 대신하여 베냐민을 각별히 사랑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형들이 아버지를 극진히 섬기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하여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셉은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을 이겨내지 못하여 방성대곡하며 형들 앞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요셉은 형들에게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창 45:3)고 하며 아버지의 안부를 다시 확인하고 자신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임을 밝혔다. 그리고 형들을 향해 위로하며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고 하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루어 진 것임을 밝혀주었다.
1. 역사에 대한 요셉의 해석
요셉은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6-8)고 하며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창 45:9-11)고 하며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도록 종용하였다.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은 요셉이 각성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형제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 후손들을 번창케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집’을 보존케 하기 위해 애굽과 주변의 수많은 생명들도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셉의 개인적인 존재 의식을 떠나 ‘이스라엘의 집’ 나아가 온 세상 백성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단순히 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집’을 보존케 하는데 있으며 이스라엘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애굽과 온 세상 사람들의 생존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요셉은 아버지의 가속과 그 소속들이 더 이상 결핍으로 말미암아 큰 해를 입기 전에 애굽으로 이주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셉이 평상시 ‘야곱의 집’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요셉은 비록 애굽의 총리로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최대 관심사는 ‘야곱과 그 집’에 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야곱으로 말미암아 12 아들이 번성한 것은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과 같다는 사실을 요셉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요셉은 야곱과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에 향후 5년이나 남아 있는 기근으로부터 그 가족들을 보살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를 구성할 정도의 인구로 그 가족들이 성장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그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밝혀진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가나안 땅에 건설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땅은 아직도 이방인들이 살고 있고 언제든지 분쟁의 불씨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족들의 생존에 위협을 가져다 줄 요인이 산재해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애굽은 국제적인 정세로 볼 때 훨씬 안정적이며 풍부한 물자로 말미암아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공동체’로 장성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곳이었다.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요셉은 야곱과 그 식구들이 애굽으로 이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가나안에서 들어 온 야곱과 그 식솔들을 위해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과정을 보아 알 수 있다. 요셉은 아무런 조처 없이 막연하게 그 식구들을 애굽으로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야곱
이 말을 들은 형들은 비로소 요셉의 생존을 확인하고 서로 입맞추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미 형제들간의 정을 확인한 상태여서 그들은 요셉과 속히 화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받을 야곱의 아들들로서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서 ‘이스라엘 집’에 대한 역사적인 존재 의식을 형제들은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왔다는 소식이 바로에게 전해지자 바로는 요셉에게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창 45:17-20)말하며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요셉의 환대를 받은 형들은 야곱에게 돌아가 요셉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로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아버지를 모셔 오라고 한 말을 전했다. 갑작스런 낭보를 접한 야곱은 아들들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도 요셉이 보낸 예물과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하여 요셉을 만나기 위해 즉시 길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야곱의 행보는 오랜 기근 가운데서도 가나안을 떠나려 하지 않던 야곱의 태도가 급변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야곱이 자기를 태우기 위해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는 기록은 그동안 그의 기력이 급작히 쇠한 상태였음을 암시한다. 요셉과 시므온을 잃은 상태에서 베냐민까지 잃지 않을까 염려했던 야곱의 심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야곱의 심정은 부모가 가지는 자식에 대한 연민일 뿐만 아니라 ‘야곱의 집’에 대한 역사적인 위치에 대한 불안감에서 더욱 고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잃었던 시므온과 베냐민을 다시 만났을 뿐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야곱으로서는 그 동안의 염려가 변하여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확고한 확신으로 변하게 되었다. 한 평생동안 야곱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건설될 것인가에 대해 노심초사 바라보며 사는 것이었다. 이미 12 아들을 생산한 그로서는 그 많은 식솔들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비좁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의 큰 민족으로 형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앞에 노출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야곱으로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야곱이 처음 가나안으로 들어 올 때 세계 사람들과 분쟁을 원치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더욱이 지속되는 기근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가솔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요셉이나 시므온이나 베냐민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떠나 식솔들 전반에 대한 위기라는 점에서 야곱은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요셉의 생존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야곱의 모든 가족들이 가나안보다는 좀더 풍요롭고 외부의 위협이 적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야곱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