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2일 넷플릭스에 올라올 예정인 뮤지컬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인공을 연기한 스페인 여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53)이 다음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상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난달 지명됐다. 그녀는 이슬람을 비판하는 등의 과거 소셜미디어 포스트들 때문에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에 아랑곳 않고 후보 직을 사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영국 BBC가 3일 전했다.
가스콘은 성전환(트랜스젠더) 배우로는 처음 오스카 연기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새 역사를 썼는데 CNN 인터뷰를 통해 과거 소셜미디어 포스트들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사과하면서도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어 "난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스카 후보에서 물러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젠더를 바꿔 제2의 인생을 사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수장을 그린 이 작품에서 가스콘의 상대 역을 연기한 조 살대나는 여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지명됐다. 모두 13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가장 많은 후보를 배출했다. 하지만 그 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오스카의 다양성 같은 주제들에 대해 언급한 오래 전의 포스트 때문에 입길에 올랐다. 새러 헤이기 기자가 2020년과 2021년에 그녀가 트위터(현재 X)에 올린 포스트들을 발굴(?)해 버라이어티에 폭로 기사를 게재했다.
가스콘은 X 계정을 비활성화하는 한편 포스트들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지난 주 넷플릭스성명을 통해 "처진 이들(marginalised) 공동체에 속한 누군가로서 난 이런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내가 고통을 유발한 이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면서 "내 평생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워왔다. 난 늘 빛이 어둠을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가스콘은 CNN 인터뷰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을지 모르는 모든 이에게 가장 진지한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난 인종주의자도 아니고 이 모든 이들이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믿게 하려고 노력한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또 이번에 발굴된 포스트 몇몇을 "알고 있지" 않다며 이에 따라 스스로를 방어할 기회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또 '에밀리아 페레즈'에 함께 주연한 셀레나 고메즈를 폄하하는 포스트를 올렸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물론 내 것이 아니다. 난 동료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그녀를 언급한 일이 없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역대 비영어 영화로는 가장 많은 후보를 배출했다. 대부분 세트를 멕시코에 세운 프랑스 프로덕션 작품이며 대부분 스페인어로 연기했다. 가스콘은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돼 연기 부문 후보로 처음 지명된 트랜스젠더 배우로 기록된다. 2008년에 엘리엇 페이지가 '주노'로 후보 지명된 적은 있는데 당시는 성을 전환하기 전이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관람한 이들에 따라 견해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멕시코를 비하하는 묘사가 적지 않아 멕시코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스카 투표권자들은 확고하게 지지하는 한 표를 행사했다.
하지만 영화비평가들은 가스콘의 트윗들을 둘러싼 논란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째로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BC 뉴스는 가스콘 대변인들과 넷플릭스에 코멘트를 듣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매체들은 가스콘의 2021년 트윗 "내가 아프리카-한국 축제나 흑인 인권 시위(Black Lives Matter demonstration), 3·8 여성대회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가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과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 대니얼 컬루야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그녀가 윤여정에 대해 뒤늦게 사과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섣부르거나 아전인수가 아닌가 싶다.
BBC는 벌써 '에밀리아 페레즈'를 관람한 이들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와 영국에서만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2월 안에 개봉관에 걸릴 예정인데 메가박스가 올해 아카데미 유력 후보 다섯 작품을 추려 기획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개봉관보다 앞서 감상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비영어권 영화로 오스카 1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엄청난 위업을 쌓았는데 가스콘의 트위터 논란으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지 모르게 됐다. 실제로 가스콘의 여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이 42%로 점쳐졌다가 논란이 불거진 뒤 7%로 급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디지털 리스크 관리 전문가 그레고리 알렌은 이때다 싶어 "트위터 한 줄이 경력 20년을 무너뜨리는 시대"라고 경고했다. 영화평론가 웬디 아이드는 "혁신적인 연기력이 도덕적 결함을 상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업계 전반의 성찰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뒤집으면 도덕적 결함을 드러낸 배우를 연기력만으로 평가해 시상하는 것이 온당한가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