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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
창세기 2:18~25 I.
영웅전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명성이 있는 부부가 미술관엘 갔습니다.
남자가 여자 나체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는 것입니다.
예쁜 미인이 중요한 부분 세 곳만 나뭇잎으로 살짝 덮어놓은 그림이었습니다.
아 내가 민망했든지 남편의 옷자락을 끌고 나가면서 말합니다.
“여보, 올 겨울에 한 번 더 옵시다. 그땐 나뭇잎도 낙엽이 되어 떨어져 있을 거 예요.
예술이 아니었다면 참 민망한 일이지요.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마지막 절 25절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나뭇잎으로도 가리지않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으로 막을 내립니다.
“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최초의 사람, 인류의 조상, 그 이름은 아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마담, 하와가 처음 만나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주례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의 결혼 예식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목사의 주례하에 결혼식을 합니다.
요즘은 가정의 자녀들이 목사의 주례없이 또 교회 밖에서 자기들끼리 예식하는 걸 멋진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결혼식에서 속상한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결혼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땅엔 천국의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이 중요한가 교회가 중요한가 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건강한 가정들이 모여서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행복한 가정들이 모여서 행복한 교회를 이룹니다.
천국공동체 안에서 서로 관계를 본문은 “돕는 배필”이란 말로 설명을 합니다.
기대하는 배필이 아닙니다. 돕는 배필입니다.
이용하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 배필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제르”입니다.
오늘 본문을보면 마치 여자는 남자를 돕는 사람인 양 설명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에제르”는 사실 남성명사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먼저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여자를 만들어 역시 돕는 또 다른 에제르를 만들었으니 그가 여자다 그런 얘기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에제르”라는 말은 36번 정도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을 제외하고 나면 35번은 모두 연약한 인간을 도와주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손길을 표현할 때에 에제르, 돕는다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인생 살다 보면 우리 인생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장애물을 치워주는 하나님의 능력, 막다른 골목에서 쩔쩔매고 있을 때에 길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져 있을 때에 전능한 손이 와서 그 손을 잡고 벌떡 일으켜 세워 인생을 동행해 주실 때에 에제르, 돕는다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부부관계 속에서 “에제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남편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하늘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II. 화성 여자, 금성 남자
오늘 본문 18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 “그를 위하여”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되는, 그와는 다른”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하여 다르게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보안 관계에서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다르다는 말을 “틀렸다”고 이름합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면 웃음이 나오지 만 “너는 틀렸어”라고 하면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되는 겁니다.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요?
남자와 여자는 재료부터 다릅니다.
남자는 흙으로 빚어 만들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니라.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남자의 재료는 흙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관심이 흙에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정치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를 곧 잘 합니다.
여자를 만든 재료는 갈비뼈, 사람입니다.
사람을 재료로 해서 사람을 만들었으니 관심사가 언제나 사람입니다. 고급입니다.
인류 최초의 뼈로 만든 그릇 본차이나가 여자입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남성보다 고급진 생각을 하게끔 되어있습니다.
여기 갈비뼈는 성경에서 옆구리 혹은 우리 몸의 한 부분이란 뜻으로 번역이 됩니다.
남성들이여 여자를 발가락 뼈로 만들지 않았으니 아랫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성들이여 여러분들을 머리뼈로 만들지 않았으니 남자를 통제하거나 조정하려고 생각해 서는 아니 됩니다.
눈알로 만들지 않았으니 항상 탐욕을 부려서는 아니 됩니다.
혀로 만들지 않았으니 조선 잔소리꾼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갈비뼈는 우리 몸의 가장 소중한 장기들을 보호하고 있는 뼈입니다.
이 갈비뼈를 다치면 장기들을 다치게 되어져 있습니다.
아내가 다치면 가정 안에 소중한 것들이 깨진다 하는 것입니다.
여자를 만들기 위해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다고 했습니다. 죽었다는 겁니다.
가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남성의 옆구리가 터져서 피가 흐른 다음에야 가정이 만들어졌 습니다.
교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옆구리가 터져 피가 흐른 다음에야 교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피 위에 세워진 공동체, 희생과 헌신으로 다듬어져 가는 게 교회요 가정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뇌의 구조가 다르게 생겼습니다.
뇌의 양, 뇌량이 다릅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다중기능이 가능합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남자는 다중기능이 불가능합니다.
껌 씹으며 계단 내려오기가 불편한 게 남자랍니다.
한 가지 일 밖에 못하는 게 남자입니다.
화가 나거나 갈등이 생기면 여자는 입에서 저절로 말이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화가 나면 남자는 버럭 외에는 논리적인 말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나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여성들은 편도체가 저절로 열려서 준비 안한 말들이 논리적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화가 나면 분노가 차오르면 편도체가 막혀 버립니다.
