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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이윽고 다시 빛을 찾는다. 방바닥으로 내려앉은 인월댁은 그제서야 허릿골이 빠지는 것처럼 저려와 그대로 무너지듯이 드러누워 버렸다. 불기 없는 바닥이라 등이 서늘하다. 비록 여름이지만, 늘 이렇게 새벽녘이 되면 찬 기운이 돌아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한여름에도 이다지 속이 치운 걸 보니. 이제 사지 육천 마디마디 시린 바람이 들어차는가 부다.) 그것은 이 방이 북향 뒷방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까닭에 일 년 열두 달 햇빛을 쐬지 못한 냉기가 벽 귀퉁이에 고여 있는 셈이었다. 거기
다가 집이라고 해야 부엌 한 칸과 창호지만한 안방, 그리고 베틀이 있는 뒷방뿐이었지만 하루 한나절도 손에서 북을 놓지 않았으니, 문득 생각하면 방안에 고인 냉기가 몸속으로 스며들어 살이 식어 내리는 것도 같았다. 그네는 희미한 등잔물 아래 비치는 앉칭널을 바라본다. (내가 반평생을 저기 앉아서 보냈구나.)
그네가 금방 벗어 놓은 부테가 앉칭널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마치 무슨 허물 같다. 인월댁은 무심코 창문을 바라본다. 북향으로 난 창문은 아직도 캄캄하다. 지금쯤은 한밤의 어둠에서 깨어난 새벽이 푸르스름하게 공기 속으로 풀려들고 있겠지만, 북향 뒷방 길쌈하는 이 방에는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제풀에 흔들리다가 잠잠히 빛을 밝히고 그러다가 금방 꺼질 듯이 잦아드는 미영 씨 기름등잔 하나만이, 방안의 묵은 어둠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베틀에 앉은 채 밤을 새웠으나, 이렇게 방바닥으로 내려와 누워도 몸만 물먹은 솜처럼 무거울 뿐, 새벽잠이나마 들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그물이 말러서 밑바닥을 뒤집고 있당 거이요?"
담장 밖에서 옹구네의 목소리가 찰지게 들린다. 그 소리를 신호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양철 부딪치는 소리며 물지게 삐그덕거리는 소리, 부산하게 고샅을 지나가는 바쁜 걸음 소리들은 원뜸으로 넘어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이고매, 그렁게 후딱 가서 미꾸라지 건져 먹는 것은 이 흉년에 괴기국 한 그륵이 어디냐 마는, 일은 참말로 일어났네잉."
저것은 공배네의 목소리이다.
"시상 돌아가는 꼬라질를 조께 보시오. 아, 물 밑바닥만 뒤집히겄소? 내가 발바닥 붙이고 섰는 이 땅뎅이도 언지 홀까닥 뒤집힐랑가 모르는 판인디, 누가 아요? 인자 거꾸로 서서 대그빡으로 땅을 짚고 손바닥으로 걸어댕기는 날이 올랑가?"
거멍굴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첫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옹배기나 양철 대야, 물동이, 물통을 하나씩 옆구리에다 끼고 산 밑에 저수지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청호라고 불리는 저수지의 넘치던 물이 어느 날부터인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물 밑바닥이 뒤집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수지의 둘레가 사방 오 리라고 소문이 나 있는 청호는 지난번만 하여도, 조개바위의 등허리가 거뭇비치다가 잠기다가 할 만큼 줄었었다. 청암부인이 웅덩이만 하던 것을 그렇게 넓고 깊게 파 놓은 뒤에는, 웬만한 가뭄에도 수면이 파랗게 찰랑거리며 물비늘을 일으키던 청호는 날마다 내리쪼이는 뙤약볕에 드디어 견디어 내지를 못하였다. 청호가 그럴 정도였으니 동네 우물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걸핏하면 황토 물을 토하며 뒤집히던 우물물, 샘물들은 이제는 아예 두레박을 두 손에 받치고 섰다가, 한 바가지가 채 고이기도 전에 곤두박질을 치며 거꾸로 머리를 박고 퍼내야 했다. 그것도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차지를 하기 때문에, 한 발만 늦으면 그날 하루 물 구경을 못하고 마는 일이 빈번하였다.
"하이고오. 일월성신이 굽어살피사 비나 한 줄[자네 따위를 두기가 불찰이지]
하고 웃어버린다.
[그러기에 세상은 살라는 마련 아닌가?]
[딴은 그래!]
[하지만, 자네 따위는 사귀기가 불찰'이란 말은 차마 아니 나오나보이 그려?]
병화는 여전히 비꼬아본다.
[그런 줄은 자네가 먼저 아네그려.]
[덕기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한다.
[내니까 자네 따위를 줄줄 쫓아다니며 토주라도 해서 먹어주는 줄은 모르구...]
[왜 안 그렇겠나. 일세의 혁명가가 이제 중학교나 면한 어린애를 친구라기는
창피도 할 걸세. 대단 광영일세.]
일 년에 한두 번 방학 때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터이나 이 두 청년은 입심 자랑이나 하듯이 주고받는 말끝마다 서로 비꼬는 수작밖에 없건마는 그래도 한 번도 정말 노해 본 일은 없는 사이다.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첫째 둘째를 겯고틀던 수재고 비슷비슷한 가정 사정에서 자랐기에 어린 우정일망정 어느덧 깊은 이해와 동정은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지적이요 이론적이기는 둘이 더하고 덜할 것이 없지마는, 다만 덕기는 있는 집 자식이요, 해사하게 생긴 그 얼굴 모습과 같이 명쾌한 가운데도 안존하고 순편한 편이요, 병화는 거무튀튀하고 유들유들한 맛이 있느니만큼 남에게 좀처럼 머리를 숙이지 않는 고집이 있어 보인다.
그 수작 붙이는 것을 보아도 덕기는 역시 넉넉한 집안에 파묻혀서 곱게 자란 분수 보아서는 명랑하지 못한 성미이나 병화는 이 2, 3년 동안에 더욱이 성격이 뒤틀어진 것을 덕기도 냉연히 바라보고 지내는 터이다.
[헌데, 좋은 데 있다더니 어딘가? 자네 말눈치 같아서는 기껏해야 청요릿집에나 오뎅집에나 가는 것이 불평인 모양이니 오늘은 어디 xx관에 가서 기생이라두 불러 볼까?]
[덕기는 사실 이때껏 가보지 못한 요릿집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흥, 이건 누구를 병정으루 아는 게로군. 있는 놈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등쳐먹는 병정두 아니지만, 그런데는 내 주제에는 어울리지두 않으니까.]
[흥, 토주를 하는 것만 고마운 줄 알라고 생색을 내더니 기껏 선술집인가?]
[응. 선술집 밑천이라두 내놓고 자넬랑은 기생집으로 가게 그려.]
또 비꼬기 시작이다.
두 청년은 아무래도 발길이 진고개로 향하였다.
[그러지 말구 여기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세. 하루에 한 끼니라는 곯은 배를 채워야지.]
술을 좋아 아니하는 덕기는 몇 번 가본 양요릿집 문 앞에 멈칫하며 끌었다.
[아냐. 저기 좀 더 가면 놓은 데 있어. 정체는 모르겠지마는 놀라 자빠질 미인이,
조촐한 미인이 둘이나 있구...]
병화는 먹는 것보다는 술 생각이 더 간절하였다.
[이제 알았더니 숨은 난봉꾼일세그려. 어디, 자네 가는 데가 오죽할 라구. 허허허.]
덕기는 비로소 웃으며 따라섰다.
[어제 끌려가보았지만 바커스라구--그 이름이 좋지 않은가--조촐한 데가 있어. 웬일인지 이런 룸펜을 대환영이거든. 원체 잘생겨 그런지, 서울 장안에서 내가 그만큼 대접받기는 처음이야.]
병화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신기가 좋아서 기고만장이다.
[흠...]
하고 덕기는 버커스로 따라선다.
있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얻어먹기도 싫다, 화려한 좌석에서 어울리지 않게 놀기도 싫다는 병화의 말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요, 그 기분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덕기는 자기를 빗대놓고서나 하는 말 같아서 듣기 싫었다. 그뿐 아니라 언제든지 뺏아 먹고 쓰고 할 것은 다 하면서 게걸대고 입바른 소리를 툭툭 하는 것이 밉살맞기도 하였다. 있는 사람의 퉁성으로 자기에게 좀 고분고분하게 굴어주었으면 좋았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있는 친구와 어울리면 병정 노릇이나 하는 것 같은 일종의 굴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겠고 또 그렇게 구칙칙하거나 더럽게 굴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이 취할 모라고 아직 경력 없는 덕기건만 돌려 생각도 하는 것이다.
주부가 술상을 차려 왔다. 술상이래야 고뿌에 담은 노란 술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오뎅 접시뿐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덕기는 더구나 그 유착한 고뿌찜을 보고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모든 것이 그 소위 고상한 취미에 맞지 않았다.
마담은 꼭 째인 얼굴판이 좀 검은 편이었으나 어딘지 교육 있는 여자 같고 맑은 눈 속이라든지 인사성 있는 미소를 띄운 입술을 빼뚜름히 꼭다문 표정이 몹시 이지적인 걸 알 수 있다.
[놀라 자빠질 지경이라던 여자가 지금 그 여잔가?]
덕기는 병화가 주부가 들어가기도 전에 그 큰 고뿌를 들고 벌떡벌떡 다 켜기를 기다려 물어보았다.
병화는 오뎅을 반이나 덤뻑 떼물어서 우물우물 씹느라고 미처 대답을 못하다가 반씩반씩 씹는 말로,
[아니--참 물어볼걸.]
하고 입으로는 여전히 씹으면서 손뼉을 친다. 병화는 먹기에 정신이 팔린 것은 아니나, 덕기에게 말은 그렇게 하였어도 실상 이 집에 미인이 있고 없는 데에 그리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지라 이때껏 무심하였던 것이다.
주부가 오니까 병화는 씹던 것을 이제야 삼키고,
[그 사람 어디 갔소?]
