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나누실 말씀은 빛의 자녀입니다.
제가 1월달에 하나님의 뜻에 부르심을 받아서 와서 사역을 했고 사역을 하다 보니 제가 하는 포지션이 전임 부목사님이 와서 있어야 할 포지션인 게 보이고 그리고 또 계속해서 사역함에 있어서 이렇게 시간적인 또 거리적인 한계가 자꾸 느껴지면서 제가 담임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언제든지 이 자리에 맞는 목회자가 오시면 저는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고 그만둘 수 있으니 저 때문에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사역자가 있으면 뽑으시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저도 9월 여름 지나고 여름 사역 지나고서부터 계속 기도를 했고 좋은 사역자 또 계속해서 청년들을 잘 돌볼 수 있고 또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는 사역자를 위해서 기도를 했고 그 기도가 응답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그 하나님의 때는 어떨 때는 갑작스러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되게 늘어질 때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또 뜻이 있어서 저는 이제 이렇게 고별 설교를 한다는 거를 사실은 상상을 못했었는데 또 담임 목사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이렇게 고별 설교를 하고 마지막으로 성도님들께 말씀을 전하게 돼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빛에 대해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빛은 아주 중요합니다. 빛은 아주 빠르고 강하고 환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빛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전에는 어둠이었다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빛이 이제는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불이 꺼져 있던 초가 불을 붙이는 순간 그 순간 빌이 붙이는 순간 그 순간 바로 불이 붙습니다. 조금 이따 붙일게 그러지 않습니다. 붙이는 순간 바로 불이 붙어서 타기 시작하면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그 빛을 내는 것처럼 우리도 주 안에서 빛의 자녀들로서 빛을 발하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아버지 입에서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에 빛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은 어둡고 절망되었던 마음에 환한 빛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심란할 때가 있습니다. 어두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답답하고 흑암에 쌓여 있는 것 같을 때, 어디로 나아갈지 몰라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표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낙담함이 몰려올 때, 아버지의 이름만 불러도 주님 주여라고 부를 때, 그 앞에 나아갈 때에 그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빛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요한일서 5장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빚뿐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빛이므로 우리도 그 말씀 가운데에서 빛의 자녀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서 18절 말씀을 보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위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더 모은 것을 채우려고 하고 자꾸 당기게 만들고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탐욕을 자극하는 것이 세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완전한 타이밍의 온전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고 제일 처음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빛이 있으라입니다. 제일 처음 빛을 만드시고, 그리고 처음에는 빛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시는 그것이 세상의 시작이 빛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빛 자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조차도 없다고 얘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빛의 자녀로 낳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닌다면 더 이상 빛의 자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달빛도 별빛도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여 빛을 내듯이, 우리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의 빛이며 복음의 빛인 줄로 믿습니다.
9절에 빛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착한 그것 의로운 것, 진실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이든 결과물이 열매가 존재합니다. 이 열매는 오랫동안의 행함으로 인한 결과물입니다. 씨앗이 뿌려져 그 씨앗이 자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씨앗대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뿌려지지 않은 것이 솟아나고 맺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뿌려지는 그 열매를 바라보며 소망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빛의 자녀라면 그렇기 때문에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빛의 열매와 어둠의 열매를 비교해 보면 빛의 열매는 빛의 결과물로서 하나님의 속성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그 속성을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고 용서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평안함을 바랄 수 있고, 사랑하며 칭찬하며 그죠.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러한 것들이 빛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는 그러한 열매들을 맺어야 하는 것이죠.
