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위대한 인물 -계백[ 階伯 ]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0. 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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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 階伯 ]
660년 여름,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백제로 쳐들어왔어요. 육지에서는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 왔지요. 당황한 의자왕1)은 계백 장군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가 신라 군대를 막도록 했어요.
신라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계백은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부인과 자식들을 불렀어요.
“나라를 잃으면 모두 적의 노예가 될 것이다. 살아서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계백은 자기 손으로 가족들을 죽이고 비장한 마음으로 황산벌로 향했어요.
“전쟁은 군사의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은 군사들의 용기를 북돋았어요. 계백의 비장한 각오를 본 백제 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임했어요. 계백이 이끄는 5천 명의 결사대는 10배나 많은 신라 군대에 맞서 네 번의 싸움을 모두 이겼지요.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신라 군대는 사기가 점점 떨어졌어요.
“이대로는 백제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화랑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어린 화랑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면 군사들도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신라 군대는 화랑들을 전쟁터로 보냈어요. 먼저 반굴이 백제 군대를 공격했지만 죽고 말았어요. 그 후 관창이 혼자 백제 군대를 향해 돌진해 갔지만 금세 사로잡히고 말았지요.
“어린 소년이 혼자서 이곳까지 오다니 네 용기가 대단하구나. 네 용기를 높이 사서 살려 보내 주겠다!”
계백은 관창을 돌려보냈어요. 하지만 관창은 또다시 백제군을 향해 달려들었어요. 계백은 할 수 없이 관창을 죽이고 그 시신을 신라 군대로 보냈어요.
“어린 화랑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린 화랑의 시신을 본 신라 군사들은 분노했어요. 계백과 백제 군대는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싸웠지만 사기가 높아진 5만의 신라 군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신라 군대의 손에 백제 군사들은 차례대로 쓰러져 갔어요. 결국 계백도 황산벌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계백이 황산벌에서 죽자 백제는 더 이상 싸울 힘을 잃고 무너지고 말았어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자 성 안에 있던 궁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어요. 궁녀들은 사비성 북쪽 절벽 위로 올라가 차례로 강물에 뛰어 내렸어요. 이 절벽의 이름을 낙화암이라고 불러요. 낙화암이란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으로 궁녀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잎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답니다.
정말로 삼천 궁녀였을까? 낙화암에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지만 그 숫자에 관한 기록은 없어요. 그런데도 흔히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가 3,000명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에요. 이것은 의자왕이 많은 숫자의 궁녀들을 거느리고 술과 향락에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려고 과장해서 표현한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