하고 묻는다.
[예, 지금 막 목욕 갔어요. 곧 오겠지요]
하며 중턱에 서서 상긋 웃고는 시선을 덕기에게 준다.
주부의 눈에 비친 덕기는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 똑똑한 청년이었다. 이 여자에게는 조선이라는 경멸하는 마음은 그리 없으나 그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데다가 학생복이나마 값진 것을 조촐하게 입은 양으로 보아서 어느 부잣집 아기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얕잡아보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손님(병화)이 그동안 두어번 보았어도 허술한 위인은 아니 모양인데 그런 사람하고 추축이 되면 저 청년(덕기)도 그런 부잣집 귀동아기로만 자란 모던 보이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여자는 올 가을에 처음으로 이 장사를 벌인 터이라, 드나드는 손님이 하도 많지만, 이런 장사에 찌들어서 여간 것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신경이 굳어지지 못한 탓이라 할까, 여하간 여염집 여편네의 호기심으로 처음 보는 남자마다 유난히 호기심을 가지고 인금 나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쩐 일인지 별안간 머릿속에 정자 생각이 떠올랐다. 정자란 조선에 와 있는 xx지방 재판소 오 판사의 맏딸이다. 성은 오가라도 일본말로 '구레'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다. 이 주인 여편네가 xx시에서 도 자혜병원에서 간호부장 노릇을 할 때에 오정자가 무슨 병으로든가 입원한 후로 자연히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왜 지금 그 정자의 생각이 났는가? 어쩐지 덕기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 정자와 남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매--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민족이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정자가 퍽 새로운 생각을 지고 사회 비평이나 정치 비평을 도도히 할 때마다 이 집 주인은 늘 웃으면서 다만 귀엽게 들어주기도 하고 장단을 맞추어주기도 한 일이 있었더니 만큼 자기 역시 비교적 신지식에 어둡지 않다고 생각하는 터이라, 머리 텁수룩한 청년(병화)이 친구들과 와서 일본말로 저희끼리 떠드는 소리를 귓결에 들을 때도 소위 '마르크스 보이'로구나 하고 반은 비웃음 섞인 친근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에 지금 보는 덕기도 한 종류려니 하는 생각도 부지중에 나서 '마르크스 걸'인 정자가 불시에 연상된 듯도 싶다.
홍경애
주인 여편네는 손님이 심심해하는 양을 보고 가까이 교의를 끌어다놓고 두 사람을 타서 앉으며,
[오늘도 주정 허시랍니까, 주정허시면 내쫓습니다.]
[내가 주정을?...]
하고 깜짝 놀란다. 사실 그날도 점심 저녁 다아 굶고 술을 과히 먹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지금 어렴 풋도 하지만, 혹시는 평시에 계집에게 담백하니만큼 일시 희롱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을 하여보았다.
[시치미 딱 떼고 딴전을 붙이시는군요. 약주 취한 체하고!]
주부는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여전히 병화의 주정부리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병화는 재미없었다.
[사실 그런 게 아닌데... 당신 같으면 붙들고 시달렸을지 모르지만- 하하...]
[호... 그랬더면 큰일 났게!]
주부가 이런 소리를 하려니까,
[다다이마(지금 옵니다).]
하고 역시 일복한 여자가 목욕 대야를 들고 들어오다가 손님이 있는 걸 보고 오뚝 서 버린다.
무심코 건너다보던 덕기는 얼음장을 목덜미에 넣는 듯이 모가지를 움츠러뜨리며 눈을 술잔으로 보냈다. 들어오던 여자도 주춤하고 서는 기척이더니 소리 없이 살며시 돌쳐나간다.
[경애!]
덕기는 속으로 이렇게 불러보고는 두 눈이 확 달면서 더운 것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물이 날 지경은 아니었다.
다만 칠분쯤 남은 술 고뿌가 위아래로 춤을 추는 것 같고 술을 아무리 못 먹어도 그만 술에 취할 리가 없겠는데 머리가 아찔하고 앉은 자리가 휘휘 둘리는 것 같았다.
[어떤가? 놀라 자빠지지는 않겠나? 허허허... 내 눈도 자네 눈만큼은 높지?]
하며 남의 속은 모르고 취기가 돈 병화는 껄껄 웃는다.
[그야 미인보고 예쁘다 하지. 그렇지만 놀라 자빠질 지경이야...]
주부는 여자 본능으로 엷은 시기를 느끼는 눈친지 병화에게 이런 핀잔을 준다.
[오바상! 술을 또... 그리고 아이꼬상더러 어서 나오라고 해주슈.]
'아이꼬상'이라는 것은 이 집에서 경애라는 애 자를 일본말로 부르는 이름이다. 주부는 발딱 일어나서 들어갔다.
[여보게! 그것 누군 줄 아나?]
주부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 병화가 웃으며 묻는다.
[누구라니?]
[덕기는 위아래 어금니가 맞닿는 소리로 대꾸를 하며, 무엇에 놀란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 친구가 그 여자의 내력을 빤히 아는가 싶어 무서웠던 것이다.
[아아니, 지금 그 애가 일녀인 줄 아나?]
[병화는 또다시 싱글싱글 웃는다.
[그럼 조선여자란 말인가?]
덕기는 역시 자기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허허허...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못 알아보았네 마는 알고 보니 수원 나그네-가 아니라 수원 여자라네! 이름은 홍경애...]
친구의 입에서 홍경애라는 이름까지 듣고 나니 덕기는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병화는 덕기가 깜짝 놀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과 달리 아무 대답도 없이 한 모금 술에 발개졌던 얼굴이 해쓱하여지는 것을 보고 무슨 의민지 해석할 수 없다는 듯이 머쓱한 낯빛으로 친구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네 그 여자를 아나?]
하고 물어보았다.
[몰라!]
덕기는 약간 떨리는 듯 하면서 침통한 소리로 간단히 대답을 하면서도 자기의 낯빛이 친구에게 이상히 보일까보아 술 고뿌를 선뜻 들어서 입에 댄다.
껄떡껄떡... 반 이상이나 한숨에 켰다.
병화는 덕기가 술을 이렇게 단김에 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웬일일까?'
병화는 혼자 의아하였다.
손뼉을 쳤다. 그러나 '아이꼬'가 술을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주부가,
[미안합니다.]
고 소리를 치며 나온다.
[아이상은 왜 안 나오우?]
병화가 물었다.
[머리 빗어요. 이제 나오겠지요.]
주부는 술을 덕기에게도 따랐다. 한 고뿌다 마셨으니, 다른 때 같으면 덕기는 싫다고 할 터인데 잠자코 있다. 덕기는 어떻게 할지 속으로 망설이었다. 어서 병화를 일어나게 해서 그대로 가버리고도 싶고 이왕이면 좀 더 앉았다가 그 미인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가고 싶은 충동도 없지는 않다.
[여보게, 그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세.]
덕기는 암만 생각하여도 자리를 뜨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며 발론하여 보았다. 그러나 뒤숭숭한 마음은 조금 안정된 것 같기도 하였다.
[왜 그러나? 모처럼 왔다가 미인도 안보고 가려나?]
병화는 둘째 잔을 반이나 한숨에 마시고 움직일 생각도 없이 매우 유쾌한 모양이다.
[자네두 어서 좀 먹게. 오늘은 좀 취하세그려. 오래 또 못 만날 텐데...]
[왜 이 양반 어디 가시나요?]
주부는 병화의 말에 덕기를 아까보다도 친숙한 눈치로 쳐다본다.
[아직 공부하는 어린 자식 놈이 보구 싶기에 동기 방학에 불러왔다가 내일 떠나보내는데 지금 송별연을 차린 거라우.]
하며 병화는 껄껄 웃었다.
[호호호... 부자분이 아주 의초가 좋으십니다 그려.]
하며 주부가 웃으려니까,
[미친 사람!]
하고 그제야 덕기가 픽 웃는다.
[학교는 어디시게요?]
[경도 삼고]
덕기가 딴생각에 팔려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역시 병화가 대꾸를 하였다.
[예에, 경도? 경도에 오래 계세요?]
하고 주부는 경도라는 데 반색을 하면서 덕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예에 한 이태쯤!]
덕기는 얼빠진 사람처럼 앉았다가 대꾸를 해주고,
[어서 일어서게.]
하고 또 재촉을 한다.
[왜 그러세요? 오시자마자.]
주부는 장사치의 인사로만이 아니라 어쩐지 이 젊은 사람들을 더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다.
[떠날 준비도 있고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지.]
[덕기는 경애를 단연코 만나지 않고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여자에게 자기로서는 아무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나 어쩐지 만나기가 가슴 아팠다.
[더구나 이런 자리에서 수집 작부로 떨어진 경애와 만난다는 것은 의외라도 이런 의외가 있을 리 없고 자기인들 아무리 타락하였기로 만나려고 할 리가 없을 것이니 얼른 피해 주는 것이 옳다고도 생각하였다.
[이 사람아, 밥은 밤낮 먹는 거 아닌가? 좀 가만 앉았게 그려.]
[술이라면 떨어질 줄을 모르니, 어쩌잔 말야, 자네 그 유명한 청년의 머리를 술에 절여 버리려나?]
덕기는 좌석이 거북하니만큼 거의 노기를 품은 소리로 이렇게 비꼬아 본다.
[사실은 나는 밤낮 먹는 그 밥도 없네마는 술도 못 얻어먹으면 냉수나 마시고 살라는 말인가? 대관절 나 같은 놈에게서 술마저 뺏으면 무에 남겠나? 그래도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인가?]
[암 그렇고말고요! 퍽 유쾌하신 모양입니다그려?]
[별안간 이런 소리를 치면서 '아이꼬상'이란 여자가 내달아서 주부 옆에 와 서며 덕기에게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긴상(김씨), 저런 도련님과 무얼 그렇게 설교를 하고 앉으셨소? 자아 술이나 잡수세요.]
하고 주부 앞에 놓은 술통을 들고 달려든다.
