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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글을 올리기는 오래간만입니다-_-;;
에 또;; 뭐;;; 엣찌씨도 닭킬러님도 애란비공도 다들 글을 올리시는데
이렇게 있다가 존재감이 사라질까봐;; 아니 차마 양심에 찔려서 다시 글을 끄적거립니다.
하여튼 좀 이쁘게 봐주시면 굽신굽신굽신;;;
<오호 통제라. 게으름이 병이니 무슨 변명을 하리오. 그저 굽신거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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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 그게 뭔데?>
1584년 율곡 이이의 죽음. 그리고 그 뒤로 일어나는 복잡미묘한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조 초기의 붕당정치에 대해서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새퀴 전쟁 얘기한다더니 정치 얘기하네 아무래도 쳐 돈듯 ㅋㅋ 존내 잼없어 ㅋㅋㅋ]하면서 뒤로가기를 누르려는 독자제헌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지만 제발 감기걸려서 훌쩍 거리며 키보드를 눌러대는 필자를 불쌍히 여겨 한번만 참으시라 굽신굽신~
솔직히 조선의 초기 붕당정치에 대해 제대로 말하자면 대학 졸업 논문이 서너개는 나오겠지만 본인이 그런짓을 할만한 능력도 안되거니와 붕댱뎡티가 오늘날에 달라 상식과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뎐챠로 어린 독자들이 니르고자 할 베 이셔도 그 뜻을 펴디 못호노미 하니라 내 이를 어엿삐 여겨 한국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대강 철저히 설명할테니 이번에도 저 색히 그냥 그런갑다 하시라.
<붕당정치 다 설명했다가는 너거 독자제헌 골 아파서 자빠진다능>
독자제헌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시다시피 조선 전기는 [훈구 VS 사림]의 구도였다. 조선의 개국공신들의 후신인 훈구 세력들이 중앙 정권을 잡고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림들이 훈구 실세들한테 개기다 조낸 쳐발려 가면서 인해전술로 결국 명종조에 마지막 척신인 윤원형 끌어내림으로 조선 정치계에서 사림이 킹왕짱 쳐 먹게 된다. (사관은 논한다. 본디 사림의 뿌리는 조선 개국에 저항하던 고려의 사대부 들이고 이들이 낙향하여 성리학 사상을 촉촉히♡ 머금은 지방세력을 길러낸것이 사림이다. 한명회 같은 주류 훈구권신들, 연산군과 중종같은 임금들, 김안로와 윤원형 같은 척신들에게 수없이 쳐 발려가며 - 1g 유식한 말로 사화라고 한다- 사약 원샷, 몸통과 목의 이별식 -대역죄 발동시 팔다리는 옵션-, 엉덩이 스팽킹(..)과 칼이라는 구속물을 착용한체 귀양가는 능욕플레이(...)등을 이겨내고 후진을 양성하고 또 양성했으며. 이들이 결국 막장테크를 탄 훈구세력을 때려잡기 이르렀으니 실로 인해전술이라는 표현 외에 마땅한 표현이 없을것이다.)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아니;; 유학의 이상을 위해! No One Step back!!!>
뭐 사람 사는 동네 어디나 당연한 수순이지만 킹왕짱 쳐먹으면 자기들끼리 또 파벌을 지어 갈라지기 마련이라. 사림들 사이에선 남명 조식, 퇴계 이황, 우계 성혼, 화담 서경덕 같은 성리학 학풍으로 구분되는 학술적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퇴계 이황 : 만물의 근원은 이(理)셈 ㅋㅋ 우왕 ㅋ 굳ㅋ
화담 서경덕 : 아놔 이황림하 만물의 근원은 기(氣)래두요. 이빠즐~
퇴계 이황 : 그리고 사단(四端)이 킹왕짱이라능..
고봉 기대승 : 님하 자제효 왜 칠정(七情)은 무시하나여. 요즘 사단빠들 정신줄 놓은듯.
