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신앙의 3요소 (잠 19:21-23)
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이 시간에 “바른 신앙의 3요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바른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지정의가 고루 갖추어진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우리 인격의 3요소가 지정의이듯이 신앙의 구성요소도 그렇습니다. 만약 어느 한편으로 치우친다면 사탄의 시험에 빠지는 등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고 말씀했습니다. 이 속에는 지정의를 고루 갖춘 신앙이 들어있습니다.
그럼 바른 신앙은 어떤 것일까요?
1. 말씀의 냉철함이 있어야 합니다.
21절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어떤 일을 위해 사람이 아무리 다양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대비되고 있는데 여기서 사람의 계획이 우리의 생각이라면 여호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래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내려놓고 말씀에 서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사55:8-9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러므로 말씀의 기초에 서야 합니다.
예외란 없어요. 성경과 다르면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14:12에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했고, 잠16:25에도 동일한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바로 하려면 눈을 부릅뜨고 바로 분별하며 해야 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진리 가지고 시험하잖아요. 그러니까 교묘하게 포장한 비진리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교단들이 이단 교리와 타협하고 세상 문화와 타협하고 이방종교와 타협하는 일들이 많은데 이건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 번 다시 못 박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날처럼 예리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말씀으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 말씀으로는 죄인을 구원해 내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양육해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시험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22절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여기 “인자”란 ‘헤세드’인데 이 말은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할 때는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자기 백성에 대해서 변하지 않고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며, 인간과 관련하여 사용할 때도 역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헤세드에 두 종류 사람이 있습니다. 하반 절에 나오듯 가난한 자와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즉 가짜와 진짜입니다.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이냐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거짓말하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싶지만 가난해서 온전히 섬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은 안타까워하는 그 중심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능력대로 사랑하십시다. 그리고 능력으로 안 되면 기도로 사랑하십니다. 기도로 돕는 것도 크게 돕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 뜨거움은 신앙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그래서 롬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습니다.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열심 떨어지면 죽은 것입니다.
합동찬송에만 있는 찬송 아시죠? 384장 “성도들아 곧 깨어서 열심을 내어라, 있는 용맹 다하여서 속속히 나가세, 저 생명의 면류관은 너를 주시려고, 천국가는 경주장에 예비한 것일세.”
그럼 얼마나 사랑해야 합니까?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한 것처럼 하나님께 사랑받고 이웃에게 칭송 받을 만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해야 사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경외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2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며 생사화복의 주관자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한 그 분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할 때 자기 영혼이 구원 받게 됨은 물론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형통의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입니다. 말이 아니고 삶입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게으르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가고 그 농부만이 집에 남아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 간 큰 도둑이 대낮에 담을 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둑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마음속으로만 ‘어 도둑이네... 저놈 담장을 넘어 마당에 들어오기만 해 봐라’ 중얼거리며 다시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이내 다시 ‘쿵’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부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도둑이 담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살금살금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부는 무겁게 내리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집 안에 들어오기만 해 봐라’ 농부가 깊이 잠든 줄 안 도둑은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와 농부의 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는 잠에 취한 채 중얼거렸습니다.
‘어 저 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뭘 가지고 나오기만 해 봐라...’얼마 후 도둑은 안방에서 값이 나갈 만한 물건들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게으른 집 주인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도둑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잠꼬대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 놈 다시 오기만 해 봐라’ 이처럼 말씀을 배워도 행함이 없다면 이 게으른 농부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미국의료계에서 활동 중인 원종수 박사 간증으로 유명하지요. 원박사는 아버님을 여의고 어머니만 모시고 살아가는데 중학교 3학년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밖에서 얼어서 죽어가는 노숙자 노인 한 분을 모시고 와서 부엌에 큰 다라에다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서는 “종수야 어르신 목욕시켜드려라.”, 더럽고 냄새나는 그 노인을 잘 목욕시켜드리니까 또 “이 옷 입혀드려라.” 그런 다음에 아랫목에 모셔다가 따뜻한 밥을 한상 차려드렸습니다.
어린 종수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머니는 왜 거지 할아버지를 데려다가 목욕시키라고 하고 내가 먹을 밥을 할아버지에게 드리셨을까? 그런데 그는 어렸지만 어머니 말씀 싫다고 하지 않고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생동안 복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지혜를 구했더니 꼴등에서 두 번째 가던 그가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다 외워지는 지혜를 받아 전교에서 1등 나고 서울대 의대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미국에서 암 전문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 노인이 노숙자로 변장한 예수님이신지 아닌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지만 이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대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정의를 다 갖추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신앙도 지정의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지정의를 갖추되 그냥 지정의가 아닌 진리의 말씀의 지와 뜨거운 사랑의 정과 하나님을 경외함의 실천이 담긴 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정의 신앙의 3요소를 두루 갖춰 바른 신앙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