[사실 아이상 말이 옳지? 자아 당신부터 한 잔...]
하고 병화는 의기양양하여 빈 고뿌를 내어민다.
[나두 먹죠.]
하고 경애는 선뜻 잔과 술통을 바꾸어 받는다.
병화는 선 채 내미는 경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경애가 고뿌 술을 받아서 마시는 것을 보고 덕기는 외면을 하였다. 처음에 소리를 치며 해롱해롱하며 내닫는 그 꼴에도 가슴이 내려앉듯이 놀랐지만 그 술 마시는 데에 한층 더 놀랍고 밉고 더럽고 가엽고 한 복잡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부친에게 이 꼴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부친에게 대하여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반항심이 부쩍 머리를 들어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경애가 술을 이렇게 마구 먹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은 덕기만이 아니었다.
[어쩌자구 이래? 오늘이 무슨 일 났나?]
주부는 경애가 장난으로 대객삼아 그러는 줄만 알고 웃으며 바라보다가 정말 반 고뿌 턱이나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자 질겁을 하면서 경애의 입에서 술잔을 빼앗아 버렸다.
[에구 이에 얼마야! 이러구두 사람이 배기나!]
하며 주부는 내려놓은 고뿌의 술 대중을 본다.
그 말이 지나는 인사거나 주인으로서 부리는 사람을 꾸짖는 어투가 아니라 주책없는 어린 동생이나 나무라는 것같이 다정스러이 들리었다. 두 청년은 그것이 자기에게나 당한 일같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두 이만 한 술은 먹어요.]
경애는 언제 들으나 도리어 얄미울 만큼 혀끝이 도는 일본말로 이런 소리를 하고 무슨 대담한 장난이나 한 뒤의 어린 아이처럼 엉너리치는 웃음을 생글 웃어 보이다가 거기 놓인 피존 한 개를 꺼내 붙인다.
덕기는 담뱃불을 붙이는 동안에 경애의 얼굴을 잠깐 엿보았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새빨간 눈에 성냥불이 어리어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것 같다.
'그래도 우는구나!'
고 덕기는 도리어 가엾은 생각이 났다.
예전에 같이 보통학교에 다니고 교당에 다니던 생각을 하면 이렇게도 변하였으랴, 이렇게도 타락하였으랴 싶건마는 지금 이렇게 술을 먹는 것도 화풀이 술이요, 하등 카페의 여급 모양으로 무람없이 손님의 담배를 제 마음대로 피워 무는 것도 화풀이로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눈물을 머금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아직 타락하지 않는 곳이 남아 있는 것같이 보이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측은하여 보이었다.
[그 술잔을 내게 돌려보내 주어야지! 괜히들 술 못 먹게 하는군! 아이상! 어서 그 잔을 마시고 내줘.]
병화는 가만히 앉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보다가 남은 술을 또 경애에게 권한다.
[난 그만해요. 우리 합환주 하십시다. 부잣댁 도련님 술은 얻어먹어두 나 먹던 술은 더러워 못 자시겠에요?]
어느 틈에 병화와 덕기의 새에 돌아와 앉은 경애는 이런 소리를 거침없이 하며 자기가 먹던 술잔을 들어다가 병화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덕기는 경애의 시치미 뚝 떼고 비꼬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가슴이 선뜩하면서 무심코 놀란 눈을 경애에게로 보냈다.
대관절 이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도리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아 마시세요.]
하고 경애는 제가 먹던 잔 위에 더 부어 가득 채운다.
병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들어서 벌떡벌떡 켠다.
[이젠 가세.]
덕기는 병화가 안주도 들 새 없이 재촉을 하였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아서 이제는 더 앉았을 수가 없었다.
[가만있게! 아이꼬상 말마따나 부잣댁 도련님 술을 얻어먹자니 힘도 무척 드네. 먹을 것 먹어야 가지 않나?]
하고 병화는 주기가 차차 도니만큼 불쾌스럽게 대꾸를 하고 오뎅을 어귀어귀
먹는다.
주부가 깔깔 웃으려니까, 덕기는 좀 머쓱해졌다. 실상 주부가 웃는 것은 병화가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이나 덕기 생각에는 병화나 경애가 비꼬는 듯이 주부 역시 자기를 우스꽝스럽게 보고서 비웃는 것인가 하여 열없었던 것이다. 덕기는 잠자코 앉아서 세 사람의 눈치만 보는 수밖에 없었으나 아무리 보아도 그 세 사람이 자기와는 딴 세상사람 같았다. 세 사람이 입을 모으고 자기만 따돌려 센 것같이 섭섭한 생각도 들었다.
[참 이 양반도 약주를 좀 잡수세요. 색시처럼...]
주부가 인사성스럽게 다시 덕기에게 알은 체하고 술을 권하려니까 경애가,
[아직 도련님을 술을 먹여 되나요. 내나 먹지!]
하고 덕기 앞에 놓인 술잔을 얼른 들어오면서 조선말로 덕기만 알아들을 만큼,
[빨아먹을 수만 있다면 부자의 피를 다아 빨아먹겠는데.]
하고는 바로 앉는다. '부자'라는 말은 '아비 아들'이란 말인지 돈 있는 부자란 말인지 알 수 없다.
경애는 그 술잔을 들어서 입에 대려고는 아니하였다. 다만 부자의 피라도 빨아먹겠다는 한마디가 하고 싶어서 일부러 덕기의 술잔을 빼앗아 온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일부러 한 것은 내가 너를 몰라본 것이 아니라는 예기 지름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 이 술잔은 조상훈이의 아들 조덕기의 술잔이거니 하는 생각을 잊어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상훈은 누구요 덕기는 누구냐?...어쨌든 한때는 내 남편이요 따라서 아무리 연상약한 어릴 때의 학교 동무라 하여도 아들이라는 이름이 지어 있던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앞을 서기 때문에 경애는 덕기의 술잔을 끌어다가는 놓았어도 입에 대려고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덕기는 모든 것이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죽치고 앉았을 뿐이었다.
도리어 경애가 술이 취해서 괴둥괴둥 제 내력을 이야기할까보아 속으로 애가
씌었다.
[아이꼬상! 왜 이래? 또 애인 생각이 나는 게로군?]
주부가 경애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놀리는 듯 하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애인 생각!'
하며 덕기는 가슴이 찌르르 하는 것을 깨달았다.
[실없는 소리 마슈! 오늘은 유쾌해서 죽을 지경이니까 좀 먹을 테야.]
하고 경애는 앞에 놓인 술잔(덕기의 술잔)을 들어서 가운데 놓인 재떨이에 조르르 쏟더니 다시 술잔을 병화에게 내밀며 따르라고 한다.
이번에는 병화가 반잔만 따랐다.
[저게 무슨 짓이야! 손님 잔을...]
하고 주부가 또 나무라니까 경애는 거기에는 대꾸도 아니하고 덕기에게로 향하여,
[각세이상(학생 양반)! 당신은 안 자시니까 그래두 상관없지?]
하고 보통 손님에게 대하듯이 상냥스럽게 묻는다.
덕기는 얼떨결에 얼굴이 새빨개지며 '응'이라고 하였는지 '예에'라고 하였는지 자기도 알 수 없는 대답을 얼버무려 들였다.
[재가 이렇게 술을 먹는다고 누구든지 타락하였다고 하겠지? 허지만 타락하였으니까 술을 먹는다는 말도, 술을 먹으니까 타락하였다는 말도 안 될 말이지. 또 여자가 술을 먹는다고 타락하였다면 술 먹는 남자는 모두 타락하고 술 안 먹는 목사님 같은 사람은 모두 천당 가신다는 말이지? 네? 긴상(김씨) 정말 그런가요?]
하고 병화의 무릎을 탁 친다.
경애는 술이 도니까 점점 웅변이 되고 하느작거리는 교태가 여자의 눈에도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경애가 목사를 끌어내는 말에 병화는 하려던 말을 멈칫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덕기를 쳐다보았다.
병화의 아버지가 현재 장로요, 덕기의 아버지도 목사 장로는 아니나 교회 사업을 하고 있는 터이다. 물론 경애가 병화나 덕기의 부친을 알 리 없으니 빗대놓고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지만 병화는 현재 자기가 장로인 부친과 사상충돌로 집을 뛰쳐나와서 떠돌아다니는 신세이니만큼 평범한 그 말이 몹시 가슴에 찔리었다. 그러나 덕기는 경애의 말을 결코 무의미한 말로 듣지는 않았다. 무의미는 고사하고 자기더러 들어보라고 한 말임을 짐작하자 뒤달아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이제는 정말 일어서버려야 하겠다고 속이 달았다.
[난 결단코 타락하지 않았어요! 설사 내가 타락하였더라도 그것이 남의 탓이라고 칭원을 하지는 않지만 재가 타락하였다면 이 세상 연놈은 어떻게 하게요? 난 천당에 자리를 비워놓았대도 가지 않겠지만...]
경애는 점점 더 취기가 돌아서 가다가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지만 목사니 천당이니 하는 소리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 이 여자가 어떤 교회 학교 출신인가 하는 생각을 병화는 하였다.
[그렇구말구요. 그런 소리는 마시우.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이 있으니까... 당신은 언제든지 그런 생각으로 굳세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병화도 얼굴이 시뻘개져서 맞장구를 치고 공연히 흥분이 되었다.
[헌데 당신은 대관절 무얼 하는 양반요?]
경애가 별안간 병화에게 이렇게 묻고 이야기판을 차리려는 듯이 달려든다.
[나? 나요? 흐흥... 당신 눈에는 무얼 하는 사람같이 뵈우?]
하고 병화는 여전히 웃는다.
그러나 문이 휙 열리면서 다른 손님 한 축이 서넛 몰려들어오는 바람에 말허리가
잘렸다.
2부에 계속
삼대 염상섭 2 1931
1부에 이어
이튿날
[어서 일어나요. 어머니 오셨어요.]
아내가 건넌방 창으로 달려와서 깨우는 바람에 덕기는 그제야 우뚝 일어나 앉았다.