남명 조식 : 요런 꼬꼬마들. 횽이 유학겔서 찌질대지말고 알바라도 뛰어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했지?
사실 이때만 해도 꽤나 건전한 축의 학술 논쟁이었다. 이기설이니 오행설, 사단칠정 논쟁 등등 빈약한 본인의 머리로는 아무리 냠냠 씹어보고 골을 싸고 고민해봐도 이해가 안가는 주제들이지만 동로마 살람들이 성상숭배와 삼위일체론, 발효된 빵을 미사때 쓰느냐 안 쓰느냐 등으로 머리채 쥐어잡고 싸운것과 같은 맥락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에겐 별 의미없고 모두 소모적으로 보이는 일들이지만 당시 좀 배웠다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였던거다. 그리고 최소한 서로 누가 더 이빨이 쎈가로 아웅다웅 했을지언정 반대파에 대한 피의 보복은 없었잖은가?
붕당정치가 맛이 가는 조짐을 본격적으로 보인것은 역시나 밥그릇 싸움. 관직 싸움이었다. 이조정랑이라는 알짜배기 자리를 놓고 사림 세력은 결정적으로 동서로 갈라져 버렸다. (사관은 논한다 이조정랑은 정 5품 정도의 중급공무원에 불과했지만 문관직에 대한 추천권과 동의권을 가지고있는 특별한 직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조정랑은 임기를 마친후 자신의 후임을 '추천'할 권리가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당연히 임기가 다한 이조정랑은 자기편을 후임으로 추천하게 되고 그 밥그릇 싸움 와중에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김효원 : 이번에 이조정랑 자리는 과거에 장원급제 해본 본좌가 먹겠다능. 불만 있느냐능.
심의겸 : 아놔. 효원이 너 이 새퀴 윤원형 애널썩힝 하던 놈이지. 개념은 열두시로 정찰보냈냐?
김효원 : 그러는 님은 명종림하랑 처남매부 먹지 않았삼? 님 윤원형 2호? ㄲㄲㄲ
심의겸 : . . . . . 이 새퀴가 . . . . -_-^ (부글부글)
김효원 : 아 글거 내 후임말인데요. 심충겸? 이거 뭐하던 듣보잡임? 전 이발 츄천염.
심의겸 : 내 동생이다 시발로마!
김효원 : 어익후 그레쎄요. ㅋㅋ 제가 잘 몰라쎄요 ㅈㅅㅈㅅ 근대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지 ㅋㅋㅋ
<후 . . . 쓰다보니 막장이네 그려 . . 에라 나도 모르겠다 . . . >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정적 변수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선조였다.
중종~선조에 이르는 왕위계승에 대해 콩이야 팥이야 풀어내자면 이 또한 논문거리지만 간단히 얘기해서 하성군(선조)는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루 아침에 킹왕짱 먹어버린 어이 없는 경우가 되겠다. 뭔 얘기냐고? 관대한 본인이 밑에 그림판으로 대강 철저히 찌끄려 놨다. 대충 함 보시라.
<열심히 그리다 보니 넘 커졌네 ㅅㅂ.. 클릭해서 봐주시면 감사~ 굽신굽신~>
글타. 조직도(?)를 대충 훓어 보셧으니 어느 정도 머리 회전 빠른 독자는 눈치 까셨겠지만 원래 선조의 왕위계승 서열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7남중 막내인데다가 하성군 본인도 위로 형이 2명이나 더 있는 막둥이니 이건 뭐 넘사벽 수준이다.
평상시 같으면 비파나 뜯고 술이나 마시고 시나 쓰면서 조용히 인생을 죽이던지 아니면 재수없이 역모에 걸려 녹~녹~ 녹킹온 헤븐즈 도어~♬ 해버리던지 하는게 보통이지만 묘하게도 선조가 데스노트를 주웠는지 왕위계승자들이 사조성을 봤는지는 몰라도 경쟁자들이 하나 같이 이런저런 이유로 캑다이 하시거나 역모에 몰려서 뼈와 살이 분리되거나 왕실 호적에서 이름이 파여 버렸다.
