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일구다
본동떡 꽃상여 타고 가던 날
당산 나무 가지에 꽃이 피었습니다 -임규상의 시「본동떡」중에서
딱새가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목청껏 울어제낀다.
어릴적 보리밭 언덕에 꽃이 활짝 핀 아카시아 나무에 앉아 울어댔던 종달새처럼 무엇인가에 애끓는 소리가 먼데까지 울려간 듯하다.
저 딱새 소리로 움추렸던 나무는 들깨어서 움을 툭툭 틔우고 잎새는 금새 들썩거려 푸르러질 것 같다.
딱새가 “그만, 짜석아!”라고도 한 듯 밭으로 암수 한 쌍이 내려와 먹이인지 신혼방 차릴 살림인지 무엇인가를 물어나른다.
춘분이 지나고 봄기운이 여기저기 설레발레다.
내리꽂는 곡괭이 자루에 힘이 뻗히고 걸쳤던 옷을 벗어제껴도 몸이 후끈거린다.
오늘은 논으로 뻗힌 시누대 뿌리를 캔다.
20여년 묶혀둔 남의 땅인데 시누대며 가시덤풀 온갖 껀정껀정한 풀들이 덮여서 무엇 하나 길러먹을 수 없는 야지(野地)가 되어버린 곳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발길 끊긴다면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나무들이 뿌리 내려 울창한 숲으로 온갖 생명이 찾아들 것이란 생각도 꾹꾹 눌러버리고 대뿌리와 괭이에만 마음을 쏟는다.
재작년에 일궜던 아랫배미(30여평)는 밭으로 쓰고 있는데 작년 가을에 심었던 봄똥배추에 벌써 노란 꽃이 피어 벌나비들을 불러들인다. 또 한쪽은 겨울 내내 땍 옹그러보타 딸싹 못했던 허리들을 곧추 세우고 어디로 뻗힐까, 두리번거며 사방으로 뻗혀나갈 총총한 마늘이다.
아랫배미를 일굴 때 재작년 겨울에 때뿌리 파는 일을 하다 말다 몇 개월이 걸렸는데 산밭에 가시던 강진아제가 쳐다보더니 “ 뭔 힘을 그렇게 써싼가, 포크레인 한번 불러불소, 젠장” 속으로는 벌쩍 튀면서 겉으로는 “예, 그래야지요” 이런 말 저런 말이 싫어 쌈빡하게 대답했더니 “그라소” 하며 가던 산밭길을 이제 쳐다보니 이 봄날이 되어도 발길이 끊기고 올 농사는 어떻게 짓게 될란지 아제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그 때 포크레인 같은 자연 파괴적인(다 사람의 짓거리) 기계가 싫고 자연에서 일을 통해 몸이 살아나고 마음이 깨는 순간들을 어떤 것에 맡길 수 있겠소, 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톱날을 몇 번 갈고 괭이자루를 몇 번 부러뜨리며 일궜던 땅으로
찾아든 어치떼와 느닷없이 소락때기 지르며 앞산으로 날아간 꿩꿩과 바람에 제각각 실린 나뭇가지들의 모습과 고랑 얼음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각시(오래 오래 살았지만)가 내온 새참거리로 논둑에 퍼질러 앉아 고향과 옛일과 지금 사는 얘기로 깊어질 때쯤 송이송이 눈이 끝도 없이 내리지 않았던가.
언제였던가
재작년이었고 어제였고 오늘이었고 이 순간의 일도
한번 가면
다가올 미래도 내일도 순간의 일도
어제가 되고 작년이 되고 먼 날들의 추억 속에 사라져 버리지 않겠는가
그란디 어쩌자는것인가
눈 앞에 보이는 것에나 화들짝 깨어야 하지 않겠는가
딛고 있는 땅에서 그래도 나를 살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쉬면서 재작년 일궜던 밭을 내려다보며 지금 내 꼬락서니를 보니 여기 저기 살아있는 흙을 짓밟으며 힘 쓴 일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물짠한 찬물 벌컥대며 또 습관처럼 마음 다잡는 일에 묶여 있으니 도대체 이 썩빠리같은 삶이 무었이다냐.
「어젯밤 비에 핀 꽃/ 아침 바람에 지네」1
「하얀목련」 2 피고 「 봄날은 간다 3 는데
목련이 지고 봄날이 가버리면 삶은 끝나는 거냐
괭이 자루를 다시 움켜쥔다
괭이를 내리치는데 울컥한 속이었는지 돌덩이가 여지없이 튀어나오지 않은가
불똥까지 튀었다
닭들이 놀래 퍼드득 줄달음이다
며칠 걸려서 다 파내고 몇 평 남았다.
여기는 일단 밭으로 쓰일 것이다.
무엇을 심을까
새도 나비도 비도 식구(食口)도 눈도 바람도 풀도 벌레도 나도 밭작물도 우글거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겠지.
봄은 다시금 오기는 올랑가!
1. 하얀목련 -양희은 노래
2. 봄날은 간다-김윤아 노래
3. 송한필의 한시(漢詩) -우음(偶吟 )시에서
첫댓글 그냥 사는 얘기인데 이전 글에 답글들 고맙네요. 그때 그때 딜다보고 답글도 달고 다른 사람 글도 찬찬히 봐가며 댓글도 보내야 함이 좋은 일인데 쉽지가 않습니다. 두루두루 잘들 계시지요 ?
올려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해주시는 소식, 반갑고 고맙네요.^^
지금이라도 웃통벗어 재끼고 괭이자루 잡아야 할것같은 마음이 듭니다..^^*
따순 날, 즐겁게 일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