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중생과 성령 세례를 별개의 체험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생이란? 우리가 예슈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죄 가운데서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12:3, 고후 5:17). 그래서 성령님은 중생에 있어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 죄인인 우리를 주님께로 이끄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둘째,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셔서 예슈아를 구원자로 영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란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거나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성령님께 사로 잡혀 놀라운 권능을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즉,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게서 외적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사건입니다 (고전 12:7-11). 그래서 중생의 체험과 성령 세례의 체험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으나 확실한 별개의 체험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세례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첫째, 방언을 말하게 합니다. 성령 세례의 증거는 다양하나, 그 대표적인 외적 표적으로 방언을 들 수 있습니다. 둘째, 강력한 복음 전파 능력입니다. 즉, 성령 세례를 받았다면, 적극적으로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강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즉, 예슈아를 믿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는 자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을 때에 청각적, 감각적, 시각적, 영적 현상이 수반되어 자신이나 제 삼자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은사가 수반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성령 세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을 받으라는 예슈아의 명령이셨으며, 사도들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마 28장). 그리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되기 위함입니다 (롬 8장-9장, 고후 3장 17절). 그리고 영에 속한 신령한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고전 2: 13-15). 그리고 예슈아의 가르치심을 더욱 깨닫기 위함입니다 (요 14:26).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요 4:23-24). 그리고 예슈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행 1:8, 요 15:26).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권리포기의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고전 12:7). 그리고 성령님의 은사를 받고 열매를 맺기 위함압니다 (고전 12장, 갈 5:22-23). 그리고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령충만이란?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성령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금 나의 옳은 말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세울 수 있는 말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별하여 시작합니다. 그 결과 성령님의 외적, 내적 열매가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시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토라를 주신 사건과 성령을 부어주신 사건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건이며, 토라와 성령님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는 오순절 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재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계속 재충만을 받아야지 날이 갈수록 더욱 충만하게 되어 성령님께 완전히 속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을 한 인격체로 인식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하며,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분과 교제하길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격적인 성령님과 교제하며 교통하는 신앙 생활 가운데 예슈아의 십자가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우리의 심령 속에 체험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성령님의 체험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회적인 경험으로 취급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