어둠의 열매는 죄악된 것들입니다. 악한 것들입니다. 거짓된 것들입니다. 해방하고 비판하고 정제하고 걱정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근심하게 만들며 좌절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어둠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에 어둠은 자연이 물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컴컴한 방 안에서 커튼을 쫙 치는 순간 그 방 안에 빛이 쫙 들어오면서 어둠이 물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지금 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욕심과 탐욕과 여러 가지 죄악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 이상 교회를 교회로 바라보지 않고 교회 됨으로 나아가기가 힘든 교회로서의 자정 능력과 교회로서의 영향력이 펼쳐지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두운 세상, 그 어두운 세상만의 기준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세상적인 기준 가운데 우리가 빠져들어가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런 어두운 세상이라고 해서 우리가 불가항력적으로 무기력하게 그곳에서 매몰되거나 아니면 그것을 등지고 저 산속 기도원 가서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누가복음 8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햇빛의 이불을 말리는 것처럼 소독하며 멸균을 하는 것처럼,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빛을 바라며 그 등불을 켰을 때에 그 빛이 빛나서 환히 훤하게 죄악을 어둠을 몰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우리는 빛으로 밝게 해야 합니다. 우리 빛의 자녀들이 곳곳에서 빛으로 행하며 나아갈 때 빛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어둠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바다에서 파도가 몰아치고 어두운 밤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에 그 배는 찾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빨리 이 폭풍 가운데에서 안전한 폭우로 항구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찾아 헤맵니다. 불빛을 찾아 헤맵니다. 등대의 불빛을 봤을 때 그 불빛만 쫓아가면 이 어둡고 깜깜한 데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 안전한 폭우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그 항구에서 그 등대에서 비추는 빛은 살리는 빛입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그 어둠 가운데 그 빛 한 줄기가 있기 때문에 그 배는 그 빛을 발견했을 때에 그 빛을 붙잡을 때 생명줄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라스 베가스가 옛날에는 음란과 죄악의 도시 깽들이 판치는 도시 살인이 난무하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30년 전부터 남침례 교회 총회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3만 명이 모이는 총회를 라스베거스에서 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모일 때마다 3만 명이 기도합니다. 매년 모입니다. 매년 모이면서 기도합니다. 1년 2년 계속 지나면서 그곳이 이제는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즐거운 시간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가족 테마파크들이 만들어지고 그곳이 어둠의 공간이 아닌 빛의 공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꽃동산교회에 있었을 때 무디부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무디부와 영어 주일학교 부서 두 부서를 맡았었는데 무디부가 뭐예요? 그랬더니 무디가 하는 거하고 똑같이 하면 돼요. 무슨 부서죠? 그랬더니 교역자 1명 부장 집사님 교사들 3~4명 딱 그렇게 한 부서입니다. 애들은 없습니다. 애들은 어디 있죠? 밖에 있죠 그래서 연초부터 이제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 한 명 전도에 오면 너무 그 영혼이 귀한 겁니다.
모든 교사가 눈이 그냥 그 아이한테 다 쏠려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면서 그렇게 한 명 한 명 전도를 토요일마다 나가서 해서 연말까지 하니까 30명 정도가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되는구나 이 사역이 되는구나. 그때 저는 경험을 하면서 그때 많은 영적인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느꼈던 것 같고 누렸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봄 때였는데 비가 자주 오는 시즌이긴 하지만 꼭 주중에 안 오고 주일만 오전에만 꼭 그렇게 비가 옵니다. 그러면 믿음도 별로 없는 애들이 잘 안 나오게 되고 자꾸 빠지게 되고 비가 오는 게 그 아이들이 오는 거에 방해가 되는 겁니다. 그게 몇 주가 계속 겹치니까 저희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아이들이 오는데 방해가 됩니다. 다른 날 오면 안 되겠습니까? 주일날만은 비가 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우리가 기도했을 때 그 후로 계속 주일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사역의 경험,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사역 그런 것들을 할 때에 참 이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나아갈 때 본질적인 것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신 영향력을 펼쳐 나갈 때 빛으로 살 때 얼마나 그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처음 왔었을 때에 이렇게 새벽에 기도를 하면 왜 그런지 모르게 성도들을 위해서 또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는 기도가 나오곤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거는 하나님이 정말 이 구미 목장교회를 너무 사랑하시는구나 저 멀리 있는 나까지 이렇게 끌어다가 사역을 할 정도로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사역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제가 본 것은 이 구미 목장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라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이 푸드 페스티벌을 할 때 보니까 물반 고기반인 거예요.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하는데 그것도 아주 우리 교회 위치가 아주 중앙에 제일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 물반 고기반이고 그러면서 공영 주차장 쪽에서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그 벽에 동그란 창들이 있습니다. 그걸 보는데 이게 방주의 창이네 구원의 방주를 상징하는 건물로 이렇게 지어져 있네라는 것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 구미 목장교회를 보면서 이 구미 목장교회가 정말 최적의 위치에 하나님의 빛을 바라기에 이 어두운 구미를 바라게 밝히는 데 아주 좋은 위치와 또 리소스들을 갖고 있구나라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구미복장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구미 목장교회는 제가 봤을 때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구미 목장교회는 이 어두운 구미의 땅을 밝히는 빛을 발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구미 목장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생명줄을 던져서 살리는 사역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 고민할 때 이 설교를 하게 되었고,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들께 강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 영혼들을 바라보는 교회, 생명줄을 던지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