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 임정자
우리는 별일 없으면 등산을 한다. 최근에 벼랑 위에 암자가 있는 해남 도솔암에 갔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처음부터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쉰이 넘은 이후 인듯하다. 아이들 어릴 때 등산 가자하면 자기는 산을 많이 타는 관측병으로 군 생활을 해서 산을 향해 오줌도 싸지 않겠다던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등산은 계속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멋진 풍경이 눈앞에 보이면 환호성이 터지고 가던 길을 멈추어 머물게 한다. 달마산 도솔암에서도 그랬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눈길을 끌었다. 그 틈 사이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있는 걸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때가 되면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이치에 입이 떡 벌어지고 의미를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견뎌 왔고 무엇을 꿈꾸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시들한 식물에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나듯 산에서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산이 좋다.
남편은 근래 들어 휴일이면 어디 산을 갈까 내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늘 선택은 남편이고 나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우리의 걸음걸이는 다정하지 않았다. 앞서 걷는 남편의 숨소리는 조용했다. 평소 테니스로 단련된 운동신경으로 걸음은 빨랐다. 나는 일정한 보폭으로 계속 걸었다. 애써 그를 따라잡으려 하지 않았다. 내 호흡에 집중했다. 그는 앞만 보고 걸었다. 앞서 걷다가 멀찍이 서서 나를 기다리다가 가까이 가면 베낭에서 물을 꺼내 주고 휭하니 가버렸다. 산은 질주하는 곳이 아닌데.
어느 해 이른 가을, 태백산에 올랐다. 막 단풍이 들 무렵이라 풍경이 빼어나지는 않았다. 비교적 완만해 지루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장엄한 맛이 느껴지는 산이었다. 날씨도 흐려 묵직한 산들이 겹겹이 쌓여 수묵화처럼 어두운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었다. 태백산맥의 최고봉인 장군봉까지 1,500m가 넘는 높이지만 가파르고 경사진 곳이 없어 둘레길 걷는 듯했다.
그날 따라 남편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집에 오면 회사에 있었던 일이나 힘든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기에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있는 줄 몰랐다. 우리의 대화는 늘 나이든 부모님 건강문제나 아이들의 진로 걱정이었다. 그날은 마음에 담아 놓았던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조직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상사와의 관계 등 노후설계까지 아주 많은 말을 했었다.
장군봉까지 오르니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재단이 보였다. 남편은 그곳에 서서 한참을 머물렀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 모습이었다. 다른 산에서는 등산객이 쌓아놓은 돌탑에 작은 돌멩이 하나 얹고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남편의 간절한 기도를 태백산은 들었을까. 그런 남편의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준비해 간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고 서둘러 남편을 불렀다. 라면이 불으면 맛없다는 소리나 해댔다. 그 이후로 남편은 산을 재미있어했다.
나이들어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지쳐있을 때 뒤에서 살짝 등을 밀어주면 가볍게 나아갈 힘이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자 나는 내 등을 밀어주며 산에 오른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마찬가지 힘들게 내려오다 다리가 풀려있을 때, 잠시 멈추었다 다시 걸어야 한다. 나에게 산은 몸과 마음을 잘 지켜내며 내일을 위해 힘차게 살아가는 에너지이다.
요즘 우리는 나지막한 산에 오른다. 남도 바다에 둘러싼 섬 여행이 재미있다. 그곳에 살아 숨 쉬는 야생화, 서로 연결된 능선들, 넓은 바다를 보며 천천히 우리는 걷는다.
첫댓글 함께 걷는 부부! 이야기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너무 좋네요.
캐나다는 잘 다녀오신거죠?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멋지시네요.
쓱 눈으로만 두 문장쯤 읽다가 글이 마음을 건드려 다시 처음부터 꾹꾹 눌러 읽었어요.
산은 질주하는 곳이 아닌데. 그렇죠. 산에서까지 질주해야 할까요? 그래도 부럽네요. 함께는 하잖아요.
태백산 정상 장군봉 천재단에 드린 남편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걸음걸이는 다정하지 않아도
모름지기 '가족의 건강'이었을겁니다!
나이 든 부모님에서 부보님 오타 있습니다.
미황사 경내에 사철 흐르는 감로수 물 맛 좋은데 마셨나요?
해마다 4월이면 해남군청 문화관광과에서 주관하는 달마고도 둘레길 걷기와 미황사에서 출발 땅끝 전망대까지 걷는
땅끝천년옛숲길 걷기 행사 있어요. 등산 초보자들도 충분히 걸을 수 있게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다도해를 품은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수백년된 소사나무와 해송 편백이 장관이죠. 송호리 해수욕장 해변 백사장에 앉아서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더이다.
선생님의 댓글을 보고 제목을 '우리는'으로 바꿨습니다. 피드백 고맙습니다. 오타 수정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언제 한 번 가야지 벼르면서도 여즉 못 가 봤습니다.
아쉽네요.
그것도 나이들면 힘드니 한살이라도 젊을때 부지런히 다니세요. 부부가 같이한다니 부럽네요.
그래서 요즘은 낮은 산, 둘레길 위주로 다닙니다. 걷는 게 좋아요.
저도 함께하는 부부의 시간이 부럽네요.
산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무릎 때문에 힘들어요.
달마고도 길도 좋아요.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걷기를 기원합니다.
중노년의 취미가 같은 사람 부러운 1인입니다.
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요.
한때는 저도 산을 조금 다닌지라 그 마음 알 것 같습니다.
늘 안전산행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