<설마 이런건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1567년 명종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어영버영 왕위에 올라버린 선조. 당연히 정통성이 떨어지니 왕권도 떨어지는것은 당연했다.
문) 신하들은 강력하고 정통성은 떨어질때 왕권강화를 위해 왕이 해야하는 일은?
a) 신하들을 역모로 엮어서 죄다 삶아 죽인다.
b) 팥고물을 나눠주고 같이 친구 먹는다.
c) 새로운 세력을 키워 구세력을 견제한다.
d) 신하들의 세력을 적당히 쪼개서 자신에게 충성경쟁을 하게 한다.
e) 일본을 공격한다
선조가 고른 답은 d)였다. 정통성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덜커덕 왕이 되버린 선조였지만 정치감각 하나는 정말 뛰어났다.(사관은 논한다. 즉위기간 내내 갖은 삽질과 말 바꾸기, 딴청 부리기, 도망질하기, 일선장수 쳐 죽이기, 미성년자와 원조교제하기, 전처 자식 박대하기 . . 쓰다보니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는군하 . . . 니가 무슨 스탈린이냐? . . . 하여튼 기타등등 잡쥘알을 하는 선조는 원조 국害의원, 조선왕조 최악의 왕 가운데 하나로 여러 논객들에게 까이기도 하지만 실로 정치감각 하나만큼은 실로 교묘한 왕이었다. 물론 그 뛰어난 정치감각을 전쟁이든 뭐든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보신과 왕권강화에만 쓰느라 위에 언급한 천인공노할 삽질들을 남발하며 나라를 말아먹다 시피 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사실 선조가 가로세로 대각선 재보고 통빡을 굴려보니 상황이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이거 은근히 괜찮은 시츄에이숀인데? 삼촌(명종)이 왕 잡았을때 설쳐대던 외척과 권신들은 사림이 다 쳐 발라 대항세력은 변변치 않은데 사림이 한덩어리로 꽁꽁 뭉쳐 있었어봐. 대신들도 사림, 대간들도 사림. ㅅㅂ. 그러면 자나깨나 잔소리에 난 완전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 였을테고 사림들은 서로 짜고서는 지들끼리 하고 싶은거 다 했을꺼고 이뭐병여병추 임금은 식고자라가 됬을꺼라규. @#$%#@$%#$ %#$%*^%^$%^!!! 하여튼 재들 패거리 지어서 티격태격하는데 이용가치 있네ㅋㅋ 우왕ㅋ 굳ㅋ]
<선조의 눈에는 아마 신하들이 이렇게 보였을꺼다>
그렇다 선조는 즉위후 분열을 조장하고 때로는 방관하며 동인과 서인간의 교묘한 줄타기를 통해 왕권의 기반을 구축해갔다. 그리고 율곡이 죽기 전 즈음에는 우세한 동인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서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임금이 율곡을 필두로한 서인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 주었는지 기록을 하나만 디비보자.
- 양사가 이이가 군정을 보고하지 않고 행한 점 등을 들어 파직을 청하다.
선조실록 16년(1583년) 6월 19일의 기록이다. 원문을 그래도 옮기자면 꽤 길다. 언제나 그랬듯이 관대하신 무장공비 본인이 너거 독자제헌들을 위해 꼬리띠고 머리띠고 고기빼고 국물빼고 액즙만 짜서 설명해주겠다 음화화화화화화화
< 미쳐 돌아가냐? 아주 쳐 돌았구나. 닥치고 진행(아악!) >
이때는 이이가 병조판서에 있을적이다. 갖가지 개혁안을 추진하던 이이는 북방의 군사력을 보강하기 위해 북부지방에 사는 사람중 말을 바치면 군역의 일정 부분을 덜어주는 정책을 세웠다. 그중에 이이가 실수를 하나 했는데 제대로 선조에게 보고를 못한체 먼저 정책을 시행 해버린것이다. 게다가 우연찮게 그즈음에 몸이 안좋아 병조에 들러 일만 보고 승정원(국왕 비서실)에 들르지 못한 일이 생겼는데 동인 위주로 가득하던 양사(사간원과 사헌부) 얼씨구나 좆쿠나 하면서 이이를 까대기 시작한것이었다.
