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 03.
2023년 2월 8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 국무위원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다. 당시 민주당은 이 장관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장관 탄핵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지난 2022년 9월부터 나왔다. 당시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뿐 아니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도 주장했다. 한동훈 장관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단행했기 때문에, 이상민 장관은 행안부 내 경찰국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번에는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주장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주장은 을사오적들이 똑같이 주장한 것”이라며 “대통령과 장관 행위는 헌법이 정한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 탄핵도 다시 들고나왔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의 가결 선포 행위가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권한쟁의 청구인이었던 한동훈 장관 탄핵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직까지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지만,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한 장관에 대한 탄핵 주장을 꺾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이 헌재 결정 중 자신들이 ‘선호’하는 부분을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3일 이른바 검수완박법 합법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헌법 재판관 9명 중 5명이 각하, 4명은 취소 결정으로, 해당 법안은 유효하다고 결론이 났다. 결정문에서 헌재는 수사권이나 소추권이 행정부 중 어느 특정 기관에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헌법상 근거는 없다고 봤다. 즉, 영장 신청권이 검사의 권한이지만, 이를 ‘헌법상 검사의 수사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사항 중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검사와 한동훈 장관이 청구인으로서의 자격을 갖는가 하는 부분이다. 헌재는 검사가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한 행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권한쟁의를 신청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 봤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은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법률상 권한을 제한받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즉, 법무부 장관은 검사를 지휘, 감독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할 권한이 있지만, 검수완박법으로 이런 권한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한동훈 장관의 청구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5명은 각하, 4명은 인용으로 ‘청구인 적격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진다.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즉, 인위적으로 가결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위법성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나온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헌재 결정의 ‘논리적 연계’에 대해 의문점을 말하려 한다.
정치는 결과를 갖고 성공 여부를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의로 추진한 정책이라도 결과적으로 다수 국민이 피해를 봤다면 이는 실패한 정치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은 다르다. 민주주의는 효율적 시스템은 아니다. 특정 사안을 놓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과 끊임없이 토론을 벌이고 서로 양보하면서 타협안을 도출하는 시스템이다. 타협과 양보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타협은 반대 의견도 반영해 결론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주의에서는 과정이 결과만큼 중요하다. 타협이나 양보의 과정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렇듯 민주주의에서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번 헌재 결정을 보면, 과정은 ‘위법’한데 결과는 ‘합법’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오프사이드는 분명하지만 골은 유효하다는 논리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당혹스러운 점은 민주당은 결론만을 주장하며 한동훈 장관 탄핵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과정은 위법하지만 결과는 합법이라는 ‘혼란스러움’을 간과했을 뿐 아니라 헌법 재판관 9명 중 4명은 한 장관과 검사 6명의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인용했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5:4로 결론 났으니, 4명의 헌법 재판관의 의견은 무시해도 좋다는 식으로 들린다.
민주당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수제만을 신봉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수제’가 아니라 ‘합의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민주당의 ‘다수제’ 신봉은 검수완박법, 임대차 3법, 양곡관리법 등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문제가 없다는 ‘다수제’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습관적 탄핵 증후군’과 연결된다. 탄핵은 정말 신중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국가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출범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3명의 장관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고, 이 중 한 명은 이미 탄핵 소추 과정에 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마저 주장한다는 것은, 공당(公黨)으로서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현재 행안부 장관도 ‘공석 아닌 공석’인 상황인데, 외교부 장관, 법무부 장관마저 탄핵을 밀어붙이면, 윤석열 정권은 ‘차관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이렇게 운영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런 민주당의 사고와 행동 근저에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견제’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친 견제는 ‘정권에 대한 증오’와 혼동될 수 있다. 이런 우려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의 인터넷 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 제고를 위한 시급한 과제를 꼽는 항목에서 ‘윤석열정부에 대한 견제’는 8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 야당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당으로서의 야당 신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잦은 탄핵 주장은 본인들을 위해서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해 보인다. 충격도 잦으면,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3호 (2023.04.05~2023.04.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