[어제 늦은 게로구나? 그래 오늘 떠나니?]
모친은 들어오면서 말을 건다. 아들이 떠난다니까 보러 온 것이었다.
[봐서 내일 떠나지요...]
덕기는 일어서며 하품 섞인 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내도 뒤따라 들어와 부리나케 자리를 게 얹는다.
안방 식구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안방 식구란 덕기의 서조모 식구다. 말하자면 서시어머니가 안방에 있을 터이나 덕기의 모친은 건너가 보려고도 아니하고 또 나 어린 서시어머니는 조를 차려서 들어와보려니 하고 버티고 앉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서시어머니가 안방을 차지 한 지가 5년, 따라서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나간 지도 5년이다. 자기보다도 다섯 살이나 아래인 서시어머니하고 한 솥의 밥을 먹기가 싫었다. 싫기는 피차일반이었다.
부자간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노영감은 손주는 귀애하여도 아들은 못마땅하였다. 게다가 귀한 젊은 첩을 들어앉히자니 아들 식구는 밀어내었던 것이다. 또 피차에 난편도 하였던 것이다.
70 당년에 첩의 몸에서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다. 지금 네 살, 이름은 귀순이다.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날 때 중학에 다니던 덕기도 물론 부모를 부모를 따라 나갔었다. 그러나 중학교 4년 때 장가를 들자 반년쯤 부모 앞에서 지내다가 이 할아버지 집으로 옮아왔다. 어머니는 내놓으려고 아니하였다. 색시의 친정에서도 젊은 시서조모 밑에 두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조부의 엄명을 거역하는 수는 없었다. 조부의 엄명은 서조모의 엄명이다. 서조모가 만만한 어린 내외를 데려다두고 휘두르며 부려먹기에도 알맞고 또 한 가지는 나먹은 며느리- 눈 안 맞는 며느리를 고독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노영감으로서는 손주 내외가 귀여워서 데려온 것일지 모른다. 또 덕기도 제 아버지보다는 조부를 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재산이 아직도 조부의 수중에 있고 단돈 한 푼이라도 조부가 차하를 하는 터이라 조부의 뜻을 맞추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혼인한 이듬해에는 건넌방에서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게 되었다. 첫아들이었다. 집안이 경사 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입으로 만이었다. 서조모는 소견이 좁고 보고 배운 것이 없었다. 공연히 건넌방 아이, 증손자를 시기하는 것이었다. 네 살짜리의 할머니와 세 살 먹은 손주가 자랄수록 손이 맞아서 일을 일리고 어른 싸움이 벌어지게 하였다.
증조부가 간혹 건넌방 아이를 좀 안아주면 안방마마의 눈귀가 가로 째지는 것이었다.
노영감도 불공평하자는 것은 아니나 몸이 괴로웠다. 결국에는 자기 딸이 귀엽고 젊은 첩에게로 쏠리건마는.
[아버니 지금 계세요?]
덕기는 마루로 나와서 또 한 번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건넌방에다 대고 물었다. 부친에게 길 떠나는 문안을 갈 생각이다.
[몰라! 사랑에 계신지 나가셨는지.]
모친의 대답은 냉담하였다. 원체 이 중늙은이 내외는 이름만 걸리 내외였다.
식사도 사랑, 잠도 사랑, 세수까지도 사랑에서 내다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코빼기도 못 보는 날이 많다. 그래도 남 보기에는 그리 의가 좋지 않은 것 같지도 않다. 검다 희다 말이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기 때문에 세속 일에 대범하고 초연해서 그런지? 도를 닦아서 여인에게는 근접을 아니하느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40에 한둘 넘은 이 중년 부인은 얼굴을 잊어버리게 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이애는 어디 갔니?]
모친은 손주새끼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업고 나갔어요. 사랑마당에서 노는지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안방 애 보는 년을 불러내어서 나가보라고 이른다.
[얘, 얘, 사랑에 나가건 영감님께 화개동 마님께서 오셨다고 여쭈어라.]
며느리는 안방 아이를 업고 마루로 내려가는 계집애년에게 소곤소곤 일렀다. 자기 시어머니가 시할아버지께 문안드릴 기회를 만들자는 분별이다.
아이년이 나가자 노영감이 곧 들어왔다. 며느리가 그리 급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온종일 할 일이 없어서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들락날락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인데 성미가 급하여서 듣기가 무섭게 들어온 것이다.
사랑문에서부터 기침을 칵하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며느리가 나왔다.
[음...]
며느리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한마디하고 마루 끝에서 자리옷을 입고 세수를 하다가 일어서는 손자를 보고,
[무슨 옷을 저렇게 헤갈을 해 입었니?]
하고 우선 한 번 쏜 뒤에,
[어제는 어디를 갔다가 몇 치에 들어왔단 말이냐?]
하고 역정을 낸다. 몇 시에 들어온 것은 오늘 아침에 벌써 안방마마의 보고로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것이다.
덕기는 물 묻은 얼굴로 가만히 비켜섰을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안방으로 들어가니까 며느리도 따라 들어가서 절을 하였다. 비로소 시서모와 대면을 하였다.
[응, 별고 없지?]
영감이 출입이 별로 없고 며느리도 이 집에를 여간한 일이 아니면 오기를 싫어하니까 시아버지 문안이 한 달에 한 번도 될까 말까하다.
[내일 모레 제사까지 묵어갈 테냐?]
며느리는 천만 의외의 소리를 시아버지에게 들었다. 잠자코 섰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모레가 바로 시할아버니 제사- 이 영감에게는 친기인 것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급한 일 없거든 왔다 갔다 하느니 아주 묵으려무나. 어린것들만 맡겨두어두 안 될 것이고 하니...]
며느리 입에서는 '네' 소리가 좀처럼 아니 나왔다. 시아버지는 못마땅하였다.
[그럼! 좀 있어서 차려주어야지. 나 혼자서는 어린것을 데리고 이 짧은 해에...]
한옆에 모로 앉았던 젊은 시서모가 비로소 말참견을 했다. 어린것들에게만 내맡겨둘 수 없다는 영감의 말이 며느리 앞에서 자기에게 모욕이나 준 것 같아 못마땅하여서 슬쩍 이렇게 돌려댄 것이다. 며느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여전히 입을 봉하고 섰다.
첫째 그 반말이 듣기 싫었다. 마주 반말을 해도 좋으나 그래도 밑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 분하다.
'첩 노릇은 할지언정 원 바닥이 있고 얌전하다면서 소대상을 차리니 말인가 무슨 장한 제사를 차린다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람! 어린애 핑계를 하니 아이 기르는 사람은 제사도 못 지내던 감.'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너희는 예수굔지 난장인지 한다고 조상 봉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나보더라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막무가내다!]
며느리가 끝끝내 잠자코 섰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연년이 제사 지낼 때마다 부자간에 충돌이 생기던 것을 생각하고 주름살 많은 얼굴이 발끈 상기가 되며 치미는 화를 참는다. 며느리는 좀 선뜻하였으나 무어라고 입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래 너두 이제는 천주학쟁이가 되었니? 내가 죽은 뒤에는 물 한 방울 떠놓겠니?]
시아버지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갔다.
수원집(시서모는 수원 태생이다)은 영감이 며느리를 꾸짖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시원하였다. 며느리가 무어라고 말대답이나 한마디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녜요. 쟤 떠나는 것도 보고 아주 제사까지 치르고 가겠어요. 그렇지 않어두 그럴 생각으로 왔어요.]
며느리의 말이 의외로 온순하여지니까 영감은 도리어 김이 빠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적이 풀리었다. 그러나 수원집은 마치 불구경 나갔다가 연기만 모락모락 나고 그만두는 것을 보고 돌아올 때와 같은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예수교 아니라 예수교보다 더한 것을 믿기로 그래 조상 정사--부모 제사 지내는 게 무에 틀린다 말이냐? 예수는 아버지를 모른다더라마는 어쨌든 예수도 부모가 있었기에 태어나지 않았겠니? ...덕기도 잘 들어두어라.]
하고 영감은 마루 편으로 소리를 치고 나서 또 밤낮 듣는 잔소리를 꺼낸다.
예수교 논래- 뒤따라서 아들의 논래를 한참 늘어놓고 나서는,
[덕기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수건질을 하고 섰는 손주를 불렀다.
[네...]
하고 건너왔다.
[그 일복 좀 벗어버려라. 사람이 의관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지!]
하고 우선 꾸지람을 한 뒤에,
[너도 제사 지내고서 떠나거라!]
하고 엄명을 하였다.
[네...]
[덕기는 고단도 하고 어제 의외에 만남 경애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기가 좀 마음에 걸리던 차에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경애 일에 몸 달 일이야 없고 그것으로 출발을 연기까지 할 묘리는 없으나 이래저래 잘된 셈이다.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주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일 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 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에미도 모르는 자식!]
이 소리가 사랑으로 안으로 들락거리는 노영감의 입에서 몇 십 번 몇 백 번이나 나오는지 파제삿날 저녁때나 되어서 눈에 뛰는 사람이 없어져야 간정이 되는 것이었다.
[대체는 영감마님이 의는 퍽 좋으셨던 게야.]
젊은 여편네들이 수원집더러 들어보라고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면 덕기 모친은,
[내외분의 의가 좋으셨기나 했기에 혼쭐나게 얌전하고 유명 짜한 그런 아드님을 나셨지.]
하고 자기 남편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끝끝내 자기 어머님 제사 참례도 안 하고 영감님 분별로 덕기 모자와 일가에서 모여드는 동할렬끼리만 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할머니 제사에 또 한 가지 겸치는 것은 수원집이 까닭도 없이 방구석에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꽈리주둥이가 되어 아이들만 들볶는 것이었다. 여편네들은 영 그 꼴이 미워서 잔칫집처럼 깔깔대고 법석을 하면 서 영감님이 친기보다도 마님 제사는 더 위하신다는 둥- 하는 소리를 수원집 턱밑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밤새도록 떠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조부의 제사에 정성이 부족하다는 훈계를 들으면서도 지끈지끈하는 무거운 머리로,
'오늘 저녁때 바커스에 다시 한 번 가볼까?'
