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미나리 초무침 / 이지선
주꾸미가 제철이라 주요리는 ‘주꾸미 미나리 초무침’으로 결정이 됐다. 제철이지만 값은 싸지 않은 주꾸미와 덩달아 비싸진 미나리를 사왔다. 초무침은 쉽지 않은 요리다. 식초와 소금, 설탕의 적절한 비율이 미세한 차이로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동생 둘은 “그나마 언니가 낫지”라며 나에게 미룬다. 하지만 초무침 요리의 난이도를 아는 나는 엄마에게 미룬다. “엄마, 엄마가 말만 하면 우리다 다 할게요”라며 엄마에게 슬쩍 떠민다. 어쩐 일인지 엄마도 “나도 맛있게 할 자신이 없다.”라며 시무룩해 하신다. 네 여자가 주꾸미와 미나리를 앞에 두고 고민을 했다. 시간은 흘러 손님들이 오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둘째가 “언니야, 우리 시어머니한테 해달라고 할까?”라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 시어머니 고향이 완도라서 해산물 손질도 잘 하시고, 죽순초무침도 맛있게 무치시거든”
“야! 왜 이제 그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요리 재료를 싸고 막내는 운전을 해서 순식간에 둘째를 시어머니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왔다. 차 안에서 시어머니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말씀 드리는 것도 몇 번 연습시켰다.
‘에휴, 집에서 친척들 모여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네……. 그래도 제일 중요한 일이 해결 되서 다행이네’
일단 둘째를 시댁에 보내놓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다른 준비를 하는데 차츰 ‘얘가 말씀을 잘 드렸을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요리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 재료를 들고 가 만들어 달라는 상황이 버릇없어 보일 것 같았다. 또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몹시 부담을 드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어르신은 평소에도 요리를 즐겨하시고 맛나게 하신다. 그 어른 손을 거친 도토리가루는 세상에 둘도 없이 탱글탱글한 묵이 되고, 김치찌개도 돼지고기와 김치의 궁합이 천생연분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 집 네 여자는 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진짜 요리를 잘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덜커덕 부탁을 드린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엄마도 못 해서라기보다는 만들었는데 ‘맛 없으면 어쩌지’ 라는 부담 때문에 선뜻 안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부담을 드렸다고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엄마도 사돈어른께 정말 미안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미나리는 아삭하고, 주꾸미는 더할 나위 없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식초와 설탕, 소금의 조화는 신의 솜씨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둘째가 하는 말이 ‘아마 우리 시어머니 이런 부담 없었으면 더 맛있게 만드셨을거야’라며 자랑을 한다. 사정을 몰랐던 제부도 ‘어쩐지 우리 엄마 느낌 나드라’라며 거든다. 그제서야 엄마는 사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 하신다. 막내는 “언니야, 시어머니 칭찬 찐하게 해드린 거 맞지?”라며 초무침 양념에 밥을 비빈다. 나는 칭찬을 빙자한 무례한 부탁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신 사돈어른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잘해드려야지!’
첫댓글 사돈 찬스 좋네요. 하하!
쭈꾸미 초무침이 군침 돌게 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맛있는 '쭈꾸미 미나리 초무침'을 대접하려는 정성이 대단하시네요. 읽다 보니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이렇게 둥글둥글 모여 사는 세상, 재미 있네요.
글을 읽고 쭈꾸미 미나리 초무침 먹고 싶어졌어요.
겁나게 어려운 손님이 오시나 봐요.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음식을 만드니 말입니다.
어머니까지 네 여자가 모여 요리하는 모습, 아름답네요.
어제 광양 오일장에 가서 갑오징어 한마리를 사서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네요.
미나리 사서 회를 만들까 잠시 고민하다가요.
사각거리는 미나리의 식감이 떠올라 침이 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