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05.
자동차 안전벨트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에어백이 장착된 이후 사고 건수가 줄었을까? 경제학자 펠츠먼(Sam Peltzman)의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안전벨트를 맨 운전자들은 속도를 더 내고 덜 조심하며 운전한다. 안전밸트와 에어백 덕에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의 생존 확률은 높아지지만, 사고 건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처럼 안전장치를 만들었는데 사고가 더 발생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노동 강도가 줄었는데 오히려 노동량이 더 많아지는 경우를 ‘펠츠먼 효과’(Peltzman Effect)라고 부른다.
코로나 위기에 대한 각국의 대응에서도 펠츠먼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발생 초기 허술한 방역 조치로 인해 확진자와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던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 국가로 낙인찍히고, 일상으로의 회복이 더 더딜 것처럼 보였지만 백신을 신속히 공급하여 빠르게 확진자 수를 감소시켜 나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던 우리나라는 백신 확보가 늦어졌으니 일종의 펠츠먼 효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코로나 사망자가 51만명을 넘어선 대표적인 방역 실패 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인 사망자가 42만명 수준이었으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백신 접종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모더나,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백신으로 현재 7500만명이 접종을 마쳐 인구 100명당 23명에게 백신을 접종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 이내에 1억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 가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7만명으로 치솟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출현한 영국에서는 봉쇄 조치를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극단적인 조치를 감행했다. 곧이어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로 2000만명 넘게 백신을 접종하여 현재 인구 100명당 31명이 백신을 접종한 상태다. 하루 약 1만2000명의 확진자를 기록하던 이스라엘은 봉쇄 조치와 100명당 94명 접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백신 접종 속도로 확진자 수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60세 이상 확진자가 감소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4월에 일상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대의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 초기 중국발 바이러스를 봉쇄하지 않은 정부가 원성을 피해 갈 수 있었던 것은 마스크 배급의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생명줄처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준 질서 정연한 국민 덕분이다. 그런 성실한 국민 덕에 코로나 종식에 대해 느슨해진 정부는 K방역 자랑이나 하고 백신 구매에 태만했다. 백신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안전성과 효과성 우려 때문에 외국의 접종 동향을 보고 백신 도입을 탄력적으로 결정할 거라던 정부는 OECD 국가 중 백신 접종국 순위 꼴찌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코로나는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종식될 수 없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만이 일상 회복의 유일한 길이다. 원칙이 없는 뒤죽박죽 사회적 거리 두기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업을 하지 못해 폐업한 자영업자나 빚을 내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1~3차 재난지원금에 쏟아부은 재정은 약 37조원이다. 약 20조원 규모의 4차 재난지원금을 지출할 예정이고 코로나 종식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니 5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수도 있다.
백신 접종 예산은 1조3000억원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자영업자의 손실 보상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예산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무능한 이 정부는 국민 협조에 따른 방역 효과에 취해 정부 재정을 축내고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국민위로금을 지급한다는 생색내기로 코로나 위기를 이용하려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세금이나 국채 발행으로 조달되는 재난지원금이나 위로금이 아니라 백신 접종이다. 선진국 속도로 백신만 접종하고 있다면 재난지원금을 풀지 않고도 조만간 일상으로 돌아가 국민은 삶의 평온을 되찾을 것이고, 자영업자는 영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감염재생산지수를 고려할 경우, 국민의 70%가 2차 접종을 끝내야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는 과학적 상식 앞에 정부는 11월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공수표를 던지고 있다. 백신 1호 접종자를 쳐다보는 대통령의 어정쩡한 모습을 연출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언제 백신을 맞을지 시간표를 제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할 일이다. 한심한 정부, 아니면 국민 생명 귀한 줄 모르는 무서운 정부 둘 중 하나다.
김현숙 /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