하고 생각이 떠오를 뿐이요, 조부의 쓴 안경알이 꺼멓게 어른거리는 것조차 멀리 어렴풋이 바라다보였다.
어제 왔던 그런 좋지 못한 친구하고 어울려서 밤늦도록 나다니지 말라는 훈계가 끝나자 덕기 모자는 겨우 안방에서 풀려서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덕기는 밥상을 받고, 화롯가에 담배를 피워 물고 가만히 앉았는 모친을 바라보고는 또다시 어제 만난 경애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대관절 그 일을 아시나? 아신다면 그 당시에 어쨌을꾸?.. .그러나 어떻게 돼서 언제 헤지구 말았는구? ...분명히 소생- 내게는 누이동생이나 코빼기도 보지 못한 고마울 것도 없는 누이동생이 하나 잇다는 말을 들었는데...'
덕기는 혓바닥이 헤어지고 머릿속에서 그저 지진이 나는 것 같은 것을 참고 물말이를 정신없이 퍼 넣으며 혼자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께 여쭈어볼까?'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그러나 모친에게 묻기가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알든 모르든 가엾은 생각이 나서 그만두리라고 돌려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뉘게 물어보나? 하고 공연히 갑갑증이 났다. 부친에게 직통대고 묻는 수도 없고 집안에서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시급히 알아보아야 할 일은 아니건마는 그래도 궁금하였다.
부친의 친구를 찾아가서 물으면 알리라 하는 생각이 들자 물어봄직한 사람을 속으로 골라보았다. 몇 사람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나 부친은 혼자만 속에 넣어 두는 일생의 비밀일 터인데 섣부른 짓을 하다가 덧드러나게 되면 큰일이라고 이것도 돌려 생각을 하였다. 교회 속일이니만큼 그리고 아직도 부친이 교회의 신임을 받고 그 사회 속에서는 그래도 웬만큼 알리어 있느니만큼 부친의 전비는 어쨌든지 명예를 위하여 함부로 발설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을 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이상하게도 한옆에서 부친을 미워하는 마음이 머리를 들었다. 부자의 정리보다도 부친에게 대한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불현듯이 떠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혹은 그와 같은 정도로 옆에 앉았는 모친과 경애가 가엾이 생각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경애가 낳은 딸- 보지 못한 누이동생 그리고 자기 남매까지 불행하고 측은히 생각되었다.
부친이 그리 잘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인격으로 아들에게만 이라도 숭배를 받았던들 얼마나 자기는 행복하였을까?
덕기는 부친에게 인격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 없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혹 부친이 자기에게 냉담하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섬겨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이해가 없으신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만 그러시지 않아도 어머니도 행복이시고 우리도 행복이었을 것이다. 경애도 제대로 올곧게 제 운명 제 길을 찾아나갔을 것이 아닌가?...'
이번 양력설을 쇠고는 스물세 살이 된 그다. 세상의 못된 물이 들지 않고 지각도 들 만큼 들어갈 때다.
[어머니! 요새두 아버지께서 약주 잡수세요?]
덕기는 숭늉을 천천히 마시다 말고 옆으로 앉은 모친을 쳐다보았다.
[누가 아니! 약주를 잡숫든 기생방에 가든!]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다가 자기 말이 너무 몰풍스러운 것을 뉘우친 듯이,
[술상 보아 내오라는 말씀이 없으니 안 잡숫는 게지.]
하고 다시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모친의 나중 말도 덕기에게는 부친을 비웃는 말로밖에 아니 들렸다.
[아버님께서 잡숫는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주의를 해요!]
시어머니와 화로를 격해서 윗목에 쪼크리고 앉았던 아내가 오금을 박는다.
[잔소리 말어!]
하고 핀잔을 주고 덕기는 담배를 들고 가만히 화롯불에 꼭꼭 눌러 붙인다.
[너두 술 먹니?]
하며 모친은 얼마쯤 놀란 듯이 아들을 쳐다본다.
[어제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서 오밤중에나 들어왔습니다.]
며느리는 남편이 행여 무어랄까 보아 얼른 고자질을 하고는 밥상을 번쩍 들고 나가 버렸다.
[내력 술이니까 하는 수 없지만 벌써부터 술을 배워 되겠니...?]
모친은 가볍게 나무라두었다.
[끌려서 부득이... 몇 잔 먹구 취하나요. 하지만...]
하고 덕기가 말을 끊으려니까 모친은 덕기의 뒷말을 기다리고 앉았다가,
[너 아버지 말이냐? 너 아버지야 그저 그런 이로 돌리려니와...]
하고 말을 미리 받는다.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지 말으셨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밤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요... 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둔 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덕기는 일전에 병화가 세문 밖 냉동 근처의 좋지 못한 술집에서 자기 부친을 분명히 만나보았다고 신야 넋이야 하며 싫은 소리를 주절대던 것을 생각하며 분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이런 소리를 조용조용히 하였다.
[그런 소리를 왜 날더러 하니? 너 아버지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었다.
'그러는 어머니도, 당신 그러면 그러지, 뉘 아나! 하고 남남 끼리처럼 하시지 말고 지성껏 아버지를 받들고 그렇게 못 하시게 하시면 자연히 아버지 신상이나 집안 꼴이나 나아가지 않아요!'
덕기는 이런 말을 하려다가 참아버렸다.
말은 그쳤다. 모자는 담배만 피우며 싸운 사람들 같이 가만히 앉았다.
중문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엉엉 난다. 모친은 앞창을 열고 내다보며,
[추운데 어디를 이렇게 싸지르는 거냐?]
하며 애년을 나무라고 나서,
[어 우지 마라, 어어 울지 마라!]
하고 건너다보고 어른다.
며느리가 얼른 가서 우는 아이를 받아 안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아이는 어머니 겨드랑이만 파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할머니께 안녕 안녕-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어미는 나무라면서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젖통이를 내놓기가 부끄러운지 머뭇머뭇하니까,
[어서 젖을 물리렴!]
하고 시어미니는 그래도 귀한 손주새끼를 넘겨다본다.
어린애는 젖을 물자 눈을 감아버린다.
[잠이 와서 그러는구나.]
[새벽같이 깨어서 바스락거리니까요...]
고식도 더 말할 게 없는 사람처럼 다시는 입을 아니 벌렸다. 이 방(건넌방)의 아이 보는 계집애년은 세 식구가 잠잠히 앉았는 것을 보고 심심해서 스르르 마루로 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시어머니는 말을 꺼낸다.
[이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냐? 손등에 얼음이 들었구나!]
하며 시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앉은 며느리의 새빨간 두 손을 바라보고 눈을 찌푸렸다.
[무어 그저 그렇지요.]
며느리는 예사롭게 대답을 하며 싱끗 웃었다.
[안방에서는 여전히 쓸어맡기고 모른 척하니?]
[그러믄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다정한 말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밤낮 그 아이 하나로 온종일 헤어나지를 못하고 방문 밖이나 나오시나요.]
하고 하소연을 한다.
[계집애년두!]
[그럼요. 버릇을 애초에 잘못 가르치셨으니 까요.]
[행랑것은 새로 들어왔다더니 어떠냐?]
[밥이나 짓지요마는 온 지 며칠 안 된 것이 능글능글하게 엉너리만 치고 안방에만 들락날락거리고 가관이죠.]
[지시는 누가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사랑에서 데리고 들어오셔서 오늘부터 두게 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사랑 손님이 지시한 것이지요.]
[어쨌든 그래서 안 됐구나.]
[무어요?]
[아니, 글쎄 말이다. 안방에만 긴한 듯이 달라붙어 버리면 어지중간에 너만 괴롭잖겠니?]
[......]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동정에 감격해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콧등을 훌쩍 들이마신다.
[어리다고 하속배라도 넘볼 것이요 윗사람이라고 그 모양이니... 네 고생도 다안다. 내가 너희들만 데기로 있다면야 낸들 무슨 걱정이 되고 불평이 있겠니! 그것두 모두 내 팔자소관이니까.]
시어머니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이 부인은 야소교인이 아닌지라 '그것두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내 팔자소관이라고 한다.
덕기는 더 듣고 앉았기가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모친 앞이라 참아버렸다. 덕기는 사랑으로 나오면서 혼자 한숨을 쉬었다. 집안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고 싶었다.
사랑 댓돌 위에는 고무신 경제화가 네댓 켤레 놓여 있다. 할아버지의 그 쌀쌀한 규모로 사랑에도 60먹은 지 주사 한 사람 외에는 군식구를 두지 않건마는 그래도 놀 데 없고 먹을 것 없는 노인들은 모여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제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지금 안에서 듣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지체 보아서 한다고 할아버지가 야단야단치고 얻어 맡긴 아내는 또 그것도 처음에는 좋다가 일본 갈 때쯤은 싫증도 났던 아내이건마는 시서모 앞에서 남편도 없는 동안에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 가엾기도 하였다.
사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구식 가정에서 자랐기에 이 속에서 배겨 있지 요새의 신여성 같으면 야 풍파가 나도 몇 번 났을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신지식 없다고 싫어하던 것이 이제는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어느덧 한잠 푹 들어버렸다.
[…….덕기도 제사까지 지내고 가라고 하였다...]
덕기는 분명히 조부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법하다. 꿈이 아니었던가 하며 소스라쳐 깨어 눈을 떠보니 머리맡 창에 볕이 쨍쨍히 비친 것이 어느덧 저녁때가 된 것 같다. 벌써 새로 3시가 넘었다. 아침 먹고 나오는 길로 따뜻한 데 누웠으려니까 잠이 폭폭 왔던 것이다. 어쨌든 머리를 쳐드니, 작취가 이제야 깨인 듯이 거뜬하고 몸도 풀린 것 같다.
[네 처두 묵으라고 하였다만 모레는 너두 들를 테냐? 들르면 무얼 하느냐마는...]
