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지일차두시운(至日次杜詩韻)」 동짓날 두보의 시(詩)를 차운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 후기 문신이자 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의 거제도 유배문학 「지일차두시운(至日次杜詩韻)」은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가 기주(夔州) 시절에 지은 동짓날의 시 「동지(冬至)」 혹은 「지일(至日)」의 운자(韻字)를 그대로 빌려와 지은 차운시(次韻詩)다. 두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타향(변방)에서 맞이하는 동짓날의 애수와 우국(憂國)의 심정'을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다.
○ 먼저 문학적 공통점을 살펴보겠다. 김진규와 두보의 두 시는 창작 배경과 구조적 전개, 제재(소재) 측면에서 매우 긴밀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유배 및 유랑의 공간적 배경을 공유한다. 두보가 안사의 난(755~763) 이후 가난과 질병 속에 기주(夔州)라는 외진 타향을 떠돌 때 이 시를 썼다면, 김진규는 숙종 연간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몰락하면서 거제도(絶域)로 귀양을 가 있던 유배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다. 둘째로 동짓날이 주는 시간적 매개을 공유했다. 동지(至日)는 음기가 극에 달했다가 '하나의 양기가 다시 살아나는(一陽來復)' 절기다. 옛사람들은 동지에 온 가족이 모여 한 해를 마감하고 새출발을 축하했으나, 두 시인 모두 "가장 따뜻해야 할 날에 홀로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다"는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세 번째로 김진규가 두보의 시를 차운했기 때문에, 두 시는 동일한 압운(人, 親, 宸, 秦)을 사용하며 율시의 감정적 흐름을 똑같이 따라갔다. 나그네(유배객)의 신세 한탄 →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 → 조정(임금)을 향한 충정 → 가로막힌 현실에 대한 절망과 미로감의 구조로 흘러간다.
○ 다음으로 두 작품의 특징과 차운(次韻)의 묘미가 있다. 두 작품의 구절을 직접 비교해 보면 김진규가 두보의 시 정신을 어떻게 조선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변용)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주요 특징으로, 두보의 보편적 슬픔과 김진규의 구체적 가형(家兄)의 슬픔을 묘사했다. 두보는 늙어가는 처지와 변방 풍속 속에서의 소외감을 노래한 반면, 김진규는 거제도라는 구체적 공간(絶域)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思親)'과 '임금에 대한 충정(戀北宸)'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투영했다. 그리고 두보가 바라보고 싶어 했던 '삼진(황제가 있는 곳)'을, 김진규는 '한수(한강)'와 두보의 시어인 '함진(長安)'을 중첩해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조선의 현실을 당나라의 고사에 완벽히 병치시켰다.
○ 마지막으로, 두 한시의 이면에 흐르는 심리적 기제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3가지 철학적·상황적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① 양기(陽氣)의 복귀(來復)의 심리와 현실적 괴리감에 절망을 극대화했다. 동짓날은 역학적으로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했다가 마침내 한 줄기 양(陽)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희망의 시점'이다. 그러나 시인들의 심리는 자연의 섭리(회복)와 인간의 현실(유배·유랑) 간의 괴리로 인해 더 큰 절망에 빠진다. 대자연은 순환하여 봄을 준비하는데, 자신들의 신세는 여전히 겨울(유배지)에 갇혀 있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시 전체를 지배한다. 두 번째로 ② 소외감과 투사를 통한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다. 두보는 타향의 축제 분위기(天邊風俗自相親)에서 철저히 소외된 외로움을 느낀다. 김진규 역시 명절날(佳辰) 홀로 어머님을 생각하며 극도의 소외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이들은 멀리 전당(朝廷)에서 조회를 마치는 관원들의 모습(鳴玉朝來散紫宸)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과거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집착과 현재의 초라함이 부딪히는 인지적 부조화를 겪고 있다. 마무리로 ③ 두 시는 모두 '길을 잃었다(路迷)', '가로막혔다(阻)'는 심리적 폐쇄성으로 끝을 맺었다. 물리적으로 고향 및 조정과 차단된 상태는 시인들에게 단순한 고독을 넘어, '내 삶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와 막막함을 유발한다. 김진규가 "언제 한강수와 통하겠는가"라며 읊조리는 것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실낱같은 구원의 기회를 갈망하는 고립된 인간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결국 김진규의 「지일차두시운」은 단순한 모방 시가 아니다. 두보라는 대시인의 비극적 삶과 심리에 깊이 공감(Empathy)하고, 그것을 거제도 유배라는 자신의 가혹한 현실 정치적 상황에 대입해 승화시킨 조선 후기 유배 문학의 정수이자, 절망 속에서도 충(忠)과 효(孝)를 잃지 않으려 했던 지식인의 눈물겨운 내면의 독백이다.
이어 김진규(金鎭圭)의 「지일차두시운(至日次杜詩韻)」과 두보(杜甫)의 「지일(至日」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6-1) 다음 ‘眞’ 운목(운통)의 칠언율시 「지일차두시운(至日次杜詩韻)」 ‘동지(至日)에 두보(杜甫)의 시운을 따라 짓다’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선생이 거제도 유배 중(謫中)에 지은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유배지에서 동지를 맞아 임금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경을 담은 한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숙종 연간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남인과의 대립으로 거제도에서 유배형을 살았던 김진규의 절절한 심경이 투영되어 있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 두보(杜甫)가 느꼈던 방랑과 우국의 고독을 자신의 처지에 대입(次韻)하여, 계절의 변화(冬至) 속에서도 풀리지 않는 정치적 겨울과 고독감을 노래했다. 유배객으로서의 신세 한탄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에 대한 효심(思親)과 임금을 향한 변함없는 충정(戀君)을 시각적 쓸쓸함과 결부하여 격조 높게 표현한 명작이다.
