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6.25 전쟁 발발 72주년이며 제 67회 현충일을 맞이하는 해이다. 우리들은 당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우러러 추모하고 그들의 높은 뜻을 기리는 지각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겠다.
6.25 전쟁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4시를 기하여 38선 전 지역에서 기습적으로 도발한 불법남침의 만행이었다. 그 남침 소식이 채 알려지기도 전에 이미 수도 서울은 적군에 점령당하였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그런데 그 지옥의 문턱에서 승전고를 울린 부대가 있었으니, 그 부대는 바로 임부택(林富澤)중령이 지휘하던 춘천지역 육군 제 6사단 제 7연대였다.
이 승전은 개전이후 최초의 전과였으며 공산화를 저지하고 조국 대한민국을 살려낸 국면전환의 구국낭보였다. 그러나 임연대장은 그 큰 전공을 세웠음에도 지금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았음은 큰 유감이지만, 그야말로 청사에 빛나는 참 군인 참 영웅이었기에 현충일을 맞아 그의 승전과 애국적 투혼을 제대로 바르게 기리고자 함이다.
6.25 남침은 소련의 바실리예프 중장이 작성한 선제타격 작전계획으로 2개월 이내에 모든 작전을 끝낸다는 내용이었다. 동,중,서부의 연합전선으로 춘천-홍천지역을 공략한 인민군 제2군단은 개전 당일 춘천 점령, 48시간 이내에 수원지역으로 진출하여 서부전선으로 침공한 제1군단과 상하 협공작전으로 서울지역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섬멸하고, 계속 남진하여 남한을 완전 정복 통일 한다는 작전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을 정복한 인민군 제1군단이 연3일을 기다려도 제2군단이 수원지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3일간이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 기간은 한강 이남으로 후퇴한 국군들의 전열정비 시간이었고, 이후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UN군 참여로 합동 대반격을 시도할 수 있는 대비의 시간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춘천지역으로 남하하던 인민군은 국군 제6사단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오히려 38선으로 도로 패퇴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하였다.
5일간이나 계속된 치열한 전투는 타전선과의 연계선상에서 6월 30일 작전상 후퇴하였지만, 인민군은 이 춘천전투의 실패로 그들의 단기작전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제 7연대 임연대장이 있었다. 임부택(1919-2002)중령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46년 국군경비대 창설요원으로 참여하여 조선국방경비학교 수료 후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0년 1월에는 제 6사단 제7연대장이 되었다. 그는 부임 즉시 정보망을 통하여 춘천 북방의 인민군 제2군단은 북한군 최우수 정예부대이며 기갑연대의 지원까지 받는 막강 화력부대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그 대처방안으로 장병들의 교육훈련과 방어진지 구축에 총력을 경주하였다. 춘천시민들과 학생들의 도움까지 받으며 남침 직전까지 주요 접근로에 진지를 구축하고 토치카 및 유개호 설치, 대전차 및 대인지뢰매설까지 완료하였다.
그의 승전내용은 첫째, 6.25 개전 초기 춘천-홍천 전투에서 적 2개 사단을 6일간이나 방어하는 괴멸적 승리로 수원 진출을 차단. 둘째, 7월 초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 제15사단 48연대를 격파하여 연대 대통령 표창과 전 장병 1계급 특진. 셋째, 낙동강 영천 신령전투에서 최소 희생으로 최대 전과를 올린 후, 북진 최선봉 부대로서 ‘50.10.26일 압록강의 초산에 제1착으로 도착 및 최초 중공군과 교전. 넷째,‘51년 4월 제6사단 부사단장으로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3만 병력과 맞서 사살 2만명, 포로 3천5백명의 전과. 다섯째,‘53년 7월 제 11사단장으로 고성지구 휴전전투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역습하여 현재의 휴전선 확보 등의 혁혁한 전과를 거둔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의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에 늘 당하기만 하던 적들에겐 그는 큰 두려움의 존재였는데,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彭德懷)가 “임부택 연대장을 사로잡거나 제 7연대를 없애버려라, 그것만이 우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름길이다”라고 특별 지시하였던 사실이 전해오기도 한다.
임부택 중령은 분명히 현대판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충무공처럼 오직 애국적 자세로 장병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남침대비에 충실하였으며, 지역사화와도 유대를 강화하여 군관민의 합동작전으로 개전 후 최초의 승전고를 울린 참 군인으로서 1962년 3월 제6군단장(중장)으로 그 소임을 다한 후, 조용히 퇴역한 제2의 이순신장군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임장군의 그 애국적 위훈을 높이 기리며 그의 영령을 애도하고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올립시다.(2022.10.30, 인터넷 검색후 前창원교육장 최낙인님의 글에서 인용)
① 오늘 2022년 10월30일, 내블로그에 올릴 <춘천시 우두산 충렬탑>에 관한 글을 준비하면서 6.25한국전쟁 개전 초기 춘천시 우두벌판 전투에 6사단 7연대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리고 인터넷 검색에서 7연대 연대장이 임부택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시에 前창원교육장 최낙인님의 6.25전쟁의 임부택 중령의 글을 발견하여 여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7연대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군단장 중장까지 진급되고 전역하신 분이다.
②. 6.25 한국전쟁 종전 후 군인으로써 존경 받는 인물로는 이종찬 국방부장관, 백선엽 대장, 김종오 대장, 한신 대장, 채명신 중장, 이병형 중장 등이 계시다. 그들은 청렴결백, 강직했고 부패하지 않았고 부하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부대 지휘를 잘해서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