조부의 못마땅해 하는- 어떻게 들으면 말을 만들어보려고 짓궂이 비꼬는 강강한 어투가 또 들린다.
덕기는 부친이 왔나보다 하고 가만히 유리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수달피 깃을 댄 검정 외투를 입은 홀쭉한 뒷모양이 뜰을 격하여 큰 마루 앞에 보이고 조부는 창을 열고 내다보고 앉았다. 덕기는 일어서려다가 조부가 문을 닫은 뒤에 나가리라 하고 주저앉았다.
[저야 오지요마는 덕기는 붙드실 게 무엇 있습니까, 공부하는 애는 그보다 더한 일이 있더라도 하루바삐 보내야지요...]
이것은 부친의 소리다. 부친은 가냘프고 신경질적인 체격 보아서는 목소리라든지 느리게 하는 어조가 퍽 딴판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와 느린 말투는 젊었을 때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예수교 속에서 얻은 수양인가 보다고 덕기는 늘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비하면 조부의 목소리와 어투는 자기 생긴 거와 같이 몹시 긴경 질적이요 강강하였다.
[그보다 더한 일이라니?]
시비를 차리는 사람이 저편의 말끝을 잡은 것만 다행이라는 듯이 조부의 목소리는 긴장하였다.
부친은 잠자코 섰는 모양이다.
[계집자식이 붙드는 게 그보다도 더한 일이냐? 에미 애비가 숨을 몬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냐?]
[왜 불관한 일에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똑같이 부드럽고 똑같이 이분 간에 50마디밖에 아니 되는 듯한 말소리다. 그러나 노영감은 아들의 그 말소리가 추근추근히 골을 올리려는 것같이 들려서 더 못마땅하였다.
[그래 무어 어쨌단 말이냐? 에미 애비 제사도 모르는 놈이 당장 내가 숨을 몬다기로 눈 하나 깜짝이나 할 터이냐? 그런 놈을 공부는 시키면 무얼 하니?]
영감은 입에 물었던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친다. 방 안에 좌우로 늘어앉은 노인 축들은 두 손을 쓱쓱 비비며 꾸뻑꾸뻑 조는 사람처럼 고개들을 파묻고 앉았을 뿐이다. 이 사람들은 주인 영감의 말이 꼭 옳은지 안 옳은지 뚜렷이 판단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가 달라서 제사 안 지낸다고 반드시 부모의 임종까지 안하리라고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의 말을 들으면 그도 그래!'
하는 생각을 노인들은 하였으나 그래도 제사 안 지낸다고 야단치는 점만은 주인 영감이 옳다고 속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었다.
[무슨 잔소리를 그래도 뻔뻔히 서서 하는 것이냐? 어서 가거라! 네 자식도 너 따위를 만들 작정이냐? 덕기는 내가 기르고 내가 공부를 시키는 터이다. 너는 낳았달 뿐이지 내 손으로 밥 한술이나 먹이고 학비 한 푼이나 대어 주었니? 내가 아무러면 너만큼 못 가르쳐놓겠니! 잔소리 말고 어서 가거라! 도덕이니 박애니 구원이니 하면서 제 자식 하나 못 가르치는 놈이 입으로만 허울 좋은 소리를 떠들면 세상이 잘될 듯싶으냐!]
이것도 이 영감에게서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다. 옳은 말이라고 노인들은 생각하였다.
[영감, 고정하지요. 영감 말씀이 저저히 옳으신 말씀이지만 저 사람도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려니까 제사 참례만 안 한다는 것이지 어디 누가 반대를 하는 건가요.]
저녁때가 되어서 사람이 삐어 식구가 줄면은 술상이 나올까 하고 배를 축이고 앉았던 제일 연장되는 노인 한 분이 중재를 하는 것이었다.
덕기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아랫방에서 나왔다.
[오늘 가 뵈려고 하였어요. 글피쯤 떠날까봅니다.]
덕기는 부친 앞에 가서 이런 소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였다.
부친은 잠자코 아들을 바라보다가 모자를 벗고 방 안에다 대고 인사를 한 뒤에 안에는 아니 들르고 대문 편으로 나가버렸다.
조부가 창문을 후닥닥 닫았다.
올 적마다 조부에게 꾸중만 맞고 안에도 들르거나 말거나 하고 훌쩍 가 버리는 부친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덕기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부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남에 없는 위선자거나 악인은 아니다.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한 돈도 못 되는 한 푼 내외의 차이밖에 없건만 부친이 어떤 동기로 이었든지- 어떤 동기라느니보다도 2, 30년 전 시대의 신 청년이 봉건사회를 뒷발길로 차버리고 나서려고 허비적거릴 때에 누구나 그리하였던 것과 같이 그도 젊은 지사로 나섰던 것이요, 또 그러느라면 정치적으로는 길이 막힌 그들이 모여드는 교단 아래 밀려가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 오늘날의 종교 생활의 첫 발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만일 그가 요샛말로 자기청산을 하고 어떤 시기에 거기에서 발을 빼냈더라면 그가 사상으로도 더 새로운 시대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요, 실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성격대로 순조로운 길을 나아가는 동시에 그러한 위선적 이중생활 속에서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현실상 앞에 눈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온 시대상과 너희의 시대상의 귀일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네 사상과 내 사상이 합치되는 소위 ]제 3 제국]을 바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 걸음 나아갔고 나는 그만큼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의 시대에서 또 한 걸음 다시 나아가면 그 때에는 도리어 내 시대의 사상,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어떠한 일부분이라도 필요하게 될지 누가 아니? 나는 그것을 믿고 그것을 믿고 그것을 찾는다...'
이번에 덕기가 돌아와서 부친과 병화의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사상 문제와 실제 운동 문제에까지 화제가 돌아갔을 때 덕기가 부친에게 종교를 내던지라고 하니까 부친은 이와 같은 대답을 하였던 것이다.
덕기는 부친의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구습상 부친에게 반대할 수도 없고 또 제 주제에 길게 논란할 수도 없는 터이어서 그만두었다. 그뿐 아니라 부친이,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현대 사상 경향이나 사회 현상에 대하여 아주 어둡고 무관심한 것이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이 반갑기도 하고 부자간의 이런 토론은 처음이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부친과 자기 사이가 좀 가까워진 것 같은 기쁜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웃고만 말았지만 어쨌든 부친은 봉건 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 조부와 덕기 자신의 중간에 끼여서 조부 편이 될 수도 없고 아들인 덕기 자신의 편도 못 되는 것과 같은 어지중간에 처지라고
새삼스러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자기의 사상 내용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번민기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덕기는 부친에게 대하여 가다가다 반감이 불끈 치밀다가도 한편으로는 가엾은 생각, 동정하는 마음이 나는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덕기는 제 방에서 어젯밤에 들어와 벗어 건 양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웬 셈인지 오늘은 더욱이 사랑에 나가서 혼자 오뚝이 앉았기도 맥없고 안에 들어와서 고식이 마주 앉아 안방 논래나 부친 논래를 하고들 있는 것을 듣기도 싫었다.
[저녁두 안 먹고 지금 어디를 가니?]
모친은 나무라듯이 물었다.
[잠깐 바람 쐬고 들어와요.]
[아버지 뵈러 가지 않니?]
[아버닌 지금 다녀가셨는데요.]
[응?...]
모친은 놀라는 소리를 하다가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자기가 와 있어서 안에는 안 들러 갔구나-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안에 어쩌면 좀 안 들어오시고 그대로 가셨어요?]
아내도 섭섭한 듯이 시어머니 대신에 묻는다.
[바쁘시니까 그런 게지!]
하고 덕기는 핀잔을 주었다.
덕기는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기가 싫어서 그런 것이지만 모친은 속으로 아들도 못마땅하였다.
'너두 네 아비 편만 드는구나!'
하는 약속한 생각으로.
[어머니- 그런데 오늘 묵어가세요?]
덕기는 다시 온유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럼 어쩌니! 나는 40을 먹어도 호된 시집살이다!]
모친은 이렇게 자탄을 하다가 나가는 길에 화개동 집에 가서 자기가 묵는다는 말을 이르고 누이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글세- 갈 새가 있을라구요. 아무쪼록 가겠습니다마는 누구든지 보내십쇼그려.]
덕기는 정처가 있어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화개동 막바지까지가 가기가 싫어서 이렇게 일러놓고 나오면서 지갑 속에 든 돈 요량을 하여보았다. 아직 노비와 학비를 분명히 타지 않았기 때문에 병화의 밥값 한 달 치를 주기는 어려웠다.
3부에 계속
삼대 염상섭 2 1931
1부에 이어
이튿날
[어서 일어나요. 어머니 오셨어요.]
아내가 건넌방 창으로 달려와서 깨우는 바람에 덕기는 그제야 우뚝 일어나 앉았다.
[어제 늦은 게로구나? 그래 오늘 떠나니?]
모친은 들어오면서 말을 건다. 아들이 떠난다니까 보러 온 것이었다.
[봐서 내일 떠나지요...]
덕기는 일어서며 하품 섞인 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내도 뒤따라 들어와 부리나케 자리를 게 얹는다.
안방 식구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안방 식구란 덕기의 서조모 식구다. 말하자면 서시어머니가 안방에 있을 터이나 덕기의 모친은 건너가 보려고도 아니하고 또 나 어린 서시어머니는 조를 차려서 들어와보려니 하고 버티고 앉았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서시어머니가 안방을 차지 한 지가 5년, 따라서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나간 지도 5년이다. 자기보다도 다섯 살이나 아래인 서시어머니하고 한 솥의 밥을 먹기가 싫었다. 싫기는 피차일반이었다.
부자간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노영감은 손주는 귀애하여도 아들은 못마땅하였다. 게다가 귀한 젊은 첩을 들어앉히자니 아들 식구는 밀어내었던 것이다. 또 피차에 난편도 하였던 것이다.