평상시에 하던 말들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래서 소리만 지르게 되는 것이고 인격적으로 다듬어져 있지 않는 남자 는 주먹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또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성대 기능도 다릅니다.
여자들은 울림 성대가 날렵하게 생겼습니다. 힘이 안듭니다. 입만 열면 말이 쏟아져 나옵니 다.
남자들은 복식호흡을 해야 겨우 말이 나올 만큼 울림통이 크고 굵게 생겼습니다.
여자들은 말을 해야 에너지가 생기고 남자들은 말을 하면 에너지가 빠집니다.
남자와 여자 눈의 기능이 다릅니다.
염색체가 다릅니다. 여자들은 XX, 남자들은 XY입니다.
여성들이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길가에 있었던 걸 다 압니다.
남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본 것이라고는 앞차 밖에 없습니다.
남자는 아침마다 손수건 어디 있어? 양말 어디 있어? 소리를 지릅니다.
냉장고 문 열어 놓고 요쿠르트 하나를 못 찾습니다.
요쿠르트 어디 있어?
그러면 여자가 와서 여기 있잖아 금방 찾아줍니다.
여자들의 눈썹 위에는 “다본다”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한 번에 전체를 스크린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금방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아침마다 요구르트 하나 먹으려면 아내가 와서 찾아주고 되게 폼을 잡습니다.)
금성에서 온 남자, 화성에서 온 여자 함께 만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가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III.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사람 남자와 여자가 주례는 하나님라시는 결혼을 했습니다.
괴연 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궁금힙니다.
에덴동산에서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살았으니 한 눈 팔지는 않았을 것 같고 부부싸움을 했을까 안 했을까?
오늘 본문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살았을까?
짧지만 임팩트(impact) 있게 한 마디로 말씀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서로 감추고 숨길 것이 없었습니다.
훈장 달고 계급장 달고 살지 않았습니다.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그것이 가정입니다.
서로의 약점과 허물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 관계가 가정입니다.
서로의 허물과 약점이 자꾸 보이면 지옥이 되고 실수와 허물이 가려지면 천국이 됩니다.
서로의 단점이 보이면 지옥이 되고 장점이 살아나면 천국이 됩니다.
비판과 지적질이 난무하 면 지옥이 되고 칭찬과 격려가 넉넉해지면 천국이 됩니다.
언제부터 인간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까?
선악과를 먹고 나서부터입니다.
선악과 이름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상대의 좋은 점, 장점, 아름다운 점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나니 선과 악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장점은 안 보이고 단점이, 잘한 것은 안 보이고 실수가, 선은 안 보이고 악이 보이는 나무가 선악과입니다.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상대가 약점 때문에 부끄러워집니다.
하나님도 나를 구원하는데 의롭게 만들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고 인정하고 의롭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몇 살 정도로 창조되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어린아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노인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결혼할 수 있는 청년, 장년 적령기 즉 성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부부가 다 성인으로 만났으니 서로 뜯어고쳐 살려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내 부모도 평생을 살면서 나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요 모양이 되었습니다.
고를 때 잘 골라야 하지요.
결재하고 이미 사 왔습니다.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반품 안됩니다.
서로 인정해 주고 덮어주고 사는 겁니다.
사랑하고 덮어주면 언젠가는 자신이 깨닫고 고쳐갈 겁니다.
이 세상에 남자들 가운데 잔소리로 고친 자도 없고 여성들 가운데 남편의 구박에 바뀐 자도 없습니다.
말 싸움에서 이기면, 상대를 굴복시키고 나면 바뀌리라 착각합니다.
말에는 각인 의 능력이 있어서 가슴 깊이 상처로 각인되어지고 서로 상처만 끌어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하나님이 만들어준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칭찬하고 격려하면 서로 바뀌 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능한 말을 적게 하려고 입을 꿰매고 인내하는 동안 서로 바뀌어지 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내 부모의 약점이 보이면 존경이 사라집니다.
고마운 마음이 없어집니다.
자식의 못난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오면 섭섭증이 생깁니다.
불행한 부모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만고불변의 진리요
가정에 대한 정의입니다.
가정은 호텔같은 방이 없어도, 고읍 스위트룸 침대가 없어도, 값비싼 보석이 없어도, 최고급 미슐랭 음식이 없어도, 높은 지위가 없어도, 빛나는 학위가 없어도, 서로 존중하는 마음, 사랑과 감사, 서로 덮어주는 마음이 있으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귀한 것이 평안이요, 화평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느니 차라리 움막에서 살겠다고 지혜서 잠언 21:9의 말씀 입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9)
여러분 남자는 머리고 여자는 몸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머리 별로 대단한 것 아닙니다.
남자 들 폼잡지 말고 여성들 무시하지도 마세요.
