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 나정례
해남읍에서 30여 분 들어가는 동네에 큰언니 부부가 살았다. 92세의 영감이 노환으로 입원 중인데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면서 퇴원 수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어르신은 돌아가셨다. 언니는 “이제 어떻게 살까?” 밤낮으로 울며 전화를 한다. 친정 형제들이 육 남매지만 언니를 돌보던 큰오빠는 돌아가셨다. 언니와 동생이 서울에 살고 다른 친척들도 있지만 직장 일로 바빠서 관심이 없다. 언니는 열네 살에 아기 업고 길을 가다가 미끄러져서 뾰족한 돌멩이에 고관절을 다쳤다. 계속 치료를 했지만 옛날 의술로는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한쪽 다리가 짧은 지체장애 4급이다.
86세인 노인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우리 부부는 의논을 했다. 목포에다 셋방을 한 칸 얻어서 옮기기로 하고 날마다 방을 보러 다녔다. 15만원 주고 트럭을 빌려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이라고 해도 밥그릇 서너 개 텔레비전(TV) 한 대 세탁기 하나 잡다한 조금만 차에 싣고 모두 버렸다. 언니가 이사 오던 겨울은 눈도 퍼부어서 이사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정상이었으면 목포로 이사와서 좋다고 했을 텐데 하는 말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나같은 사람은 어디에 살아도 누구든지 도와 준다고 하더라" 그러면 거기서 살지 왜 울고불고 했냐고하면 "모르겠다. 나 아닌 다른 것이 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날마다 반복하는 소리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갔았다.
몸이 열이 나고 아파서 이틀을 못 갔다. 언니는 우리 집을 찾아오다가 길을 잃었다. 반대쪽에서 헤매다 택시를 탔는데 정확하게 말을 못해서 돌아만 다닌다고 기사가 전화를 했다. 택시비가 9,000원이 나왔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했다. 언니 전화에 저장된 내 전화를 찾아서 다행이었다. 언니와 같이 병원을 갔다. 모든 검사를 하고 의사는 노인 치매 5등급이라고 했다.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한 달 먹을 약을 지어서 집으로 왔다. 아침 식후나 자기 전에 한 알을 먹으라고 했다.
언니는 나라에서 해택이라도 받아야 살아갈 처지다. 시청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제도가 좋아져서 무의탁 노인도 불편하지 않게 정부가 보조해 줘서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 보험에 가서 모든 절차를 거쳐서 일을 보았다. 돌봐 줄 사람이 없으면 국비로 매일 두 시간씩 봐주는 사람을 보내 준다고 한다. 내가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언니를 돌보려면 100시간을 하루 9시간씩 치매 교육을 받아야 했다. 치매에 걸리면 본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바뀌기 때문에 치매노인 보살피는 교육을 받는다. 매일 도시락을 먹으며 교육을 마쳤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날마다 두 시간씩 언니를 찾아가 돌보았다.
날이 갈수록 언니의 언어 행동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한테 다니면서 돈 벌이 할 생각 하지 마라는 것이다. 돌아가신 영감이 등 뒤에 붙어서 다른 영감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고 매일 하는 소리다. 감당키 어렵게 달라지는 언니를 보면서 힘들었지만 누구에게 말한 마디 못하고 6개월이 지났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몸이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 봐도 자꾸만 흔들려서 속도를 줄이고 세우려고 하는데 비스듬히 넘어졌다. 옆을 지나던 사람이 부축해서 일어났다. 집 앞까지 대려다 주었다.
열이 많은 상태라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서 호수를 머리에 대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와서 급히 아들을 불렀다. 기독교 병원 응급실로 가서 엠알아이(mri)찍고 혈액 정밀 검사를 했다. 설 연휴로 의사들은 모두 휴가 중이고 당직자만 있었다. 응급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밤 11시가 지나서 한국 병원으로 갔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당직 의사뿐이었다. 머리를 사진 찍고 모든 검사를 했지만 뇌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파도 병명이 없으니 입원도 안 된다고 한다.
연휴 일주일 동안 왼쪽 귀 위로 손바닥만큼 칼로 긁은 것처럼 심한 통증과, 고열, 어지러움에 시달렸다. 강한 진통제를 서너 알씩 먹어도 아무 소용없었다. 연휴가 끝나기를 기다려 비틀거리는 몸으로 부산행 버스를 탔다. 서울 강남에서 20년을 에이케이(AK) 정형외과를 하면서 눈동자만 보고도 엠알아이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까지 알아낸다. 눈을 보고 뇌의 상태를 알고 손끝으로 진찰을 하고 치료하는 신경학 전문 박사다. 몇 년 전에 고향인 부산으로 병원을 옮겼다. 그분이 못 고치면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시간을 버스타고 가서 내렸다. 다시 1시간 20분을 전철로 해운대까지 갔다. 너무 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박사님은 내 눈을 보고 무슨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았냐고 한다. 이 말만 들어도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당 약을 간호사 두 사람이 계속 주사기에 넣어 주고 박사님은 내 머리 전체에 서둘러 주사를 놓았다. 목 뒤에도 양쪽 두 군대를 깊게 주사를 주었다. 30분만 문리 치료실에 누워서 있다 나오라고 했다. 칼로 찢기는 아픔이 없어졌다. 지하 찜질방에서 자고 내일 치료 한 번 더 하겠다고 했더니 박사님은 이제 다 좋아졌는데 할 필요 없다고 했다. 언니한테 가서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아플 거라고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부산 해운대 이승원 AK 정형외과 그분의 의술은 감동이었다.
첫댓글 스트레스가 그리도 무서운가 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 란 말은 정답이죠.
살아가면서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몸이 반응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우리 뒷집 아저씨는 젊은 날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못 고쳐서 누워서 대 소변 받아내고 세살아이 지능도 못 된답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