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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기이다.
해년마다 반복되는 절기이지만
나는 아직도 무덤에 갇힌 듯 한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한번씩 하나님께 직접 나타나셔서 나에게 삶을 말해주시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믿음이 부족한 연고로 확신에 거하지 못하는 나약한 바보이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
부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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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입장과 학설은 다양하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들의 인식능력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기에 지난 2,000년 동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여러가지 상상과 억측도 많았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느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감춰 두고 부활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느니, 예수님의 정신이 만중 속에서 되살아났다는 의미라느니 등등.
중요한 거은 부활신앙은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실 기독교의 핵심신앙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으로 해명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화육(化肉)신앙,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선언, 예수님의 기적 사건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등이 그렇다.
이러한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들은 논리(logic)로 설명할 수 없는 역설 (paradox)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역설적 진리들은 선포와 믿음의 대상이지 해명과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만약 예수님이 패배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고 끝났다면 이땅에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신앙'이며 그 점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성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많은 증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니라"(막 8:31).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어떤 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신비한 몸'이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증언을 종합하자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 그대로의 몸이 아니고, 그렇다고 영적 실체도 아니었다. 즉 과학적 사고를 하는 우리의 인식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몸'이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여러 곳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방안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시기도 했으며(눅 24:36-37).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기도 했고(눅 24:43), 제자들이 그의 몸을 만질 수도 있었다.(요 20:24-29).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러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말씀하신 바울 사도는 그 몸을 자연의 몸에 대비되는 '신령한 몸'(고전 15:44), '썩지 않을 몸'(고전 15:52-54)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부활의 사실 여부를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믿음과 고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진리를 찾는 일이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절대세력을 무력화한 사건이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의 죽음의 원인을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데서 오는결과라고 증언한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가 곧 죽음이다. 그래서 결국은 죽음이라는 실체가 인간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인간 위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에게 절대세력으로 군림해 오던 불가항력적 세력도 하나님의 생명력 앞에서는 무력해진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 55)라고 죽음의 세력을 향해 담대한 도전장을 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이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불의와 악의 세력을 무력화한 사건이다. 당시 불의한 세력들은 서로 협잡 공모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 시신을 무덤 속에 봉인한 다음 승리의 쾌제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심으로써 불의와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 비록 겉으로는 이 세상을 불의와 악과 거짓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궁극적인 승리자는 참과 진리임을 증명한 사건이 바로 주님의 부활이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 육체의 죽음 저 너머의 세계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영역임을 선포한 사건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위에서 시작되지만 죽음 저 너머의 세계까지 확장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적인 시간(Kronos)뿐만 아니라 죽음 저편의 영원한 시간(Kairos)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구별을 없애버린 사건이며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다.
넷째, 따라서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본보기였다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셔서 우리도 죽음이라는 절대세력을 정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점에 대해 성서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4-5)
----> 기독교교양 100문 100답 중에서 (강영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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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resurrection , 復活)
(요약)
신적 혹은 인간적 존재가 자신의 개성 또는 개별성을 보유한 채 죽음에서 소생하는 것.
렘브란트 (Rembrandt) 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Christ Resurected), 53 x 50 cm, Oil on Board, 1634년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사도들을 그린 것으로 보임 |
이때 몸은 변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몸의 부활에 관한 신앙을 그리스도교와 관련지어 생각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교리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후기 유대교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부활에 관한 기본적인 사상은 후기 유대교에서 형성되었고, 그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로 확산되었다.
고대 근동의 종교사상이 신적 존재(예를 들면 바빌로니아 식물의 신 타무즈)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근거를 제공했으나 인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그리스 로마의 종교사상에도 영혼불멸에 관한 신앙이 있었으나 몸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없었다. 헬레니즘의 신비종교, 이를테면 이시스 여신숭배 등에 영혼의 상징적 부활이나 재생에 관한 신앙이 나타나지만 죽은 후 육체의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한 기대는 〈구약성서〉의 몇몇 구절에서 발견된다. <에제키엘>에는 의로운 이스라엘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이 있다. <다니엘>에는 한층 발전하여 의롭든 의롭지 않든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부활하리라는 소망이 나타나 있으며, 부활 후 의로운 자는 영원한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고 불의한 자는 그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룩의 시리아 묵시록 The Syriac Apocalypse of Baruch〉 같은 〈구약성서〉·〈신약성서〉 중간기 문학에도 메시아 강림 때 우주적인 부활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이렇게 그가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죽음·악마'를 물리친 그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 또는 부활제라고 하는데, 이날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축일이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기록은 4복음서인 〈마태오의 복음서〉·〈마르코의 복음서〉·〈루가의 복음서〉·〈요한의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확신과 합의를 표현하는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신약성서〉 전체, 특히 바울로의 편지(예를 들면 Ⅰ고린 15)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여자 제자 몇몇이 예수의 무덤으로 갔는데, 이 무덤은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종교법정)의 일원이며 예수의 은밀한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의 동산에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음을 알렸다. 나중에 여러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보았고, 심지어 그가 문이 잠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도 그를 보았다. 복음서 외에 부활한 주(主)가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다가 승천한 것을 언급한 기록은 <사도행전>에만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심판 전에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신앙은 조로아스터교 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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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Resurrection , 復活)
