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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31-42절.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냄. 요약설교
1.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창으로 찔러서 피와 물을 쏟은 것과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와 물까지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죽음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저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겸손히 이웃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오늘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냄>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3. 오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31-37절. 창에 옆구리를 찔려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신 예수님
38-42절. 무덤에 묻혀 장사되신 예수님
31-37절.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신 예수님이십니다.
31절.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금요일로서, 그 날 저녁부터 유대인의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큰 안식일>이란 유월절 중의 안식일이란 말입니다.
나무에 달아 죽인 시신은 저주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신 21:22, 갈 3:13), 해지기 전에 시신을 나무에서 내렸습니다(신 21:23).
오후 6시경에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시체의 다리를 망치로 꺾어서 죽이고, 시신을 빨리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으므로,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요 19:33)
(1)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아 처형시킨 죄수들을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는 계명(신 21:22)을 지키기 위해서, 시신들을 나무에서 내려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이고, 메시야를 죽인 유대인들이 가증스럽게도 의식적인 율법규정을 지키려고 하는 외식적인 종교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 이처럼 세상의 종교가들은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면서도,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잘 지킴으로써 자기가 의인인 척 착각을 합니다.
평상시에 부모님에게 마음으로 효도를 전혀 하지 않던 불효자 일수록, 돌아가신 후에 거창하게 제사를 드리고, 묘소를 거창하게 꾸밉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얼마나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이 불효막심한 자식의 모습 때문에 통탄하겠습니까?
(3) 평상시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큰며느리는 그저 먹는 대로 대접해드리고, 마음으로 친구같이 편하게 지내면서 고부간에 잘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찾아온 딸이나 둘째 며느리는 호들갑을 떨면서 외식을 시켜드린다, 목욕을 시켜드린다, 옷을 사다 드린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모시고 사는 큰며느리에게 돈이라도 주면서, <형님, 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고생이 많습니다. 제가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적은 돈이지만, 이것으로 형님 화장품이라도 하나 사시고,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형님이 알아서 사다드리세요>
아, 이러면 얼마나 형님이 고맙게 여기고, 부모님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을 사드리면서, <어머님 이것을 동서가 어머님 사드리라고 한 것이어요> 이러면 얼마나 큰 며느리 좋고, 부모님 마음 편하고 좋겠습니까? 할렐루야!
32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금요일로서, 그 날 저녁부터 유대인의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무에 달아 죽인 시신은 저주받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신 21:22, 갈 3:13), 해지기 전에 시신을 나무에서 내렸습니다(신 21:23).
오후 6시경에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시체의 다리를 망치로 꺾어서 죽이고, 시신을 빨리 처리했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2-3일간 살아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으므로,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요 19:33)
33절.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1. 보통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를 2-3일간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면서 피를 많이 흘리셨고(요 19:1), 가시관을 쓰셔서 피를 많이 흘리셨고(요 19:5), 옆구리를 창에 찔리셨기 때문에(요 19:34), 십자가에 달리신 후(12시경) 3시간만에 운명하셨습니다.
34절.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1. 다리를 꺾는다는 것은 큰 망치로 다리를 부서뜨려서, 혹시 살아나도 도망을 못 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좌우편의 강도들은 피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직 숨이 붙어있어서,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고, 가시관을 써서 피를 흘리고, 손발에 못이 박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확인 사살을 한 것입니다.
(1) 여기서 <물>이란 혈장이고, <피>란 혈소판으로서, 이미 예수님은 운명하신지가 오래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옆구리를 창으로 찌름으로, 심장도 터지고, 간도 터지고, 허파도 터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몸 속에 고여 있던 피까지 전부다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고여 있던 혈장까지 모두 다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심으로써, 우리는 예수님 믿고 죄에서 정결함을 얻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2)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 모든 피와 생명을 다 쏟아부어주셨습니다.
남김없이 주셨습니다.
옷도 주고, 명예도 주고, 피도 주고, 영혼도 주고, 목숨도 주고, 몸까지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서 평생토록 희생하신 그 사랑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그 사랑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 주셨으니,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하겠습니까?
<찬송가 356장>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우리도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4절)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시고, 희생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5절.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1. 본서의 저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서 예수님이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고, 물과 피를 쏟아서 완전히 죽으신 사실을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2.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으신 사실이 ‘참’(ἀληθῆ: truth)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당시에 일부 이단자들의 잘못된 가현설(docetism)과 시신 도둑설(마 28:11-15)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분이 아니고, 영으로 오신 분으로서 육체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가현설을 반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이서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후에 유대지도자들이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 데 대한(마 27:64: 28:11-15) 진실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36절.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1.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즉 유월절 때 어린양을 잡을 때는 그 뼈를 하나도 꺾지 않고, 통째로 구워서 먹었습니다. (출 12:46, 민 9:2)
그런데 예수님은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었기 때문에( 요 1:29, 고전 5:7-8),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37절.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1.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는 말씀은 스가랴 12장 10절(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의 예언이 성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에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어찌할꼬’하고 통회했습니다.( 행 2:37)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유대민족이 거국적으로 회개하면서 예수님 앞에 통회할 것입니다( 롬 11:23-26)
2.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악과 죽음과 마귀에게서 구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겸손히 섬기고 봉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으며,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히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의 예수님처럼 높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38-42절. 무덤에 묻혀서 장사지낸 바 되신 예수님입니다.