70 당년에 첩의 몸에서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다. 지금 네 살, 이름은 귀순이다.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날 때 중학에 다니던 덕기도 물론 부모를 부모를 따라 나갔었다. 그러나 중학교 4년 때 장가를 들자 반년쯤 부모 앞에서 지내다가 이 할아버지 집으로 옮아왔다. 어머니는 내놓으려고 아니하였다. 색시의 친정에서도 젊은 시서조모 밑에 두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조부의 엄명을 거역하는 수는 없었다. 조부의 엄명은 서조모의 엄명이다. 서조모가 만만한 어린 내외를 데려다두고 휘두르며 부려먹기에도 알맞고 또 한 가지는 나먹은 며느리- 눈 안 맞는 며느리를 고독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노영감으로서는 손주 내외가 귀여워서 데려온 것일지 모른다. 또 덕기도 제 아버지보다는 조부를 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재산이 아직도 조부의 수중에 있고 단돈 한 푼이라도 조부가 차하를 하는 터이라 조부의 뜻을 맞추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혼인한 이듬해에는 건넌방에서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게 되었다. 첫아들이었다. 집안이 경사 났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입으로 만이었다. 서조모는 소견이 좁고 보고 배운 것이 없었다. 공연히 건넌방 아이, 증손자를 시기하는 것이었다. 네 살짜리의 할머니와 세 살 먹은 손주가 자랄수록 손이 맞아서 일을 일리고 어른 싸움이 벌어지게 하였다.
증조부가 간혹 건넌방 아이를 좀 안아주면 안방마마의 눈귀가 가로 째지는 것이었다.
노영감도 불공평하자는 것은 아니나 몸이 괴로웠다. 결국에는 자기 딸이 귀엽고 젊은 첩에게로 쏠리건마는.
[아버니 지금 계세요?]
덕기는 마루로 나와서 또 한 번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건넌방에다 대고 물었다. 부친에게 길 떠나는 문안을 갈 생각이다.
[몰라! 사랑에 계신지 나가셨는지.]
모친의 대답은 냉담하였다. 원체 이 중늙은이 내외는 이름만 걸리 내외였다.
식사도 사랑, 잠도 사랑, 세수까지도 사랑에서 내다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코빼기도 못 보는 날이 많다. 그래도 남 보기에는 그리 의가 좋지 않은 것 같지도 않다. 검다 희다 말이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기 때문에 세속 일에 대범하고 초연해서 그런지? 도를 닦아서 여인에게는 근접을 아니하느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40에 한둘 넘은 이 중년 부인은 얼굴을 잊어버리게 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이애는 어디 갔니?]
모친은 손주새끼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업고 나갔어요. 사랑마당에서 노는지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안방 애 보는 년을 불러내어서 나가보라고 이른다.
[얘, 얘, 사랑에 나가건 영감님께 화개동 마님께서 오셨다고 여쭈어라.]
며느리는 안방 아이를 업고 마루로 내려가는 계집애년에게 소곤소곤 일렀다. 자기 시어머니가 시할아버지께 문안드릴 기회를 만들자는 분별이다.
아이년이 나가자 노영감이 곧 들어왔다. 며느리가 그리 급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온종일 할 일이 없어서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들락날락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인데 성미가 급하여서 듣기가 무섭게 들어온 것이다.
사랑문에서부터 기침을 칵하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며느리가 나왔다.
[음...]
며느리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한마디하고 마루 끝에서 자리옷을 입고 세수를 하다가 일어서는 손자를 보고,
[무슨 옷을 저렇게 헤갈을 해 입었니?]
하고 우선 한 번 쏜 뒤에,
[어제는 어디를 갔다가 몇 치에 들어왔단 말이냐?]
하고 역정을 낸다. 몇 시에 들어온 것은 오늘 아침에 벌써 안방마마의 보고로 알고 있으면서 묻는 것이다.
덕기는 물 묻은 얼굴로 가만히 비켜섰을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안방으로 들어가니까 며느리도 따라 들어가서 절을 하였다. 비로소 시서모와 대면을 하였다.
[응, 별고 없지?]
영감이 출입이 별로 없고 며느리도 이 집에를 여간한 일이 아니면 오기를 싫어하니까 시아버지 문안이 한 달에 한 번도 될까 말까하다.
[내일 모레 제사까지 묵어갈 테냐?]
며느리는 천만 의외의 소리를 시아버지에게 들었다. 잠자코 섰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모레가 바로 시할아버니 제사- 이 영감에게는 친기인 것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급한 일 없거든 왔다 갔다 하느니 아주 묵으려무나. 어린것들만 맡겨두어두 안 될 것이고 하니...]
며느리 입에서는 '네' 소리가 좀처럼 아니 나왔다. 시아버지는 못마땅하였다.
[그럼! 좀 있어서 차려주어야지. 나 혼자서는 어린것을 데리고 이 짧은 해에...]
한옆에 모로 앉았던 젊은 시서모가 비로소 말참견을 했다. 어린것들에게만 내맡겨둘 수 없다는 영감의 말이 며느리 앞에서 자기에게 모욕이나 준 것 같아 못마땅하여서 슬쩍 이렇게 돌려댄 것이다. 며느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여전히 입을 봉하고 섰다.
첫째 그 반말이 듣기 싫었다. 마주 반말을 해도 좋으나 그래도 밑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 분하다.
'첩 노릇은 할지언정 원 바닥이 있고 얌전하다면서 소대상을 차리니 말인가 무슨 장한 제사를 차린다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람! 어린애 핑계를 하니 아이 기르는 사람은 제사도 못 지내던 감.'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너희는 예수굔지 난장인지 한다고 조상 봉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나보더라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막무가내다!]
며느리가 끝끝내 잠자코 섰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연년이 제사 지낼 때마다 부자간에 충돌이 생기던 것을 생각하고 주름살 많은 얼굴이 발끈 상기가 되며 치미는 화를 참는다. 며느리는 좀 선뜻하였으나 무어라고 입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래 너두 이제는 천주학쟁이가 되었니? 내가 죽은 뒤에는 물 한 방울 떠놓겠니?]
시아버지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갔다.
수원집(시서모는 수원 태생이다)은 영감이 며느리를 꾸짖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시원하였다. 며느리가 무어라고 말대답이나 한마디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녜요. 쟤 떠나는 것도 보고 아주 제사까지 치르고 가겠어요. 그렇지 않어두 그럴 생각으로 왔어요.]
며느리의 말이 의외로 온순하여지니까 영감은 도리어 김이 빠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적이 풀리었다. 그러나 수원집은 마치 불구경 나갔다가 연기만 모락모락 나고 그만두는 것을 보고 돌아올 때와 같은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예수교 아니라 예수교보다 더한 것을 믿기로 그래 조상 정사--부모 제사 지내는 게 무에 틀린다 말이냐? 예수는 아버지를 모른다더라마는 어쨌든 예수도 부모가 있었기에 태어나지 않았겠니? ...덕기도 잘 들어두어라.]
하고 영감은 마루 편으로 소리를 치고 나서 또 밤낮 듣는 잔소리를 꺼낸다.
예수교 논래- 뒤따라서 아들의 논래를 한참 늘어놓고 나서는,
[덕기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수건질을 하고 섰는 손주를 불렀다.
[네...]
하고 건너왔다.
[그 일복 좀 벗어버려라. 사람이 의관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지!]
하고 우선 꾸지람을 한 뒤에,
[너도 제사 지내고서 떠나거라!]
하고 엄명을 하였다.
[네...]
[덕기는 고단도 하고 어제 의외에 만남 경애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기가 좀 마음에 걸리던 차에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경애 일에 몸 달 일이야 없고 그것으로 출발을 연기까지 할 묘리는 없으나 이래저래 잘된 셈이다.
그러나 덕기는 조부가 부친에게 대하여 육장 줄로 친 듯이 꾸지람을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누구 편은 더 들고 주구 편은 덜 드는 것이 아니지만 조부의 결은 잔소리- 그거나마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예수교 논래에는 시비는 하여간에 이제는 머리가 띵하였다. 일 년에 몇 차례씩 되는 제사 때면 한층 심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님 제사- 즉 덕기에게는 조모 제사요 부친에게는 친기가 되지만 그 때가 되면 연년이 난가가 되는 것이다.
[에미도 모르는 자식!]
이 소리가 사랑으로 안으로 들락거리는 노영감의 입에서 몇 십 번 몇 백 번이나 나오는지 파제삿날 저녁때나 되어서 눈에 뛰는 사람이 없어져야 간정이 되는 것이었다.
[대체는 영감마님이 의는 퍽 좋으셨던 게야.]
젊은 여편네들이 수원집더러 들어보라고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면 덕기 모친은,
[내외분의 의가 좋으셨기나 했기에 혼쭐나게 얌전하고 유명 짜한 그런 아드님을 나셨지.]
하고 자기 남편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끝끝내 자기 어머님 제사 참례도 안 하고 영감님 분별로 덕기 모자와 일가에서 모여드는 동할렬끼리만 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할머니 제사에 또 한 가지 겸치는 것은 수원집이 까닭도 없이 방구석에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꽈리주둥이가 되어 아이들만 들볶는 것이었다. 여편네들은 영 그 꼴이 미워서 잔칫집처럼 깔깔대고 법석을 하면 서 영감님이 친기보다도 마님 제사는 더 위하신다는 둥- 하는 소리를 수원집 턱밑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밤새도록 떠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조부의 제사에 정성이 부족하다는 훈계를 들으면서도 지끈지끈하는 무거운 머리로,
'오늘 저녁때 바커스에 다시 한 번 가볼까?'
하고 생각이 떠오를 뿐이요, 조부의 쓴 안경알이 꺼멓게 어른거리는 것조차 멀리 어렴풋이 바라다보였다.
어제 왔던 그런 좋지 못한 친구하고 어울려서 밤늦도록 나다니지 말라는 훈계가 끝나자 덕기 모자는 겨우 안방에서 풀려서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덕기는 밥상을 받고, 화롯가에 담배를 피워 물고 가만히 앉았는 모친을 바라보고는 또다시 어제 만난 경애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대관절 그 일을 아시나? 아신다면 그 당시에 어쨌을꾸?.. .그러나 어떻게 돼서 언제 헤지구 말았는구? ...분명히 소생- 내게는 누이동생이나 코빼기도 보지 못한 고마울 것도 없는 누이동생이 하나 잇다는 말을 들었는데...'