- 군마 육성정책 왜 하필 지금인가!
- 선채결 후재가. 율곡 이이의 정책 결정과정에 문제가 있어.
- 병조에만 들르고 승정원에 들르지 않은것은 상식을 무시한것.
- 율곡 이이 임금의 권위를 깍아내리다.
- 율곡 이이는 나라 망칠 소인배! 나라 팔아먹을 간사한자!
- 자 이제 율곡 이이 까자! 이유? 그딴것 업ㅂ스빈다 ㄳ.
이에 대해 선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선조 : 니들이 뭔 좆중동이냐? 에라이 시밤바야. 그래 까댈게 없어서 겨우 그걸 트집 잡아서 까냐?
심지어 선조는 이이를 탄핵하는데 주동자격인 대사간 송응개, 허봉,박근원등을 유배 보내 버리기까지 한다(유식한 말로 계미삼찬 -癸未三竄 : 계미년에 세사람을 내쫓다- 라고한다) 이어서 이조좌랑 김홍민이 아래와 같이 상소를 올리며 서인계열에대한 연이은 공세를 펼쳤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이 당을 만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당을 만들다. 붕당(朋黨).
역사책에서나 읽어 볼수있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 조선인들에게 붕당의 혐의란 무서운 것이었다. 무리를 짓고 선동한다는 뜻은 곧 반역의 1단계로 취급 되었고 실로 조광조를 필두로 하는 수많은 사림들이 작당(作黨-무리를 지음) 붕선(朋煽-붕당을 선동함)의 혐의로 처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6,70년대의 '용공분자'보다 더 질이 나쁜 단어였던 셈. 우늘날 우리 국어에도 '나쁜 음모나 일을 여럿이 모여 꾸미다'라는 뜻의 [작당하다]라는 단어로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즉 이조좌랑 김홍민은 사실상 [서인 패거리는 붕당을 꾀하는 반역도배]라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린것이다. 이에 대한 선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선조 : 아놔... 김홍민.. 야 히 씨박새퀴야 ...내거 너 그딴 소리나 하라고 월급을 주.... 야 히 씨박..... 그래서 어쩌라... 야 히 씨박... So what?? 에라이 천하의 잡놈들. 이이랑 성혼이 당을 만든다고? 그래 나도 주자의 말을 따라 이이,성혼 패거리에 들어갈꺼니까 니들도 앞으로 나를 이이 성혼 패거리라고 불러라!
이 정도로 임금의 신임을 얻었던 이이였다. 그리고 이토록 선조의 신임을 받아 개혁을 추진하고 갈수록 격화되는 동서당쟁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눈을 감음으로 붕당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중심점을 잃고 흔들리는 서인을 향해 동인의 역공이 시작되었고 이 격한 물살 앞에 우리의 주인공인(....이렇게 출연이 적어서야...주인공 맞나몰라..) 조헌 선생도 휩쓸리게 된것이다.
<붕당정치 막장테크로>
조헌은 그 당시(1584년)에 보은 현감(군수)으로 재직중이었고 업무평가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미 서인계열 인사로 확고히 분류된 그가 동인의 공세를 피하기는 무리였다. [You are fired-넌 해고 됐삼- 집에 가서 바지 벗고 주무셈 ㅋㅋㅋ]이라는 공문이 내려오자 조헌은 아무 말없이 관복을 벗고 근거지인 옥천의 밤티로 돌아가 은거생활을 한다.
