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허리띠는 두 개다. 평범한 벨트 하나와 딸 아이가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다 준 소위 명품이라는 M사 제품의 허리띠다. 버클 하나 가격이 무려 50만 원 정도니까 명품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허리띠는 입고 있는 정장의 상의에 가려져서 누구도 내가 명품 허리띠를 차고 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나 홀로 명품인 셈이다. 그러니 그 명품이라는 게 명품 대접받을 까닭이 없다. 때론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디에 두었는지 까마득하게 잊을 때도 있다.
며칠 전에 허리띠가 없어서 찾아도 안 보여 잃어버렸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청바지에 끼워져서 한동안 찾지도, 사용하지 않고 지냈었다. 그런데 멋진 고급정장에나 어울릴 것 같은 허리띠가 베트남에서 사 온 이름도 없는 청바지에 채워져서 숨어 있던 것이다. 도대체 명품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물건에다 명품이란 딱지를 붙여서 그렇게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고 또 그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인정해 주는 걸까?
아침에 보니 이런 기사 제목이 떴다. “오늘이 가장 싸다. 명품 가격 줄줄이 인상” “또 가격 인상, 콧대 높은 유럽 명품들” “올라도 살 사람은 산다!”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서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는데 명품 제조회사들은 오히려 가격을 올려서 초호화 소비자들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결국은 품질과 가치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이라는 비열한 인간의 비교의식을 이용해서 장사해 먹고 있는 셈이다.
명품을 입거나 들고 있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일까? 최근 대통령 부인의 명품 가방 사건이 회자 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너도나도 명품 하나씩 들고 다니는 시대고 나 같은 사람도 천대받기는 하지만 명품 허리띠를 차고 다니니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 하나 들고 다니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영부인 정도 되면 이미 명품 가방이나 옷이 아니라 그 자리로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초창기 아주 평범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이름 없는 슬리퍼를 신던 것이 그냥 이미지 만들기를 위해 쇼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쇼라도 차라리 그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면서 아내에게 들은 최고의 칭찬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지난 회기 총회에서 연합회에 부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동안 타던 마티즈를 끌고 올라갔다. 중장거리 여행이 많은 임무에 경차를 탄다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무엇보다 돈도 없고 차는 아직 탈 만해서 그냥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차를 타는 나는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됐다.
하루는 처가에 갔는데 경차를 끌고 온 우리 가족을 보고는 아내가 욕을 먹은 것이다. “너 차가 그게 뭐냐? 남편 얼굴에 먹칠해도 유분수지 당장 차부터 바꿔!” 그러자 아내가 그 말을 듣고는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뭐 차가 어때서! 사람만 명품이면 됐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게 칭찬인지 뭔지 어안이벙벙해서 할 말을 잊었었다. 평소에 내가 차고 다니는 명품 허리띠처럼 전혀 명품 취급도 안 해주면서 명품 운운하니 우습기도 했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명품 가방을 든다고 명품이 되거나 값비싼 차를 탄다고 그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명품인생은 그 무엇을 가지거나 들고 다니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로 결정되는 것이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기사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 “그래, 너는 명품이냐?” “지금 명품인생을 살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