**「지일차두시운(至日次杜詩韻)」** ‘동지(至日)에 두보(杜甫)의 시운을 따라 짓다’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一陽猶復窮陰節 양기 돌아왔으나 여전히 혹독한 겨울,
萬死長爲絶域人 만 번 죽을 고비 넘겨 변방의 죄인 됐네.
連歲不堪遙去國 해 바뀌어도 서울 떠난 신세 견디기 힘든데
佳辰况是倍思親 좋은 명절 맞으니 부모님 생각 갑절이나 나네.
愁添綉線憐西日 낮 길어져 시름 깊은데 지는 해 처량하고
眼想鑪香戀北宸 향로 연기 그리며 북쪽 궁궐 바라보네.
竹浦無因通漢水 이곳 포구는 한강으로 통할 길 없으니
釰門那獨阻咸秦 검문관 험한 길만 진나라를 막았으랴.
[주1] 일양(一陽) :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양(陽)의 기운이 처음 생겨남을 뜻함.
[주2] 궁음절(窮陰節) :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한 때, 즉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의미하며 화자가 처한 절박한 정치적 상황을 비유했다.
[주3] 절역(絶域) : 조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변방이나 유배지를 뜻한다. 김진규는 거제도에서 5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주4] 거국(去國) : 임금이 계신 나라의 수도(한양)를 떠나옴을 의미한다.
[주5] 수선(綉線) : 궁중의 여인들이 동지 이후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바느질 실(자수선)을 더 늘려서 잡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유배지에서 길어지는 낮 동안 수심이 더해짐을 뜻한다.
[주6] 북신(北宸) : 북극성, 즉 임금이 계신 궁궐을 상징.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시어다.
[주7] 죽포(竹浦)와 한수(漢水) : 김진규의 호인 '죽천(竹泉)'은 거제도 유배지 배소의 샘물 이름이고 죽포(竹浦)는 배소와 가까운 거제시 거제면 죽림포(竹林浦) 포구를 말한다. 한수(漢水)는 임금이 계신 서울의 한강을 비유함.
[주8] 검문(釰門)과 함진(咸秦) : 촉나라의 험난한 관문인 '검문관'과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을 뜻한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지명을 차용하여, 자신의 유배지와 서울 사이를 가로막은 현실 장벽이 촉도(蜀道)만큼이나 험난함을 강조했다.
6-2)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 「지일(至日」 ‘동짓날’은 중국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지은 한시다. 안사의 난(755~763) 이후 타향을 떠돌던 두보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본격적인 봄의 기운이 시작된다는 동짓날에 느낀 객지의 쓸쓸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조정(국가)을 향한 충정을 애절하게 담아낸 명작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전란을 피해 타향을 떠돌아다니며 늙고 병든 두보의 비장한 심경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쓰인 작품이다. 동짓날은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희망적인 날이지만, 가족 없이 홀로 타향의 강가를 떠도는 나그네 두보에게는 오히려 외로움과 가난의 고통(窮愁)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날이다.
[전반부(1~4구)]에선, 타향에서 쓸쓸하게 동지를 맞이하며 거울이나 강물에 비친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한탄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명절을 맞아 화기애애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이방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낀다.
[후반부(5~8구)]에선, 공간적 대비가 일어난다. 현재 시인은 눈 덮인 시골 골짜기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지만, 마음은 과거 수도 장안에서 백관들과 함께 패옥 소리를 울리며 조회에 참석하던 영광스러운 시절을 향해 있다.
결국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우국충정)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절망감 때문에 "마음이 한 치도 남지 않고 다 찢어졌다(心折此時無一寸)"고 고백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두보 특유의 사실적이고 애절한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율시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지일(至日」** 동짓날 / 두보(杜甫 712~770)
年年至日長為客 해마다 동짓날이면 늘 나그네 신세가 되니
忽忽窮愁泥殺人 문득 깨달은 절박한 시름이 죽일 듯이 달라붙네.
江上形容吾獨老 강가의 내 몰골은 나 혼자 늙어 가는데
天邊風俗自相親 하늘 가 타향의 풍속은 저희끼리 친하구나.
杖藜雪後臨丹壑 눈 내린 뒤 명아주 지팡이 짚고 깊은 골짜기 바라보며
鳴玉朝來散紫宸 패옥 소리 울리며 아침 조회 후 흩어지던 대궐을 생각하네.
心折此時無一寸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찢겨 나가 남은 한 조각마저 없는데
路迷何處見三秦 길은 아득하니 어느 곳에서 장안(고향)을 바라볼 수 있을까.
[주1] 지일(至日) : 겨울 동지(冬至). 옛 중국에서는 동지를 새해의 시작만큼 큰 명절로 여겨 온 가족이 모였다.
[주2] 니살인(泥殺人) : 진흙(泥)처럼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 사람을 죽일 듯 괴롭힌다는 뜻,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는 깊은 우울함과 시름을 과장법으로 표현했다.
[주3] 강상형용(江上形容) : 강가에 비친 시인 자신의 초라하고 늙은 모습(용모)을 의미함.
[주4] 천변풍속(天邊風俗) : '하늘 가(변방)' 즉, 두보가 머물고 있는 낯선 타향의 동지 풍습이다. 자신은 소외되어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주5] 명옥(鳴玉)과 자신(紫宸) : '명옥'은 관료들이 허리에 차던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이고, '자신'은 황제가 머무는 궁궐을 뜻한다. 과거 조정에서 관직을 수행하며 조정에 출사하던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다.
[주6] 삼진(三秦) : 과거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세 명의 장수에게 나누어 주었던 땅으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 일대를 상징한다. 즉, 고향과 임금님이 계신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