은거생활을 하며 조헌은 스스로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학원을 열어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사관은 논한다. 조헌이 밤티에 학원을 열며 내건 간판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후율정사(後栗精舍) 즉 율곡의 뒤를 이어 가르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조헌의 학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수있겠다.) 그리고 이때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은 뒷날 임진년 거병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후율대학 교양필수 과목 - 사람 터트리기 / 지도교수 : 조헌 (틀려!)>
하지만 불같은 성격의 조헌이 이대로 조용히 지낸것만은 아니다. 2년후 1586년 조정에서는 공주목 교수 겸 제독관(..이라고 길게 썼지만 둘다 지방의 유생을 가르치는 교육직이다) 관직을 내려 조헌을 회유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하지만 조헌은 '벼슬 따위'는 즐 까버리고 또 일생일대의 사고를 치기 시작한다.
(사관은 논한다. 입신양명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유학자의 입장에 [공주목 교수 겸 제독관(종6품)]이라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타이틀은 사실상 조헌 생애에 마지막으로 내려진 벼슬이었으며, 1592년 임진년 금산벌에서 전사하는 그날까지 조헌은 백두(白頭) 서생을 면치 못한다. 죽은후에도 제대로 벼슬에 추증되기 전까지 조헌은 그저 '전前 제독관 조헌'이라고 불릴뿐이다. 실로 개인의 영달추구에는 무심한체 소신을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1586년 조헌은 제독관 일도 때려치고 한양으로 성큼성큼 올라와서 만언소를 올린다.
만언소萬言訴. 그게 뭐냐고? 문자 그대로 1만자 짜리 상소라는 뜻인데 그게 진짜 정확히 1만자인지 아닌지는 AGS말기 환자인 본인이 세어볼리가 만무하니 본인이 알배 아니고 당시에 사관이 기록하길
- 아 쉬발 뭐 이리 상소가 기냐. 우리 마누라 잔소리 처럼 끝이 없구나.
하였으니 길긴 죠낸 긴 상소였다. 길고 긴 내용중에 요점을 추려보자면
- 우리 스승님 율곡과 성혼은 킹왕짱이라능.. 아잉♡
- 누가 우리 스승님 까나혀. 듣보잡 동인 새퀴들. 졸라 소인배라능.
- 백성들은 졸라 살기 힘든데 땅투기 부정부패로 재산 모으는 벼슬아치들은 뭔가혀.
- 아 이런 싀발. 전쟁날껀데 우리 이렇게 정신줄 놓고 있으면 안된다능.
이런 긴 상소를 올린 뒤에도 조헌은 계속 서울에 머물며 5차례나 추가로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선조는...
씹었다.... 어지간한 듯보잡이 헛소리 하지 않는 이상 비답이라고 상소에 답글을 내려주는게 보통인데, 하다못해 신경에 거슬리면 처벌이라도 하려 드는게 보통인데 그냥 개무시 때려 버렸다 -_-;
자신의 뜻이 이런식으로 캐-_-무시당하자 조헌은 이번에도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고 이번에는 이산해와 유성룡 같은 동인계열 인사의 구린 부분을 일일이 지적해가며 공격했다. 앞서서도 얘기했지만 당시 정치판은 율곡이 죽은 이후 점차 동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판세였으니 이는 조헌으로서는 정치 생명을 건 상당한 모험이었다.
실제로 남아있는 선조 실록을 뒤적 거려보면 이 당시 조정은 조헌의 강경한 상소로 벌집을 쑤신듯이 들썩거렸다. 1586년 실록의 기록중에는 조헌에 대한 언급이 점점 늘어나고 불충분한 사초지만 기록들을 조합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대저 시비란 모양이 없는 물건이라 사람 마음에 따라 기반을 두고 행사에 나타나므로 한때의 말의 기세를 가지고는 억지로
우열을 정할수 없다. 그런 이유로 구설로 무익한 시비를 다투는것은 스스로를 살피는것만 못하다."