남자가 머리라고 그러지만 사실은 몸 가운데 첫 번 째가 목인데 목 돌아가는 대로 머리는 따라오게끔 되이 있는 것입니다.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눈썹이 없는 처녀가 연탄배달 총각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찍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하루 일과를 시 작했습니다.
하루는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에 연탄을 배달합니다.
남편 은 앞에서 끌고 아내가 뒤에서 밀어줍니다.
언덕 위에 오르자마자 두 사람이 비지땀을 흘립니다. 목에 걸어두었던 수건으로 남편이 아내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데 이마 닦고 목을 닦고 눈썹을 피해서 살살살살 땀을 닦아 주 더랍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알고도 속아주는 것, 말하지 않는 것, 거기서 아내는 감동을 받는 것 아니겠습 니까?
IV. 여보, 당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아담과 하와.
아뿔싸!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 서로의 허물이 보입니다. 부끄러움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 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사이에 나뭇잎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햇빛에 가는 순간 나뭇잎이 말려 올라갑니다.
그러더니 어느날 바람에 찢어져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역사는 그때부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릴 수 있는 나뭇잎을 만드는 역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의 나뭇잎으로 자기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에, 어떤 사람은 권력에, 어떤 사람은 돈을 가지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조금만 더 아름답게 가꾸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발달된 문화가 화장품문화입니다.
여성들은 화장품으로 부끄러움을 가려 보려고 합니다.
지구촌에서 평당 관리비가 가장 비싼 곳이 여자의 얼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교회에서 직분, 선행, 사회 봉사, 모두 자신을 위장하는 나뭇잎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남자와 여자의 부끄러움을 가리워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내 허물을 사할 수 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연약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이 라는 자체가 약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순간 자유가 옵니다.
자기 자신의 약점 때문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상대의 허물과 약점, 실수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여유있는 가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에 어린 자녀들에 대한 용납이 잘 되지 않습니 다.
자녀들이 예쁠 때는 1살 2살 3살 4살 때까지는 예쁠 수 있습니다.
7살 넘어서면 마냥 예쁘지만은 않습니다.
엄마한테 덤비기 시작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나면 부모의 속을 썩입니 다. 이제 시집장가갈 시기가 되었습니다.
남편 아내감으로 데리고 옵니다.
부모는 용납이 안됩니다.
속썩이기 시작하면 부모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꼭 너 같은 아이 낳아서 속 썩어봐라. 저주하지 마세요.
저주하지 않아도 꼭 저 같은 것 낳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송아지의 역사입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 닮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빛과 소금이라는 이야기는 윤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어둠이 밝아 져야 한다. 밝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밝아지고 행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교회가 밝아야 지는 것입니다.
소금이 된다는 이야기는 맛있는 존재가 되라는 겁니다.
맛없는 존재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승리의 비결이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금식해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금욕적인 생활해라. 말씀하지 않았 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성령충만했으면 선행을 해라 그러기 전에 “가정 안에서 행복해라” 그랬습니다.
부부간에 사랑해라. 부모자식간에 사랑해라.
가정 안에서 행복해라.
그게 성령 충만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어느날 남편이 묻기도 하고 아내가 묻기도 합니다.
“여보, 당신 다시 태어나면 나랑 살래?” 가장 미련한 남자, 여자는 그럽니다.
“미쳤어” 조금 지혜로운 사람은 “당신같이 좋은 사람 이 세상에 있을까?
이 세상에서 당 신 같이 좋은 사람 만나서 내가 한번 살아봤으면 됐지,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다른 사람에게 당신 양보하고 살아야지.” 그럽니다.
여러분 그렇게 말해도 안됩니다.
당신 다시 태어나면 나하고 살래? 물으면 무조건 산다고 말하세요.
그래야 노후가 편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음 놓고 대답하세요.
하나님 나라에 갔어도 시집, 장가 가는 것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족이 되어서 주님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호칭이 무엇입니까?
여보, 같을 여(如) 보배 보(寶) =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 당할 당(當) 몸 신(身) = 당연히 내 몸과 같은 존재입니다.
여보, 당신 이게 바로 가정입니다.
부부 싸움을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부부 싸움하면 여자가 이깁니다.
남자가 하는 일은 버럭 밖에 없습니다. 당장 나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인이 못 나갈 줄 알고! 그리고 나갔습니다.
나가자마자 다시 들어오더래요. 왜 돌아왔어?
뭘 두고 갔어! 뭘 두고 갔는데? 내가 보석이 필요해! 보석이 우리 집이 어디 있는데?
여기 있지롱! 남편 볼에 뽀뽀를 했습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가정을 천국으로 이루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만들어준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 곁에 필요한 것입니다.
실수를 덮어주는 그 맛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것 때문에 서로가 불편했던 지난 날이 오히려 이것이 자랑이 되고 내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축복하고 격려하고 오히려 행복의 씨앗이 되는 멋진 가정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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