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을 비롯하여 아합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남김없이 제거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명도 처형합니다.
전체 악의 근원까지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대행자로 기름부음 받은 예후는 아합 왕가와 관련된 이들을 철저하게 숙청합니다. 이로써 아합 가문에 속한 모든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분에 관계없이 멸절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왕상 21:21). 아합 왕가는 영원한 제국 같았고 철옹성처럼 견고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꺼내 드시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시 1:4,5).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도, 그들의 득세를 두려워하지도 맙시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해진 때를 향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1-10절 예후의 명령에 이스라엘 귀족들은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가져오고 예후는 당시 관행대로 이를 성문 어귀에 달아둠으로 심판의 필연성과 엄중성을 알립니다. 비록 이러한 잔혹함이 오늘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이를 통해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12-14절 하나님은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인 행동은 도를 지나치게 넘어선 잔인한 열정이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명까지 남김없이 죽인 것은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빚나간 동기에서 비롯된 과도한 숙청은 훗날 예후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호 1:4). 이러한 면은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6절)라는 호기 섞인 그의 과시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그가 의로워서라기보다 그의 무자비한 성품과 지나친 권력욕이 아합 가문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시 나의 이기적인 뜻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용하지는 않는지, 혹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시작했으나 나의 과욕으로 변질된 것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정당한 만큼 인정(人情)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매일성경, 2024.09/10, p.74-75,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 열왕기하 10:1-117에서 인용).
①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을 비롯하여 아합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남김없이 제거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명도 처형합니다. 악의 근원까지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대행자로 기름부음 받은 예후는 아합 왕가와 관련된 이들을 철저하게 숙청합니다. 이로써 아합 가문에 속한 모든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분에 관계없이 멸절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왕상 21:21). 아합 왕가는 영원한 제국 같았고 철옹성처럼 견고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꺼내 드시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시 1:4,5).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도, 그들의 득세를 두려워하지도 맙시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해진 때를 향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② 예후의 명령에 이스라엘 귀족들은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가져오고 예후는 당시 관행대로 이를 성문 어귀에 달아둠으로 심판의 필연성과 엄중성을 알립니다. 비록 이러한 잔혹함이 오늘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이를 통해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은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인 행동은 도를 지나치게 넘어선 잔인한 열정이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명까지 남김없이 죽인 것은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빚나간 동기에서 비롯된 과도한 숙청은 훗날 예후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호 1:4). 이러한 면은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6절)라는 호기 섞인 그의 과시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그가 의로워서라기보다 그의 무자비한 성품과 지나친 권력욕이 아합 가문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시 나의 이기적인 뜻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용하지는 않는지, 혹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시작했으나 나의 과욕으로 변질된 것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정당한 만큼 인정(人情)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