38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1. ‘아리마대’는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인 라마디임 소빔(삼상 1:1)을 가리키고, 예루살렘 북서쪽 100km에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원래 예수님을 믿은 신자였으나 산헤드린 공회원이라서(마 15:43) 숨어서 믿는 신자였고(눅 23:50), 부자였습니다(마 27:57).
2. 범죄로 인한 사형수라도 시체를 장사하는 일은 관대하게 허용되었습니다. (역대상 10:12, 마 14:12, 행 8:2).
그리고 시체를 장사지내준 것을 축복받을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시체를 장사지내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해주었습니다. (삼하 2:5)
메시아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된다는 것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것이(k 53:9)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39절.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1. ‘니고데모’는 일찍이 예수님께 밤에 찾아와서 중생의 도를 들었던 사람이고(요 3:1-9),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자, 예수님을 두둔한 사람이었고(요 7:50-51), 이번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한 사람이었습니다( 요 19:39).
2. 이 니고데모는 처음 예수님께 찾아온 때가 밤이었는데(요 3:2), 예수님을 믿은 후로 숨어서 믿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는데, 같은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장사지내는 모습을 보고, 니도데모도 용기를 내서 예수님 장례에 합세했던 것입니다.
3. 몰약과 침향은 값 비싼 향품인데, 왕과 같은 고관들 장례 용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하 16:14)
4. ‘한 근’ (λίτρας ἑκατόν)은 백 리트라(litras hundred )인데, 오늘날로 33kg에 해당하는(현대인의성경 요 19:39) 아주 크고 값비싼 향품이었습니다.
40절.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1. ‘유대인의 장례법’이란 창세기 50장 2-5절과 역대하 16장 14절에 말씀한 대로 향품과 세마포로 시체에 방부처리해서 장사한 것을 가리킵니다.
먼저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 등을 세마포에 발라서 몸을 휘감고, 머리는 수건에 향품을 발라서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마포 붕대로 시신을 단단하게 수의처럼 입힙니다.
2. 이처럼 예수님의 시신 처리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뿐만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살로메)등이 협력하여 처리했습니다(마 27:61).
41절.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또 무덤이 있었는데, 그 동산과 무덤은 아리마데 요셉의 것이었습니다(마 27:60).
이 무덤은 특별히 땅굴이 아니고, 돌을 파서 만든 고급 무덤이었고(마 27:60), 새 무덤이었습니다( 눅 23:53)
이처럼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묻히신 것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사 53:9)
42절.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1. 유월절이 시작되는 안식일은 큰 날이었고, 예비일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시간이 오후 3시경이었고, 안식일은 오후 6시경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 처리와 무덤 안장은 3시간 동안에 급히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마침 아리마데 요셉의 동산과 무덤이 있었고, 니고데모가 향품을 가져왔으므로, 시신 처리와 안장은 지체없이 잘 처리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보충 설교>
1.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데는, 예수님의 숨은 제자 두 사람의 봉사가 나옵니다.
12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의 높은 공직자가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였습니다.
(1)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는 것은 부활을 위하여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이 들이나 산에 방치되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2)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평상시는 드러내놓고 예수님의 제자임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두 도망가고 없을 때, 당시에 높은 산헤드린 공회원이고 부자인 아리마데 요셉이 자기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이 무덤은 참 좋은 무덤이었습니다.
돌에 굴을 파고, 돌문까지 만들어 놓은 최고급 무덤이었습니다.
보통은 동굴이 공동묘지로 쓰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이 귀한 무덤을 자기 무덤으로 준비해놓았는데, 이것을 아낌없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드렸습니다.
그 값은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참된 신앙이 없었더라면, 이처럼 희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아리마대 요셉은 마가복음 15장 43절 말씀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당돌하게 총독에게 나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잘못하면,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요셉은 의원직을 빼앗기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예수님에게 사랑과 희생을 바쳤습니다.
(3) 그렇습니다.
평상시에는 정말 저 사람이 신자인가 아닌가 의심되던 성도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믿음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공휴일날 야유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한 성도의 가정이 마땅히 놀려갈 데도 없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야유회에 따라갔습니다.
