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체육복 7. 경계에 있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240502
학교에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학교폭력 사안을 제외하고는 ‘학교 생활 규정’이라는 것에 규정된 대로 벌을 받게 된다. 학생선도위원회 교사들이 모여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시행령에 규정된 내용에 따라 처벌의 종류와 방법을 결정한다.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줄 수 있는 징계는 딱 다섯 종류뿐이다. 교내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출석정지, 퇴학 처분이 그것이다. 다만 초,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다른 것은 퇴학 처분이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에서 중학교까지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강제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의무교육과정인 중학교는 퇴학이 불가능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그것이 가능하다. 물론, 학교의 방침에 잘 따르지 않는 아이를 곧바로 한 방에 퇴학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잘못이 반복되거나 누적되면 단계를 거쳐 퇴학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각을 다섯 번 해서 학교 내의 봉사 처분을 받았는데, 그래도 또 지각을 반복하면 학교 내의 봉사 시간이 늘어나거나 상위 징계인 사회봉사를 받게 된다. 그래도 계속 지각이 반복되면 특별교육 이수, 출석정지를 차례로 거쳐 퇴학 처분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립학교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개근상과 정근상이라는 명칭에서도 보이듯 성실과 꾸준함을 가장 상위의 가치 중 하나로 친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그렇다. 학생은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 성실함과 꾸준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제시간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고, 교복을 챙겨입고, 자기 집 앞으로 몇 대 지나가지 않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고 등교하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첫 담임을 맡았던 반의 학생은 25명, 그중 또래보다 한 살씩 많은 복학생이 둘, 두 살이 많은 아이가 하나였다. 그중 하나인 금성이는 콧수염 없는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키는 창백한 외모였다. 하지만 녀석들이 퀸을 알 리 만무했고, 얼굴이 무척이나 하얬기 때문에 그들은 프레디 대신 뱀파이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내가 금성이를 뱀파이어라고 부른 것은 낮에 그 아이가 깨어있는 꼴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 하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조회, 종례 시간과 등하교 시간뿐이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과 오가는 시간, 밥 먹고 배출하는 시간을 빼더라도 사람이 24시간 중 매일 12시간 이상 잠만 잘 수는 없을 테니 밤에는 어떤 것이든 활동을 할 것 아닌가. 얼굴이 하얗고,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며, 이가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것을 조합하면 자동판매기처럼 탁 떠오르는 이름이 아닌가 하면서 그 별명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게다가 낮에는 바람 빠진 풍선 같아도 밤에는 또래 중에서 제법 스피드로 이름을 날리는 오토바이 라이더였으니 어딘가 배트맨의 이미지도 있고 말이다.
3월에는 그래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복학생티도 안 내고, 버스를 놓쳐 지각할 것 같으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빌려서라도 타고 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날이 풀리면서 슬슬 지각이 늘었다. 교내봉사 처분을 몇 번 받아도 잘 고쳐지지 않아 심각하게 물었다.
“금성아, 너 지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 사정이 있으면 쌤이 좀 도와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그렇게 묻고도 몇 번을 재촉하고서야 그에게 시내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어서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시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는 대신 용돈이나 가끔 보내주신다는 말을 보탰다.
“그러면 어머니는?”
경력 10년이 넘은 지금은 아이들의 가정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갑작스럽고 거칠게 묻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척하지만, 친부모와 살고 있지 않은 아이들의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대답에서 느껴지는 그 쓸쓸함과 씁쓸함, 그것을 여러 번 맛본 뒤로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도 어렸다. 새로 어머니가 된 그분과 사이가 너무 나빠 한집에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와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도 그때의 나는 참 손쉽게 말했다.
“인마, 그래도 니 인생인데 니가 스스로 잘 챙겨야지!”
수긍인지 체념인지 모를 금성이의 대답 뒤로 시답잖은 내 경험 몇 가지를 곁들이며, 나는 참 순진하게도 그가 바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금성이는 지각뿐만 아니라 흡연 등 몇 가지 잘못이 반복되고 겹쳐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데 이르렀다. 그날도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 오시지 못했고, 금성이는 홀가분한 건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건지 특별한 반응도 없이 무덤덤하게 학교를 떠나갔다.
혼란스러웠다. 인생의 길이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내세울 만한 기술도 특기도 용기도 목표도 없는 아이 하나를 덜렁 학교 울타리 밖에 도려내 놓을 만큼 지각과 흡연이 큰 잘못이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조금만 더 아이를 설득하고 바뀌도록 노력했더라면, 이런 결과는 없었으리라 자책하며 애꿎은 술을 퍼마셨다. 모두가 내 탓이다.
밤 열두 시쯤 되었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금성이 담임 선생님이죠?”
“네, 누구시죠?”
“……후유……”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술 취한 이가 내뱉는 숨소리, 나도 취했으나 직감적으로 금성이 아버지임을 느꼈다.
“당신이 선생이 맞소? 선생이면 말이야 씨발, 어? 애가 좀 잘못해도 잘 타일러 데리고 가르치고 해야지 이렇게 퇴학을 시키면 어떡하나 어?”
지금의 나였더라면 자가용도 있고 하니 아침에 그 녀석을 깨우러 가서 학교로 데리고 오거나, 같은 방향에서 오는 아이들을 순서를 짜서 깨워서 데려오라고 했을 것 같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무능력한 담임인 체하며 몇 번씩 지각을 슬쩍 눈감아 주면서 학교 밖으로 내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게, 학교에 정해진 규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런데 왠지, ‘규정대로 했다’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욕설이 이어졌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어둑한 창가에서 창밖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오토바이 중 하나에 금성이가 네가 타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 <경관의 피>에 나오는, 정의로운 경찰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의 대사 중엔 이런 게 있다. 경찰은 회색지대에 서 있어야 한다고. 그때의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교사는 교칙의 집행자인가, 학생의 변호인인가, 아니면, 역시 갈팡질팡하면서 회색지대에 서 있는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