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슬프지 않았다 / 최화경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부르는 <페일 블루 아이즈>란 노래를 들어보면 탬버린이란 악기가 얼마나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지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는 탬버린은 노래방에서 흥이나 돋우는 시끄러운 악기라는 것 정도였다. 사실 노래 못하는 내가 가장 잘 흔드는 악기이기도 하다. ‘찰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그 명랑한 악기가 그렇게 슬픈 음을 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미세한 떨림 같기도 한 금속성의 소리가 노래 전편에 끊임없이 들리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건 노래가 아니라 그냥 슬픔 덩어리다. 영화 <접속>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난 오랫동안 이 탬버린 소리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모든 소음이 멎은 늦은 밤 오디오에서 반짝이는 불빛에 의지한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이 노래를 듣곤 했는데, 노래 한 곡 전체가 슬픔이 되어 가슴에 다 녹아드는 듯한 탬버린 소리를 들으며 목이 메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그 탬버린 소리를 들었다. 영랑생가에서였다. 부끄럽게도 난 영랑에 대해서 많은 걸 알지 못한다. 그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시를 썼다는 것밖에는…. 영랑생가를 둘러보는 내 귓가에 탬버린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내내 슬펐다. 잎도 꽃도 다 져버려 겨울나무처럼 헐벗은 모란도 슬펐고, 지금의 내 나이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슬펐다. 그 사람이 지금 이곳에 없기 때문인가? 생가 답사는 언제나 쓸쓸하다 영랑의 시를 한 편도 기억할 수 없는 답답함을 억누르며 시비 앞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다가 그의 등을 껴안듯 돌을 안아 봤다. 온기 없는 돌의 차가움에 그가 없음을, 아니 그가 아님을 다시 느끼며 허전했다. 이질감을 주며 미아처럼 서 있던 키 큰 종려나무가 우울해 보였던 건 내 안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다산 기념관에서 영랑의 시집 몇 권을 샀다. 그를 만난 듯했다. 다산 초당으로 가는 숲속 어딘가에서 또다시 그 탬버린 소리가 들려왔다. 92개 돌계단을 오르면서 다산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져 힘이란 힘이 모두 빠졌다. 운동 부족과 시집의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버거움의 정도가 몸보다 가슴 쪽에서 더 느껴졌다. 천일각에 올라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니 탁 트인 시원함도 잠깐, 이곳에서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 형 약전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던 다산의 사무친 외로움과 그리움이 내 것인 양 아파왔다. 허청허청 산을 내려오면서 난 줄곧 생각했다. 모든 분야에 총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이 훌륭한 실학자이기 이전에, 늙지 않은 나이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참담함으로 온전하기나 했을까. 18년을 견디다 보면 체념보다 분노가 더 많지 않았을까. 왜, 내겐 이다지도 다산의 고통만 보이는 걸까. 다산이 수맥을 잡아 만들었다는 약천에서 고인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비애가 다소 사라진 듯하더니, 두충나무 숲을 지나오는데 울컥 설움 덩이 같은 게 다시 목에 걸린다.
이것은 2003년 가을 영랑 생가와 다산 초당에 다녀와서 쓴 수필의 일부다. 무슨 까닭인지 그날 내내 슬펐고 그 후로 지독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이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기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슬펐던 게 가을 탓이 아니었나 싶다.
오월 중순, 16년 만에 영랑 생가에 다시 가게 됐다. 그날, 영랑 생가에서는 슬프진 않았다. 그리고 예전의 고즈넉함과 아련함도 없었다. 더구나 빗속에서 생가를 둘러봤음에도 우울함이나 먹먹함은 더욱 느끼지 못했다. 새로 조성된 모란 공원은 너무 밝고 화사해서 모든 게 부풀어 보이며 다소 과장돼 보이기까지 했다. 온실로 가는 길가에 붉게 피었던 작약이 너무 처연해서 오히려 꽃이 서러웠다.
백련사에서 다산과 초의 선사를 잠깐 생각하며 비에 젖은 동백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차의 동산이란 호를 지었을 정도로 차를 좋아했던 다산茶山과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 선사의 만남은 어쩌면 당연한 인연인지도 모르겠다. 초의 선사에게 그해 처음 내린 봄비로 먹을 갈아 편지를 써 보내 차를 청했던 추사도 백련사에서 만든 차를 마셨을 게 분명했다.
다산은 아내의 여섯 폭 치마 조각 위에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당부를 적었다. 그리고 매화와 새를 그린 <매조도>를 혼인하는 딸에게 주었다. 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다. 다산박물관에서 하피첩을 바라보며 그 옛날 사람들의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모든 게 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역시 사랑인 듯했다. 다산 부부의 사랑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간절함으로 가슴 절절했다.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16년 전 다산의 슬픔만 보여 고통스럽던 가슴을 치유하는 묘약인 듯 무거움이 사라졌다. 이번 강진에 다녀와서 내가 자주 듣는 노래는 <페일 블루 아이즈>가 아니라 ‘누룽지 데이’가 부른 <하피첩 송>이다.
[최화경] 수필가. 2003년『좋은문학』등단.
전북문협 수필분과위원장, 전북수필 부회장, 행촌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문협, 전북문협, 전북수필, 행촌수필, 영호남수필
* 한국수필가상, 대한민국문학예술상 대상, 올해의 수필가상, 전북수필문학상, 원종린수필문학상, 행촌수필문학상
* 『음악없이 춤추기』,『달을 마시다』,『낮술환영』, 『그날, 슬프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 최 수필가의 네 번째 수필집 『그날, 슬프지 않았다』를 받고, 곧바로 책의 제목인 이 수필 워드 작업을 했습니다.
전북의 수필가 중에서 가장 수필적인 수필을 쓰는, 감동을 받고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수필 가운데 최 수필가의 글이 단연 우위라고 생각합니다.
산문은 쌀로 지은 밥, 시는 쌀로 지은 술이라는 청나라 문인의 비유처럼, 수필 전면에서 그의 존재를 느낍니다. 경험을 밑바탕으로 한 글에는 그의 사유와 다양한 문화 체험이 격조 있게 융합되어 특유한 색깔을 이룹니다.
<페일 블루 아이즈> 음악을 반복 재생해 들으니 가을에 어울리는 탬버린 소리의 처연함이 절절하고 깊게 다가오네요.
영랑생가와 다산초당, 탬버린의 시린 외로움과 슬픔의 기억. 다산의 '하피첩'을 통해 느낍니다, 사랑의 힘은 모든 슬픔을 잠재우는 묘약임을.
첫댓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에 내내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