조헌을 비판하던 동인중 하나인 홍문관 부제학 정윤복에게 내린 선조의 대답이다. 간단하게 줄이자면
[넌 뭐 잘났다고 조헌이 까나효. 님하는 쫌 닥버로우 타세요 깝ㄴㄴ]
가 되겠다-_-;;
"님은 하나도 잘못한거 없다능. 조헌이가 정신줄 좀 놓았다능"
조헌이 상소를 통해 강력히 비판했던 사람중 하나인 이조판서 이산해가 사직을 청하자 선조가 만류하며 내린 답변이다. 쉽게 얘기해서 [자기 사람 감싸기]를한 셈인데 이쯤되면 선조의 뺨치고 어르는 재주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_-;;;
그밖에도 조헌의 강경한 상소는 동인계열 사람들인 송응개,송응현,송응교,김홍민,이발등과 무수한 마찰을 빚었고 사간원은 아예 통째로 몰라나와서 "아나 이 개풀뜯어 먹는 소리는 뭔가혀! 조헌의 상소는 졸라 다 개뻥임!"하고 왁왁 거리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조헌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경원시 되며 정치판의 아웃사이더 비스무름한 것이 된다. 엎친대 덮친격으로 선조의 눈길 또한 싸늘해졌다.
(사관은 논한다. 선조의 인사정책은 기본적으로 균형과 견제다.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인재를 부지런히 물갈이 했으며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서 신하들이 자신에게 충성경쟁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선조에게 어떤 상대라도 주눅들지 않고 소신을 펼치는 조헌의 성격은 동인을 결정적으로 제어할 하나의 히든카드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초기에 선조는 어느 정도 조헌을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헌은 좋게 말하자면 강직한, 나쁘게 말하자면 외곬수에 가까운 정철류의 인물이었고 윗사람의 바람에 따라 굽히고 젖히는 능력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조는 조헌이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폭탄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알아 챘을것이고 그렇기에 선조가 조헌을 바라보는 눈길도 점점 싸늘해져 가지 않았을까 하는게 본인의 추측이다. 뭐 아님 말고 ㅋㅋㅋㅋㅋㅋ)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근성가이 조헌은 옥천에 은거하며 끊임없이 상소를 올렸다. 이쯤되면 선조도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몇년후에 선조는 조헌의 '조'자만 들어도 히스테리를 부릴 지경이 되었다. 급기야 이듬해인 1588년에는
- 선조 : 아놔 싀발.... 뭐 이런 꼴통 새퀴가 다 있냐.. 아이고 골이야....
라고 말하며 조헌의 상소를 불태워 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당시에 상소를 불 태운다는 것은 단순히 조헌의 땡깡에 진력이 난 선조의 불만 표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엄청난 의미를 지닌일이었다. 그깟 종이조각 좀 태웠다고 뭐 그리 대단하냐고 뻥카 좀 그만까라고 아우성 치는 독자제헌들의 모습의 선하지만-_-; 조선 특유의 언론정치를 생각해보시라.
제 아무리 궁벽한 마을의 촌로라도 왕에게 상소를 올려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 할 수 있었고, 어지간히 강경한 내용의 상소라도 심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관례이던 조선이었다. 좀 심한 처벌을 내리라 치면 언로를 막을수 있다며 신하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 말리던게 조선의 정치 시스템이었다-_-;;
그러나 이토록 상소에 제너러스하신 조선에도 트라우마가 있었으니 바로 익명의 투서와 벽서였다. 앞서서도 얘기했지만 조선초기 훈구와 외척들이 사림과 투닥투닥 할 적에 이런 벽서와 투서를 핑계로 눈에 거슬리던 사림파들을 싹 다 쳐발라버린 쓰라린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심지어는 역으로 일부러 구실로 삼기위해 조작 할 수도 있는 악성 비방글들은 자칫하면 대규모 숙청의 빌미가 되었기에 그리고 그런 방식의 정치 공작에 사림들이 처절하게 화를 입었기 때문에 투서/벽서등 출처가 불분명한 악성 루머글들은 보이는대로 거두어 읽어보거나 배후를 캐보거나 할 것도 없이 불에 태워 버리는게 보통이었다.