그 남편은 교회에 안 나오고, 부인과 아이들만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참 야유회를 하고 있을 때, 동네 깡패들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고 부녀자들을 희롱했습니다.
그 때, 연만하신 장로님이 나서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깡패들은 안하무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때 교회에 잘 나오지도 않던 남편이 깡패들 앞에 나섰습니다.
그 때, 깡패들이 <너 뭐야?>하니까,
이 불신 남편이 <나는 신앙이 없어서 오른 빰을 때린 자에게 왼편도 내주는 사람은 못 된다. 너희 같은 놈들을 때려주라고 예수님이 나를 오늘 여기에 보내신 것 같다>
그러면서, 깡패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쫓아버렸습니다.
그 남편은 여러 가지 무술이 공인 13단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적당하게 사용하십니다. 할렐루야!
(4) 어떤 분은 보통 때는 교회에 안 나오다가, 운동경기 때만 나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교회에서 운동경기를 한다니까, 아내랑 아이들 따라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아니면, 운동경기에 꼴등을 했을텐데, 그런 남편 때문에 1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운동회 때만 나오는 성도님도 사용하십니다. 할렐루야!
(5) 또 어떤 교회는 시험이 들어서, 교회가 싸움판이 벌어졌습니다.
그 교회는 교역자들을 쫓아내기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함 아무개라는 여전도사님이 아이들 셋을 데리고, 목회자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장로님이 여전도사님을 나가라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힘없는 여전도사님이 갈 데 없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한 여집사님 남편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 남편은 평상시에 교회에 잘 나오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교회에서 또 여전도사님을 쫓아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쫓아가서 교인들에게 <당신들이 이런 불신자만도 못한 짓을 하면, 당신들을 동네에서 못 살게 모두 쫓아내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그 후로는, 그 교회에서 교역자를 쫓아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 남편은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6) 교회에서 헌금하는 일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숨은 일꾼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중직자들은 여러분 있었지만, 사업이 시원치 않아서 헌금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회자 사례비 주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울 때마다, 누군가 한번에 3백만 원씩 혹은 7백만 원씩 헌금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재정부 장로님이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헌금하시는 분은 알 수 없는 글씨로 이름을 적어서 헌금을 하기 때문에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와서 헌금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후에 누가 헌금 하시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오신 지 얼마 안 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원양어업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어느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한국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십일조에 대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몇 달에 한 번씩 십일조를 모아서 아내를 통해 교회에 드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일자무식이기 때문에 이름도 제대로 적지 못하고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과 아내는 초신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람들이 헌금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숨은 제자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운영해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7)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엘리야 외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자 7천명을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즉, 엘리야에게 나 밖에는 하나님의 종이 없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사용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일에 아름답게 쓰임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69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2. 니고데모도 숨은 제자였습니다.
이 사람도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일찍이 밤에 예수님께 나와서, 하늘나라에 가는 길을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경험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바람이 불지만 그 모양을 볼 수 없으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통해서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12)
그 후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숨은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에, 메시야가 아니라>고 주장할 때, 니고데모는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판단하라>고 예수님을 두둔한 적도 있었습니다.(요한복음 7:50-51)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모든 제자들이 무서워 도망갔으나,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였던 것입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자기 무덤을 제공했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귀한 향품 즉 장례용품 일체를 제공했습니다.
니고데모가 드린 장례용품은 몰약과 침향 섞은 것 100근이므로, 값으로 쳐도 막대한 금액이었습니다.
이처럼, 니고데모는 기독교 박해시대에 세상 명예와 패가망신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훌륭한 숨은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평안하고, 예수님이 인기가 많을 때는 제자 노릇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박해를 당하고, 죽음에 처할 때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평상시에는 숨어있었으나, 막상 예수님이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할 때는 분연히 나서서, 불명예와 패가망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던 위대한 제자였습니다.
이 분들은 사도라는 칭호도 받지 않았으나, 위기 상황에서는 사도 이상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했던 분들입니다.
3.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국난의 시대에 충신이 나타나고, 어려운 가정에서 효자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조강지처는 어려울 때, 남편을 잘 보살피지만, 첩은 남편이 어려우면 떠나가버린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시험이 닥쳤을 때, 누가 진실한 성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건축과 같은 어려운 때 보면, 누가 충성된 성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도 가정에서 핍박을 당할 때나,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 때나, 교통사고나 병들었을 때나 자녀가 잘못 되었을 때나, 집에 불이 났을 때 보면, 누가 진실한 신앙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의 신앙은 어떤 종류의 신앙입니까?
평상시에는 마치 예수님의 수제자인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막상 핍박의 시대가 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평상시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것 같아도, 막상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명예와 가정과 목숨마저도 내걸고 충성하는 그런 성도입니까?
<아무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나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영원히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를 기리는 것처럼, 영원토록 그 이름이 빛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