덕기는 혓바닥이 헤어지고 머릿속에서 그저 지진이 나는 것 같은 것을 참고 물말이를 정신없이 퍼 넣으며 혼자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께 여쭈어볼까?'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다. 그러나 모친에게 묻기가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알든 모르든 가엾은 생각이 나서 그만두리라고 돌려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뉘게 물어보나? 하고 공연히 갑갑증이 났다. 부친에게 직통대고 묻는 수도 없고 집안에서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시급히 알아보아야 할 일은 아니건마는 그래도 궁금하였다.
부친의 친구를 찾아가서 물으면 알리라 하는 생각이 들자 물어봄직한 사람을 속으로 골라보았다. 몇 사람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나 부친은 혼자만 속에 넣어 두는 일생의 비밀일 터인데 섣부른 짓을 하다가 덧드러나게 되면 큰일이라고 이것도 돌려 생각을 하였다. 교회 속일이니만큼 그리고 아직도 부친이 교회의 신임을 받고 그 사회 속에서는 그래도 웬만큼 알리어 있느니만큼 부친의 전비는 어쨌든지 명예를 위하여 함부로 발설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을 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이상하게도 한옆에서 부친을 미워하는 마음이 머리를 들었다. 부자의 정리보다도 부친에게 대한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불현듯이 떠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혹은 그와 같은 정도로 옆에 앉았는 모친과 경애가 가엾이 생각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경애가 낳은 딸- 보지 못한 누이동생 그리고 자기 남매까지 불행하고 측은히 생각되었다.
부친이 그리 잘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인격으로 아들에게만 이라도 숭배를 받았던들 얼마나 자기는 행복하였을까?
덕기는 부친에게 인격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 없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혹 부친이 자기에게 냉담하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섬겨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이해가 없으신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만 그러시지 않아도 어머니도 행복이시고 우리도 행복이었을 것이다. 경애도 제대로 올곧게 제 운명 제 길을 찾아나갔을 것이 아닌가?...'
이번 양력설을 쇠고는 스물세 살이 된 그다. 세상의 못된 물이 들지 않고 지각도 들 만큼 들어갈 때다.
[어머니! 요새두 아버지께서 약주 잡수세요?]
덕기는 숭늉을 천천히 마시다 말고 옆으로 앉은 모친을 쳐다보았다.
[누가 아니! 약주를 잡숫든 기생방에 가든!]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다가 자기 말이 너무 몰풍스러운 것을 뉘우친 듯이,
[술상 보아 내오라는 말씀이 없으니 안 잡숫는 게지.]
하고 다시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모친의 나중 말도 덕기에게는 부친을 비웃는 말로밖에 아니 들렸다.
[아버님께서 잡숫는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주의를 해요!]
시어머니와 화로를 격해서 윗목에 쪼크리고 앉았던 아내가 오금을 박는다.
[잔소리 말어!]
하고 핀잔을 주고 덕기는 담배를 들고 가만히 화롯불에 꼭꼭 눌러 붙인다.
[너두 술 먹니?]
하며 모친은 얼마쯤 놀란 듯이 아들을 쳐다본다.
[어제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서 오밤중에나 들어왔습니다.]
며느리는 남편이 행여 무어랄까 보아 얼른 고자질을 하고는 밥상을 번쩍 들고 나가 버렸다.
[내력 술이니까 하는 수 없지만 벌써부터 술을 배워 되겠니...?]
모친은 가볍게 나무라두었다.
[끌려서 부득이... 몇 잔 먹구 취하나요. 하지만...]
하고 덕기가 말을 끊으려니까 모친은 덕기의 뒷말을 기다리고 앉았다가,
[너 아버지 말이냐? 너 아버지야 그저 그런 이로 돌리려니와...]
하고 말을 미리 받는다.
[글쎄 금주 선전 신문인가 무엇엔가 글이나 쓰지 말으셨으면 좋지 않아요! 도무지 교회도 나와버리시구 그런 데 간섭을 마셨으면 좋을 게 아니에요. 밤 10시까지는 설교를 하시고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술집으로 여기저기 갈 데 안 갈 데 돌아다니시니 그러면 세상이 모르나요. 언제든지 알리고 말 것이요... 그것도 거기다가 목숨을 매달고 서양 사람의 둔 푼이나 얻어먹어야 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덕기는 일전에 병화가 세문 밖 냉동 근처의 좋지 못한 술집에서 자기 부친을 분명히 만나보았다고 신야 넋이야 하며 싫은 소리를 주절대던 것을 생각하며 분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이런 소리를 조용조용히 하였다.
[그런 소리를 왜 날더러 하니? 너 아버지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하고 모친은 핀잔을 주었다.
'그러는 어머니도, 당신 그러면 그러지, 뉘 아나! 하고 남남 끼리처럼 하시지 말고 지성껏 아버지를 받들고 그렇게 못 하시게 하시면 자연히 아버지 신상이나 집안 꼴이나 나아가지 않아요!'
덕기는 이런 말을 하려다가 참아버렸다.
말은 그쳤다. 모자는 담배만 피우며 싸운 사람들 같이 가만히 앉았다.
중문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엉엉 난다. 모친은 앞창을 열고 내다보며,
[추운데 어디를 이렇게 싸지르는 거냐?]
하며 애년을 나무라고 나서,
[어 우지 마라, 어어 울지 마라!]
하고 건너다보고 어른다.
며느리가 얼른 가서 우는 아이를 받아 안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아이는 어머니 겨드랑이만 파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할머니께 안녕 안녕-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어미는 나무라면서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젖통이를 내놓기가 부끄러운지 머뭇머뭇하니까,
[어서 젖을 물리렴!]
하고 시어미니는 그래도 귀한 손주새끼를 넘겨다본다.
어린애는 젖을 물자 눈을 감아버린다.
[잠이 와서 그러는구나.]
[새벽같이 깨어서 바스락거리니까요...]
고식도 더 말할 게 없는 사람처럼 다시는 입을 아니 벌렸다. 이 방(건넌방)의 아이 보는 계집애년은 세 식구가 잠잠히 앉았는 것을 보고 심심해서 스르르 마루로 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시어머니는 말을 꺼낸다.
[이 추위에 얼마나 고생이냐? 손등에 얼음이 들었구나!]
하며 시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앉은 며느리의 새빨간 두 손을 바라보고 눈을 찌푸렸다.
[무어 그저 그렇지요.]
며느리는 예사롭게 대답을 하며 싱끗 웃었다.
[안방에서는 여전히 쓸어맡기고 모른 척하니?]
[그러믄요!]
하고 어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다정한 말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밤낮 그 아이 하나로 온종일 헤어나지를 못하고 방문 밖이나 나오시나요.]
하고 하소연을 한다.
[계집애년두!]
[그럼요. 버릇을 애초에 잘못 가르치셨으니 까요.]
[행랑것은 새로 들어왔다더니 어떠냐?]
[밥이나 짓지요마는 온 지 며칠 안 된 것이 능글능글하게 엉너리만 치고 안방에만 들락날락거리고 가관이죠.]
[지시는 누가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사랑에서 데리고 들어오셔서 오늘부터 두게 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사랑 손님이 지시한 것이지요.]
[어쨌든 그래서 안 됐구나.]
[무어요?]
[아니, 글쎄 말이다. 안방에만 긴한 듯이 달라붙어 버리면 어지중간에 너만 괴롭잖겠니?]
[......]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동정에 감격해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콧등을 훌쩍 들이마신다.
[어리다고 하속배라도 넘볼 것이요 윗사람이라고 그 모양이니... 네 고생도 다안다. 내가 너희들만 데기로 있다면야 낸들 무슨 걱정이 되고 불평이 있겠니! 그것두 모두 내 팔자소관이니까.]
시어머니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이 부인은 야소교인이 아닌지라 '그것두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 하지 않고 내 팔자소관이라고 한다.
덕기는 더 듣고 앉았기가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모친 앞이라 참아버렸다. 덕기는 사랑으로 나오면서 혼자 한숨을 쉬었다. 집안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고 싶었다.
사랑 댓돌 위에는 고무신 경제화가 네댓 켤레 놓여 있다. 할아버지의 그 쌀쌀한 규모로 사랑에도 60먹은 지 주사 한 사람 외에는 군식구를 두지 않건마는 그래도 놀 데 없고 먹을 것 없는 노인들은 모여드는 것이었다. 덕기는 제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지금 안에서 듣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지체 보아서 한다고 할아버지가 야단야단치고 얻어 맡긴 아내는 또 그것도 처음에는 좋다가 일본 갈 때쯤은 싫증도 났던 아내이건마는 시서모 앞에서 남편도 없는 동안에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 가엾기도 하였다.
사실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구식 가정에서 자랐기에 이 속에서 배겨 있지 요새의 신여성 같으면 야 풍파가 나도 몇 번 났을지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신지식 없다고 싫어하던 것이 이제는 도리어 잘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어느덧 한잠 푹 들어버렸다.
[…….덕기도 제사까지 지내고 가라고 하였다...]
덕기는 분명히 조부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법하다. 꿈이 아니었던가 하며 소스라쳐 깨어 눈을 떠보니 머리맡 창에 볕이 쨍쨍히 비친 것이 어느덧 저녁때가 된 것 같다. 벌써 새로 3시가 넘었다. 아침 먹고 나오는 길로 따뜻한 데 누웠으려니까 잠이 폭폭 왔던 것이다. 어쨌든 머리를 쳐드니, 작취가 이제야 깨인 듯이 거뜬하고 몸도 풀린 것 같다.
[네 처두 묵으라고 하였다만 모레는 너두 들를 테냐? 들르면 무얼 하느냐마는...]
조부의 못마땅해 하는-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