즉 선조는 조헌의 상소를 투서나 벽서처럼 그러니까 [왠 미친놈이 사람 여럿 잡으려고 근거도 없이 헛소리 지껄인 글] 취급을 해버린 셈이다 -.-);; 당연히 이에 탄력받은 동인들은 그런 조헌을 대거 다시 까기 시작했고 우리의 선조는 아예
- 아놔 시밤쾅.... 이 정신줄 놓은 새퀴는 뭐임? 이 새퀴 속셈은 그냥 관심 한번 받아 볼라는거 아냐? 이런 개 찌질이 메저키스트 악플러 새퀴 같으니라고.
라고 말하면서 조헌에게 아이피 차단크리를 먹이셨다-_-;
외눈박이 나라에선 눈깔 두개 있으면 병신이라고. 조헌횽 졸지에 찌질이 악플러가 되셨다. 이쯤되면 벌호우 타는게 보통 이겠지만 우리의 근성가이 조헌횽. 유동 아이피로 계속 접속해서 선조한테 땡깡 부리셨다. 최소한 선조가 보기엔 진짜 찌질 대는거로 보였을꺼다-_-;;
그리고 급기야 이듬해에는 탄핵을 받아 함경도 길주로 유배를 가게된다;;;;
하지만 그해가 다 가기 전에 조헌은 유배지에서 풀려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정여립의 난(기축옥사)
때문이었다. 정여립의 난! 이름부터 유명하지 않은가? 조선사 좀 찝쩍거렸다는 분치고 못 들어본 분 없을것이다. 정여립이라는 워보스가 전주에 짱 박혀서 Waaaaaaaaah!를 하다가 스페이스 마린의 이단심문관 정철의 정화의 불길을 맞고 떡실신 해버린 사건말이다.
<잠깐..... 설명이 뭔가 이상하잖아>
이 사건만큼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된 사건도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ㅅㅂ 더 깊숙히 파고 들어가면 모주 길삼봉의 존재니 정여립이 진짜 반역의도가 있었니 없었느니 조낸 소인배 술주정뱅이 정철이 동인 인사들에 대하여 사적인 원한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정치 보복을 했다느니 하는 해골 복잡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나름 논문감인데다가 본인의 능력이 일천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어짜피 너거 독자제헌들도 설명해줘도 잘 모르잖아? ㅇㅋ?
<아놔 ㅈㅅㅈㅅ 목숨만은 살려주셈;;;;;;>
하여튼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동인의 실명+비열한 습격+급소 가격+둔기특성 스턴발동으로 허리도 못피던 서인들이 비로소 허리를 펴고 질풍크리를 크게 한방날려 동인들을 단체로 끔살하며 역관광 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으 반격을 받아라!! 우와아아아아앙>
이 사건을 계기로 조헌은 그해 말에 유배에서 풀려난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을 계기로 이번에는 동인을 견제하며 서인들에게 힘을 실어 주던 선조였지만 조헌만은 예외였다. 조헌은 선조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힌지 오래였다;;
- 신하들 : 임금님하 조헌 유배 쫑. ㅇㅋ?
- 선조 : 젠장 니들 맘대로 하시던가요.
- 신하들 : 그리고 임금님하 조헌한테 전적(典籍 정 6품. 서류와 도장담당 관리) ㅇㅋ?
- 선조 : 아 씨발 꺼져
그리고 불난집에 부채질이라고 유배지에서 풀려난 조헌은 또 상소를 올린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 임금에 그 신하였다. 잘린팔을 불로 지지고 땅에 문질러 부는 김화백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실로 엄청난 근성이었다. 당연히 선조 또 폭발했다.
