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마태18,12-14)
'길 잃은'에 해당하는 '프라노메논'(planomenon; which is gone astray; that wandered off)의 원형 '플라나오'(planao)는 '길을 잃다'(to go astray), '방황하다'(wander roam abou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실제로 양은 심한 근시이므로, 무리와 조금만 떨어져도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길 잃은' 양도 무리로부터 떨어져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애처롭게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는 은유적으로 '속이다' '유혹하다', '꾀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18장 12절은 자신의 잘못에 의해 길을 잃게 된 행위뿐 아니라,
유혹당하여 진리로부터 벗어나 죄에 빠지게 된 상황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않느냐?'에 해당하는 '우키'(ouchi)는 '아니다'(not)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정어이다.
하지만 본문처럼 의문문에서 사용되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문은 '반드시 그 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두고 찾는다'라는 뜻이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그냥 남겨 둔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되지 않지만,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한 영혼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착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길잃은 양 한 마리일지라도 크나큰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