성경의 맥락에서 볼 때, 부활의 개념은 때로 죽은 사람의 영혼과 육신에 일시적으로 생명을 되돌려 주시는 하느님의 기적을 가리키는데 쓰이고 있다. 하지만 부활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말할 때 그 충만한 의미를 드러낸다. 영원하고 영광에로 드높여진 생명이 내포되어 있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교의(가르침)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부활 사상은 그리스나 유다교의 사상들과는 구별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측면에서 죽음 후의 삶을 이해했지만,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적인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육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죽은 육신이 다시 일으켜질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 몸은 이전의 몸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1세기 유다교 안에는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와 믿지 않는 사두가이가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면서 그 몸은 앞으로 올 새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 구약 성경 속 개념
구약 성경에서는 부활에 관한 사상이 뚜렷하게 표명되기보다는 암시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부활에 대한 희망이 어렴풋이나마 표명되는 경우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덕분에 생이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더하면서 현재의 생명의 범위를 넘어서는 구원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통해서이다. 또한 죽음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어둠의 장소인 저승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친교가 단절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 하느님께서 건져 주시기를 바라는 표현들 안에서도 어느 정도 부활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의롭게 살다가 죽은 이들의 다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도 부활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예언자들이 국가의 소생이나 재건으로 표현되는 미래의 희망을 선포할 때에도 죽음 이후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의식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언서들 안에서는 조금 더 분명한 형태로 부활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담겨 있으며, 특별히 다니엘서 12장 2절에서는 부활에 관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한편 엄청난 시련을 잘 이겨 내도록 순교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안에도 부활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 채로 하늘로 들려 올라간 것은 이 세상을 넘어서 지속되는 생명이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부활 사상은 서서히 발전하여, 아마도 바빌론 유배 중에 구체적으로 표명되기 시작해 다니엘서 같은 묵시 문학 작품들에서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약에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각각 사렙타 과부의 아들과 수넴 여인의 아들을 되살린 것은 부활의 관점보다는 소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과 라자로를 살리신 것이나 베드로가 도르카스를, 바오로가 에우티코스를 살린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지배하는 권한을 가지셨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들이었다.
2. 신약 성경 속 개념
신약 성경에서는 모든 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잠든 이들의 맏물로서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지셨기 때문에 믿는 이들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라는 희망을 전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과 부활에 관해 논쟁을 하셨는데 그 논쟁의 내용 안에 부활에 관한 가르침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이 부활하여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과 악한 사람이 겪게 될 영원한 징벌을 함께 지적해 주셨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께 받은 생명을 믿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부활의 중개자처럼 묘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해 준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 발현에 근거하고 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무덤이 비어 있었음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의 증언을 상세하게 전해 준다. 빈 무덤 발견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이후 그들은 이 빈 무덤에 관한 사건을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빈 무덤 이야기에 뒤이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에 관한 내용들을 전해 주고 있는데, 예수님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는 그분의 부활을 좀 더 구체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성경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지 못했는가 하면 갑자기 사라지시기도 하셨고, 문이 잠겼는데도 그리로 들어오시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보통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먹고 마시시며 제자들에게는 당신의 살과 뼈를 만져 보게도 하셨다. 이 모든 것은 부활하신 그 분과, 제자들의 눈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동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부활 발현은 당신께 대한 제자들의 믿음과 희망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요 메시아라 고백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했으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초대 교회가 선포한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하느님께서 사흘 만에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며 그분을 통해 인간에게 구원이 왔음을 선포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직의 초석이 되었고, 초대 교회에서 전례를 거행할 때 사용하던 기도문이나 찬미가 속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부활 사상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는 사도 바오로이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 선포나 믿음의 초석으로서 어느 것보다 중요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없이는 공허하고 의미 없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실로 바오로에게 있어서 부활은 하느님의 메시아적 권능이 예수님께 드러난 사건이었다.
구원 역사 안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업적들을 보증해 주고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구체적인 증거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그분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믿음의 확고한 근거가 되었다. 또한 그분의 부활은 그분께서 하느님 오른편에 메시아로 영광스럽게 들어 올려지실 것이라는 약속이 실현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을 보증해 주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마지막 날에 있을 믿는 이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다줄 결과가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서 시작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완수하신 구속 사업을 인증해 주셨다. 또한 죄와 죽음을 다스리는 당신의 권능을 보여 주셨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당신의 의지를 확인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었다. 믿는 이들의 부활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완성시키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으로부터 힘을 받아 죄로 인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결과로 인간의 삶이 변화하게 된 것을 구원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그분의 계획들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부활한 몸의 상태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바오로는 그것을 영적인 몸으로 특징지으면서 그것이 현재 인간이 지닌 육신과는 다른 것으로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영적인 몸은 불멸성과 영광과 능력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활이란 인간 실존 전체가 총체적으로 완전하게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활은 변화한 몸, 새로운 거처, 새로운 옷 같은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부활한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나 천사에 비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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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_Hr-v6LFMeM
찬양 할렐루야 by 노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