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강릉 오기전 살았었던 수도 공동체 악양 은둔소에서 악양에서 살면서 느꼈던 체험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여태 악양에서 살았던 형제님들 체험기를 모아서 책을 펴낸다고 그래서 잠시 잊고 살았던 악양에서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보았다.
처음 악양에 소임으로 가기전 진주 하대동에 있을 때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기도가 빈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담은 진심을 담은 기도에 더욱더 집중을 하고자 악양으로 향하였다. 무엇보다 수도자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도직일과 소임은 둘째 치더라도 기도생활과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기에 악양에서 한 소임을 살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악양에 도착했을 때 지리산과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수도원은 기도생활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고, 부족했던 나의 기도생활과 좀 더 마음을 담은 기도를 배우는 곳으로써는 내 마음속의 가을과 같은 그러한 곳이었다.
악양에서의 생활 가운데에 가장 좋은 추억과 기억으로 남는 것은 새벽기도와 묵상이었다. 오전 오후에는 집안일과 어떻게 시간표가 바뀔지도 모르는 변수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기도와 묵상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새벽3시에 일어나서 창밖과 창밖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새벽3시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잠들고 있는 시간인듯했다. 작은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새벽3시 시간대에 가장 먼저 성경 말씀을 자그마한 소리로 읽는 것으로 시작하여 4시30분 공동묵상시간 전까지 고요한 새벽의 침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비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라도 모두가 다 잠들고 있는 시간일지라도 지리산 깊은곳의 새벽의 어두움은 그 자체가 하느님 체험이었다. 밤하늘의 달과 별들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빛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깜깜한 어두움을 필요로 하는것처럼, 또한 아침의 해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새벽의 어두움을 거처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빛이 생겨라” 하시기 전에는 짙은 어두움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부활이라는 빛을 세상에 비추기 전에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어두움이 있었듯이 지리산 악양 수도원에서의 새벽의 어두움은 나에게 있어서의 깊은 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새벽을 지나 공동묵상과 성무일도, 미사를 봉헌한 후 아침과 오후는 수도원에서의 여러 집안일과 농사일도 하였고, 가끔씩도 아닌 자주 은둔소를 방문하였던 교우들과 손님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하였던 기억들도 은둔소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실 난 은둔소라고 하여 나를 비롯하여 두 선배 형제님들과 함께 살면서 은둔소같이 지낼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가끔씩도 아닌 자주 은둔소를 방문하였던 교우들과 손님들을 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둔소는 은둔소라고 하는 건물로 지은 곳이 은둔소가 아니라 항상 하느님을 모시고 있고 하느님을 항상 바라보고 있는 곳, 내 마음속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둔소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난 지금 악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소임 이동을 하였지만 지금도 난 은둔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둔소에서 살 것이며, 은둔소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악양이라고 하는 라베르나 수도원 은둔소는 내 마음속의 가을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처럼, 나의 수도자 삶의 기도생활 가운데에 좋은 체험으로 새벽의 어두움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으로 나의 가장 깊숙한 기억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