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하루만 뉴스를 안 봐도 대화에 끼기 힘들다. 1년 전 유행가를 듣는 것도 겸연쩍다. 속절없이 빠른 세상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 있다.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이다. 마을은 1970년대 어디쯤 머물러 있다. 예스러운 분위기의 일등공신은 마을 곳곳에 남은 옛 폰트다. 폰트는 마을에 극장, 쌀가게, 사진관, 주조장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해묵은 글씨 사이를 거닐자 옛 시절이었다.
시간이 멈춘 마을, 서천 판교마을
요즘 복고, 레트로가 하나의 트렌드다. 레트로‘스러운’ 수많은 곳 중 판교마을은 진짜 레트로다. 마을에는 옛 시절이 그득 고여 있다. 마을을 거닐면 오래된 건물 따라 빛바랜 간판, 녹슨 철문, 옛 폰트가 말을 걸어온다.
마을을 찾는다면 ‘한적한 시골, 허름한 마을’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마을이 원래부터 남루했던 건 아니다. 마을은 1930년에 장항선 판교역이 개통되며 쑥쑥 커나갔다. 충남에서 손꼽는 우시장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마을 인구도 8000명을 넘었다. 다 한때의 이야기다. 마을 일대는 철도시설공단 부지로 묶이며 건축 제한에 걸려 개발이 어려워졌고, 1980년대에는 우시장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판교마을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지금 마을에 남은 이들은 480명 남짓,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1970년대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판교마을 풍경
1970년대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판교마을 풍경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이가 떠난 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는다. 개발되지 않은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어르신들은 그리운 시절을 추억하고, 젊은이들은 겪어보지 못한 예스러움에 호기심을 느낀다. 마을은 1시간이면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마을을 여행하는 더 재미있는 방법은 곳곳에 남은 옛 폰트를 찾아보는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글씨들이다.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 정겹고 ‘삐까뻔쩍’하지 않아 친숙하다. 옛 글씨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레트로의 천국 속이다.
옛 판교역 앞의 판교역전슈퍼. 빛바랜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농협 창고 #지워진 곳은 어떤 글씨였을까
레트로 여행의 출발지는 마을 어귀에 있는 농협 창고다. 장항선 판교역을 마주한 채 오른쪽으로 800m가량 걸어 내려가 고석주 선생 기념공원 뒤 샛길로 들어서면 된다.
창고는 언제 세워지고 문을 닫았는지 연대 불명이다. 때밀이로 벽을 박박 문지른 듯 건물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농협 마크는 선명한 데 비해 외벽 글씨는 희뿌옇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노려봐도 “자립하는 농민 0학하는 농민 협동하0 농민” 정도가 최선이다. 자물쇠가 걸린 빨간 철문 위에는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는 표어가 남아 있다. 새마을운동 포스터에서 보던 글자처럼 첫 자음과 모음 받침의 너비가 일정해 안정감을 준다. 표어는 마을 농민들끼리 힘을 모아 잘살아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자 굳센 다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판교마을 어귀의 농협 창고
외벽의 희미한 글씨에 비해 농협 마크는 선명하다.
#옛 공관(판교극장)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마을 오른쪽 끄트머리, 판교철공소 맞은편에 ‘공관’이라 불리던 극장이 있다. 설립 시기가 새마을운동 당시였으니 50살을 바라보는 극장이다. 극장이 드물던 시절에는 부여, 보령, 서천 등 인근 주민들도 영화를 보러 판교마을로 몰려들었다. 어둑한 건물에는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영화의 한 장면에 웃고 울 생각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으리라.
낡은 건물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극장이었음을 추측하기는 힘들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1960~70년대 흥행작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가 유일한 단서다. 매표소 창구에 새겨진 영화 관람료는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지금의 1/20 가격이다.
극장임을 알 수 있는 영화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
극장임을 알 수 있는 영화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
극장이 문을 닫은 후인 1990년대에 건물은 호신술 도장으로 또 한 번 모습을 달리했다. 입구 유리창에는 ‘호신술’, ‘쌍절봉’, ‘차력’ 등 무시무시한 글씨가 남아 있다. 획의 꺾임이 한석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일정하고 멈춤 없는 물결처럼 유려하다. 왼쪽 맨 아래 글씨는 ‘낙ᅟᅥᆸ’, 원래는 ‘낙법’이었던 듯싶다. 낙법은 유도에서 갑작스레 넘어질 때 몸을 보호하는 기술을 말한다. ‘법’에서 비읍(ㅂ) 하나가 꼬꾸라졌으니 절묘하지 않은가.
