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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받기
평행이론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17-25
(as it is written, "A FATHER OF MANY NATIONS HAVE I MADE YOU") in the presence of Him whom he believed, even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into being that which does not exist. In hope against hope he believed, so that he might become a father of many nations according to that which had been spoken, "SO SHALL YOUR DESCENDANTS BE." Without becoming weak in faith he contemplated his own body, now as good as dead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and the deadness of Sarah's womb; yet, with respect to the promise of God, he did not waver in unbelief but grew strong in faith, giving glory to God, and being fully assured that what God had promised, He was able also to perform. Therefore IT WAS ALSO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Now not for his sake only was it written that it was credited to him, but for our sake also, to whom it will be credited, as those who believe in Him who raised Jesus our Lord from the dead, He who was delivered over because of our transgressions, and was raised because of our justification. Romans 4:17-25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해 봄직한 것입니다. 평행이론이라고 하는 이 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으로 링컨 대통령과 케내디 대통령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포드극장에서, 케내디 대통령은 포드 회사에서 만든 링컨 자동차에서 각각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였는데 모두 금요일이었다 라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성경, 특히 구약의 선진들의 상황이 모두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띄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이해의 방법입니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히브리서 1:1 이라고 하였습니다.
We might have ever thought if there is someone who lives the same life with myself, that is called parallel theory, exampling the case of President Lincoln and Kennedy. Both of them died by shotgun on their head, on Friday, Lincoln was in the Ford theater, while Kennedy was in the car, Lincoln made by Ford company, stuff like that. It might be correct or not, by the way, it is proper to find some part of shape of Jesus Christ through the records of Ancestors of the Old Testament, is proper. So it is said, “God, after He spoke long ago to the fathers in the prophets in many portions and in many ways,” Hebrews 1:1
그 중에 오늘은 예수님과 이삭의 기이한 출생의 유사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내를 알지 못한 처녀에게서 탄생하였고 이삭은 죽은 자와 방불한 90세된 여여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출생에 대한 예언 혹은 약속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거니는 이삭의 모습은 우리에게 역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는 주님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못박혀서 돌아가시고 난 후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이삭은 자신을 제물로 바칠 나무를 메고 모리아 산을 오르고 죽음의 순간에 희생의 과정이 중지되고 수양이 대신 바쳐집니다.
Among them, we will take a look the similarity and the meaning of both of the birth of Jesus and Isaac. Jesus was born through a lady who did not know any man, while Isaac was come from a ninety years old lady, being prophesied or promised. The record of Isaac to wander the desert recalls us the Lord fasting for 40 days in desert as well. Jesus climbed the hill of Golgotha bearing his Cross, while Isaac was with wood to offer himself in the Mount of Moriah. After three days of the death, Jesus had been arisen from the tomb, the offering of Isaac was stopped, instead, a ram was offered.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을 예수님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도 또 한 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그보다 아들 이삭에게서 더 많은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의 한 가지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선진의 사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 의미를 알면, 발견된 그리스도의 의미가 반대편의 오늘 우리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이삭의 출생과 삶의 유사성을 살펴 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과 삶에 믿음의 능력을 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We used to think Abraham as one of the symbol of Jesus. Of course it is true, but we can find more from his son Isaac. Let me tell you something about the way of understanding of the Bible, that is, figuring out the meaning of similarity of any ancestor of Old Testament with Jesus, we can apply it to our situation for the faith and living.
먼저는 출생에 대한 예언의 유사성입니다.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첫 증거였습니다. 이 약속의 표현은 아담에게 하신 약속이나 노아에게 하신 약속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그 공통분모는 생육과 번성입니다. 이 표현은 숫자적 번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숫자에 있지 않음을 다음 구절로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10:5
First thing we would take a look is the similarity of their birth. Isaac was the first proof for the promise of God given to Abraham to let his sons be multiplied as many as sand of ocean and star of sky. This has the same meaning of the mentioning given to Adam and Noah to be multiply and be filled. We might think this promise as the number of people, but the scripture below tells us it is not, saying, “Nevertheless, with most of them God was not well-pleased; for they were laid low in the wilderness.” 1 Corinthians 10:5
인간의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출생이 보여주는 것은 그 능력의 원인이 하나님이심과 그 능력이 육체를 통하여 나타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믿음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이삭은 그리스도, 곧 연합의 믿음 자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아직 아들이 없었을 때 그 방편적인 면에서 집에서 길리운 엘리에셀이나 시종의 몸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죽은 자와 방불한 사라의 몸을 통해 이삭을 낳게 하십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 나름의 방편을 생각하고 그 열심으로 뜻을 이루려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마음과 같다고 하면 이삭의 믿음은 우리 인격과 삶에 그리스도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말합니다.
What their extraordinary births reveals us is that the source of the power is in God and it will be revealed through our body. Abraham shows us the path to reach the level of the faith of Christ, while Isaac reveals us the faith of Christ itself. When Abraham did not have any son yet, even believing the promise of God, he had tried to fulfill it as much as possible, considering Eliezer of Damascus grown in his house or Ismael the son of slave as his heir. But the will of God let Sarah give a birth to her own son in her ninety years old, and so are we. We might do everything as much as possible with our enthusiasm to fulfill the will of God, but the faith of Isaac reveals the situation of the unification of Christ.
연합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바로 하나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결국 죽음의 순간에 이 제사는 멈추게 되고 대신 수양이 바쳐졌지만 우리는 이삭의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짐승의 제사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속제나 화목, 감사 등등입니다. 그러한 어느 제사에서도 이삭을 바치는 것과 같은 제사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그 자체의 증거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하나님의 섭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시지만 우리의 믿음이 그 대상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What is the faith of the unification? The commandment to offer son, actually, had been forbidden by God. Even the offering of Isaac had been stopped at the moment of death, however, we should think about the meaning of this command of God. Many animals had been offered in many reasons and purposes in the time of Old Testament, but any of them was not offered in the same way of Isaac. He was the proof of the power and the fulfillment of God. So if Abraham loved his son Isaac, that is not different from loving God. But Isaac was not the subject of the power, God. In that meaning, the providence of God is to be revealed through visual things, but at the same time, God wants us not to stay on that object in our faith.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세기 17:21 라고 하시고 이 믿음은 모세가 말한대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13-14 라는 믿음으로 보여졌습니다. 연합의 믿음에 이르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삭이 광야를 배회하며 기도하고 주님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기도하신 마음을 생각해 봄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삭은 돕는 배필을 만나고 주님은 시험을 통과하신 후 천사들의 수종을 받게 됩니다.
So it is said, “"But My covenant I will establish with Isaac, whom Sarah will bear to you at this season next year." Genesis 17:21 and “But Moses said to the people, "Do not fear! Stand by and see the salvation of the LORD which He will accomplish for you today; for the Egyptians whom you have seen today, you will never see them again forever. "The LORD will fight for you while you keep silent."” Exodus 14:13-14 To reach to the faith of unification has been happened in our actual living so far. For that, we need to think about that Isaac wandered in desert and Jesus prayed in desert for 40 days. On there, Isaac met his wife the helper, and the Lord had passed the temptation to be served by an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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