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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강지인 동시의 어린이는 균형을 향한 회복력을 지닌 존재다. 자기가 상처를 입었더라도 상처받은 다른 존재를 용케 알아보고 살려 내는 법을 안다. 이 돌봄의 과정을 거치며 나와 대상은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하고 다시금 생기롭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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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내 마음 설명서
『달리는 구구단』을 읽으면 마치 한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기록한 일기장을 보는 기분이 든다. 시집 속의 아이는 친구를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세슘 원자의 진동수에 비교해 말하기도 하고(「1초 동안」), 자신의 속엣말이 감나무에 들어가 감으로 열린다고 말하기도 한다(「감의 고백」). 다양하게 동원되는 비유들에서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보고자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가 자신의 말을 찾아 가려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언어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언어는 언제나 마음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면에서 한계를 지닌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보고자 할 때 비유를 이용하는 이유다. 시집 속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딱 맞는 어휘를 찾아내려 사전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이나 사물, 이미지로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보여 주려 한다. 『달리는 구구단』의 시들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고, 생동감 있는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이유다. 시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기쁨을 주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지인 시인의 시에서 독자들은 비유가 갖는 재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일어서는 마음의 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아이는 내면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곧 마음이 가진 힘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시집에는 시험을 망치거나(「그렇더라니까」), 두발자전거를 타면서 자꾸 넘어지거나(「두발자전거」), 언니가 쓴 물건을 물려받기만 하는 아이의 모습(「환승」)이 그려진다. 아이들이 좌절하거나 불만을 갖고 슬퍼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달리는 구구단』 속의 아이들은 “하염없이/ 고꾸라지지만// 끊임없이/ 물구나무서는 물”(「분수」)처럼 어려운 상황과 난관을 딛고 결국엔 일어선다.
해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균형이 기우뚱 무너지려고 하거나 무너졌을 때” 시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서로 힘을 모아 협력적 치료를 수행”한다. 이것이 바로 『달리는 구구단』에서 볼 수 있는 회복력의 비법이다. “마음이 딴짓하면 생각이 잡아 주고/ 생각이 딴짓하면 마음이 잡아 주”는 것처럼(「따로 또 같이」), 여러 존재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격려하고 회복하는 모습은 마음의 아픔을 겪는 독자들에게 따듯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
통통 튀는 말, 달려가는 말
“눈사람”을 “눈싸람”으로 써야 한다거나(「눈사람을 찾습니다」), ‘ㅔ’와 ‘ㅐ’가 발음으로 구별되지 않아 받아쓰기에서 애를 먹는(「베개」) 아이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말의 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망고의 씨앗’인 “망고 씨”가 망고를 부르는 호칭처럼 느껴지고(「수염 난 망고 씨」), “사과 씨!”라는 말에서 “말의 씨”가 싹트는 장면(「말의 씨」) 역시 문자가 가진 음성적 특성을 드러내면서 시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더 말해주는 듯하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달리는 구구단」은 구구단을 외우는 리듬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속도감을 재치 있게 결합하여,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시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의미적 차원의 비유와 음성적 차원의 리듬이 결합되어 시의 재미가 한층 더 부각된다. 이러한 말놀이들은 언어가 가진 음성적 특성들을 부각시키면서, 비유가 주는 것과는 다른 시의 재미를 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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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변신 / 강지인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구를 맴도는마음을
숨기고 싶었던 거다
하염없이 지구만 바라보는 자신을
들키기 싫었던 거다
날마다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마치 처음인 것처럼
변신을 꾀하다가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아마도
지구가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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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강지인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쓸려 나가는
바닷물은
하느님이 바다와 땅을
저울질하느라 그런 거래
끊임없이 덜어 내고
끊임없이 덜어 주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양쪽 모두를 공평하게 하느라
그런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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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 강지인
마음음 마음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제각각 놀다가도
마음이 딴짓하면 생각이 잡아 주고
생각이 딴짓하면 마음이 잡아 주고
서로가 어긋나지 않도록
마음은 생각을 들여다보고
생각도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로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은 생각이 모르게
생각은 마음이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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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니까 / 강지인
시험 망쳐서 기분 별로인 날
학교 화단에 꺾어진 꽃 한 송이
나를 불러 세우더라니까!
시들시들 축 늘어진 어깨가
꼭 나 같더라니까!
모른 척할 수 없어 집으로 데리고 왔더니
내가 아끼는 뽀로로 컵에 물을 달라더라니까!
뽀로로 컵에 물을 따라 줬더니 글쎄
풍덩 뛰어들더라니까!
웃긴 건
뽀로로가 꽃을 꼭 껴안고 있더라니까!
더 웃긴 건
내 기분이 생글생글 피어나고 있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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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 강지인
언니를 떠난 오 구두 가방 책
잠시라도
어김없이
나를 거쳐야만
재활용 수거함에 도착할 수 있지
무사히
어김없이
나를 거쳐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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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구구단 / 강지인
구구단 다 외우면 새 자전거 사 줄게!
형이 타던 낡은 자전거 페달을 영차! 1단에서 2단, 3단 속도를 올리며 4단, 5단, 6단 씽씽 달리는 구구단 이제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만 넘으면 되는데 느닷없이 삐거덕거리는 7단
이러면 안되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지만 7단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무사히 통과하고는 야호! 이제 남아 있는 힘을 다해서 가파른 언덕을 향해 8단, 9단 페달을 밟는다.
언덕 너머 반짝! 빛나는 새 자전거를 행해 씽씽 내달리는 구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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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 강지인
아기 공룡이 그려진
낡은 솜이불
길모퉁이에 버려지자마자
야옹~
추위에 떨던 새끼 길고양이
슬그머니 다가왔지
고양이를 처음 본 공룡
공룡을 처음 본 고양이
새끼 공룡이라 괜찮아
새끼 고양이라 괜찮아
둘 다 떨고 있었지만, 아닌 척
엄마처럼 꼭 안아 주었지
서로를 부둥켜안은 긴긴 겨울밤이
참, 따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