1990년대에 호신술 도장으로 사용된 극장
#백세건강원·통닭집 #건강식품으로 백세까지 무병장수
“흉가 체험 아니지?” 백세건강원 사진을 보냈더니 친구에게서 받은 답장이다. 낡고 빛바랜 것으로 가득한 마을에서도 백세건강원은 으뜸이다. 지붕 슬레이트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덧댄 나무판자 역시 성한 곳이 없다. 부서지고 허물어진 것 투성이다.
붕어즙, 가물치, 흑염소 중탕, 칡즙…. 시트지를 덧댄 창에는 백세건강원의 주력 건강식품을 나열했다. 이것들만 챙겨 먹으면 백세까지 무병장수하겠다. 디지털 인쇄가 없던 시절, 시트지에 적은 글씨를 오려 붙인 탓에 ‘흑염소’ 주위에는 흰색 테두리가 남아 있고, ‘건강원’의 이응 받침은 접착력이 떨어져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전후 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건강원 건물은 통닭집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정사각형 유리창에 ‘백숙’, ‘통닭’이 한 자리씩 들어앉아 있고, 옆에 싸움을 잘하게 생긴 근육질의 닭을 그려 넣었다.
슬레이트 지붕과 낡은 나무문이 조화를 이루는 백세건강원
‘백숙’, ‘통닭’ 글씨와 근육질의 닭이 새겨진 유리창
#쌀가게·장미사진관 #주민들의 일상을 함께하던 가게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인증 샷을 가장 많이 남기는 곳,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인 적산가옥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면(판교면의 당시 이름) 주민 5500여 명을 쥐락펴락한 일본 부호 11명이 살았던 곳이다. 일본어로 “천황폐하 만세”, “쌀 주세요”라고 말해야 쌀을 얻을 수 있었단다. 광복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이 묵는 숙소였다가 그 후 반쪽은 쌀가게, 반쪽은 사진관이 됐다.
마을을 천천히 걷노라면 시간마저 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무틀에 낀 유리창에 ‘쌀, 잡곡 일절’, ‘사진관’ 글씨가 또렷하다. 두 필체가 똑 닮아 같은 간판 제작자가 작업한 듯하다. 옛 건물을 보며 드르륵, 미닫이문을 수시로 여닫았을 판교마을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쌀 한 됫박을 사서 밥을 안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을 순한 사람들을 말이다. 주민들의 일상을 함께하던 가게는 오늘날 먼 곳에서 찾아온 여행자를 맞아준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쌀가게·장미사진관
사진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는 건물 덕에 출사지로 인기가 좋다.
#동일주조장 #TEL 45의 의미는?
판교마을 여정의 종착지는 마을 북쪽의 주조장이다. 통닭집에서 위로 스무 걸음 남짓만 오르면 된다. 회백색 시멘트 건물은 세월의 때가 검게 묻었다. ‘동일주조장’. 서체는 모범생 아이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듯 점잖다. 바로 아래에 건물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TEL 45.’ 서천 지역번호가 041이 아니라 45이던 시절이다. 두 자리 지역번호가 세 자리로 바뀐 건 1996년부터이니 주조장은 그 이전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자료에 따르면 주조장의 설립연도는 1974년 이전이다.
3대째 가업을 이어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공급하던 동일주조장
술이 있는 곳에 삶의 고단함이 흐르는 법. 3대째 이어진 주조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공급하며 녹록지 않은 생활을 달래줬다. 1970년대, 쌀이 귀해 가정에서 술을 담그지 못하도록 엄하게 단속할 때도 주조장은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술 마시는 낙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열린 창 사이로 주조장 안이 보인다. 주조장의 시간은 20여 년 전에 멈춰 있다. 벽에 걸린 달력은 2000년 12월. 주조장은 2000년에 문을 닫았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2000년 12월 달력
TIP 판교마을에서 스탬프 투어하기 스탬프 투어는 판교마을 레트로 여행을 더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다. 판교역 또는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스탬프 투어 지도를 받은 뒤, 지도에 있는 6개 스폿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지도를 들고 돌아가면 마을 건물이 새겨진 그림엽서를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첫댓글 옛모습 그대로네요...
충남에서 가장 발전이 안되는곳이 서천 이예요..
지리상으로도 여건이 안좋아요..
옛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