-아이놈의저능아새퀴가함경도에서죵내벌벌떨다왔으면똥인지된장인지좀가릴줄알것이지함경도추위에뇌세포가다얼어터진것도아니고아직도똥된장구분을못해서또상소질은하고이질알이건뭐병신도아니고자고일어나면이새퀴상소가책상위에또올라와있으니미치겠네아이고데이고이건뭐환빠도아니고허구언날나의스승님은이렇지않다능우와아아앙거리면서게시판도배질을하니아이피차단크리도안먹히고성질같아서는당장현피떠서모가지를 날려버리고싶지만신하들은또언로가막히니뭐니거품물고반대할테니그럴수도없고지리산호랭이가콱씹어갈놈의미친삼시랑이충언이라면서똘추같은소리만골라서하는데이걸죽여야되살려야되조헌이찌질이악플러새퀴야또개기면마천령고개넘어서함경도땅에또피크닉갈줄알아
......라고 죠낸 화만 내고 말았다.
ㅅㅂ 앞에서 말했잖은가ㅡ,.ㅡ;; 조선은 언론정치하는 나라다. 태종 이방원이나 연산군 정도되는 포스를 풍기면 모를까 임금이 아무리 맘에 안들어서 잡아 무글라꼬 쥐랄을 틀어도 못 잡아 먹는건 못 잡아 먹는거고 못 죽이는건 못 죽이는거다. 우왕 ㅋ 굳 ㅋ
이런 난리를 다시 한번 치른후 유배지에서 풀려난 조헌이 옥천에 다시 은거함으로 상황은 어느정도 소강 상태를 이루는듯 했지만 그 평화로움은 얼마가지 못했다. 불과 1년후인 1591년 선조24년. 승려 겐소를 필두로한 일본의 사신단이 조선에 온것이다.
-조헌 : 아나 뭐 이딴.. 싸가지 없는 새끼들이 다있냐. 또 사람 빡돌게 만드네? 싀발 다 디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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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아놔 하루종일 썼는데 아직 임진왜란 시작도 안했다. ㅇㅈㄴ
첫댓글 큭큭...무장공비님 고생하십니다 ㅎ.....
혹여나 조선시대 당쟁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재미있게- 보시고 싶으신분들은 '조선시대당쟁사'라는 책을 보시와요 ㅇ_ㅇ....이야기처럼 보기 편하게 되있더이다 ㅎ...
조선시대당쟁사 바로 주문 들어갑니다.^^ 만약 잼없으면 님 마이 미워할꺼염 ㅠㅠ
오오 잘 보고 갑니다! 굳굳
잼나네요^^ ㅎㅎ
너무 늦으셨습니다!! 좀 일찍써주시지....암튼 정말 재미있게 보고가요 ^_^
마침 어제 금산전투 1, 2편 옛날글 읽으면서 3편은 언제 올라오나... 했는데 바로 올려주시는군요 >_<//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읽다보니 선조한테 동정심마저 드내요 ㅋㅋㅋ
너무 오랫동안 안 올라와서 2편이 완결인줄 알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연재해 주세요.
잘 보고 갑니다.-_-)b
ㅋㅋ 왜 안올라오나 했소 ㅋㅋ ㅠ.ㅠ 이놈의 AGS는 무장?이나 본인이나 ㅠ.ㅠ; 흑흑 어쨋든 잘읽고 갑니다 ! ㅋㅋ 선조옵하 쉬박 말투가 머리에서 떠나질않아 ㅋㅋ
왜 글은 눈에 안들어오고 왠 사진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
재밌습니다. 귀차니즘에서 얼른 탈출하시고 다음편 써주셈 ^^
오 정말 재밌네요. 책 한권 다시 읽은 것 같은 느낌.
아놔~~ 파벌 패러디 우왕 ㅋ굳ㅋ~~ 역시 센스에 감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