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계속 찾다가 (읽어보면 상당히 재미가 있다.
필자는 이 중편소설을 한밤에 단숨에 다 읽었다)
"책이 불타는 온도,'451'"을 읽었다
책을 우리가 왜 읽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재학생부] 장지연 (영어교육과 1학년)
여느 때라면 하릴없이 별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채팅으로 주고받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 쉽도록 취대한 간추린 한 줄짜리 공개일기를 미니홈피에 쓰고 있었을 금요일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학교에서 책 읽기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라 유례없는 시간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막연히 책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고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들을 곱씹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어떤 것들에 순위가 밀려 늘 미루게 되는 책 읽기. 이번에는 한번쯤 책 읽기에 우선순위를 매겨 주고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정말이지 가슴을 울리게 하는 멋진 책 한권과 만난다. 언뜻 보기에 별로 감흥 없는 제목에 겉표지도 크게 눈길을 끌지 않아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들 중 하나였다. 늦게 도착한 나는 좁은 선택의 폭에서 이 녀석을 고르게 되었다. ‘화씨 451’이란 책이 불타는 온도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어느 가까운 미래이고, 책 읽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집 안에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 방화수들이 달려와 책을 불사 지른다. 주인공 몬태그는 10년 동안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해 온 어느 방화수이다. 아무도 책을 불태우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으며, 단지 국가의 ‘법’에 따라 죄책감 없이 책을 불사 지르는 광기의 미래 사회이다. 10년 동안 별 생각 없이 책을 태우던 몬태그가 항상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는 어느 소녀를 만나면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소녀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세상을 몸으로 느끼려고 하며, 과거의 책이 있었던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얘기, 알맹이 없는 우스갯소리만 하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이미 정해진 지식들을 깔때기에 넣고 일방적으로 학생들의 머리에 주입시킬 뿐이라서 자신은 그런 공부가 재미없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가정된 미래 사회의 이야기 인가?
나는 몬태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우리가 정말로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지가 얼마나 되었지?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갈수록 이처럼 머리를 환기시키는 신선한 충격들의 연속이었다. 그 광란의 미래 사회는 참 우리의 것과 흡사했으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세 벽면에 설치 된 텔레비전 ‘친척’들과 대화하는 몬태그의 아내, 텔레비전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껄이지만 마치 사람처럼 웃음소리도 내고 맞장구도 칠 줄 안다. 몬태그는 아내와 대화한ㄴ 자기 자신 조차도 TV 전기장치 같다고 느낄 지경이다. 그리고 그녀는 늘 귀마개 라디오를 귀에 꽂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린다. 집에 오자마자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켜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나 혼자 할 일이 없을 때면 귀에 꽂은 엠피쓰리 이어폰을 생각해보라. 그녀의 모습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소녀를 만나 약간의 심경변화를 겪고, 아내를 보며 문득 서글픈 기분을 느끼던 몬태그는 어느 날 결정적으로 책과 함께 분신자살을 하는 어떤 여자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책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되어 책을 훔치게 이른다. 점점 책을 훌륭하게 여기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그는 책의 엄청난 가치를 확인하게 되고, 책을 지키는 사람들의 힘겨운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책을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 사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책은 사람들이 골치 아픈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물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게 마들고, 상반되는 어떤 것에 대해 고뇌하게 한다. 그 속에는 실제로 별 쓸모도 없는 무거운 내용의 철학이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텔레비전 프로 쇼핑이라 즐기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은 사실 죽음을 의미하는 조용함이 아닐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 세상. 겉으로는 화려하고 알록달록 하지만 생명력이라곤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세상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 그러하다고 ‘화씨 451’은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문학가의 강연에서 그가 시인, 소설가에 대해 내린 정의가 떠올랐다. 우리가 만약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친 곳을 치료 할 수가 없어서 죽게 된다고. 이처럼 무감각이라는 건 무서운 것인데, 시인과 소설가는 썩어 가는 세상 속에서 보다 일찍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책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대한 브래드 베리의 진통을 전해 받은 셈이다.
사실 우리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모든 편리한 장비들이 갖추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 하나 모자랄 게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속이 계속 공허한 이유, 무언가 빠져있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런 즐거운 세상 속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지를 이 책은 우리가 책고 멀리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람들과 신나게 떠들고 돌아와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순간 늘 무언가 허무하고 갈증이 나는 건, 바깥세상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질이 떨어지며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짜임새가 있어 책장 하나하나가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며 뚜렷하고 세밀하다. 알맹이가 있는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지 않다.
짤막짤막한 글과 농담 따먹기로 여느 때처럼 보냈더라면 언제나처럼 갈증 나는 기분에 잔뜩 우울했을 금요일 밤에 이렇게 책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그리고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사한다. 언제나 뭔가 즐기지 않거나 일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는 사실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고 잠깐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문장의 의미를 곱씹으며 마음을 울리는 감동의 진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은 현실 속에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여유이며,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흔히들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지 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음으로써 진정한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호젓하게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워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여유야말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와 닿는 상황에서 알맞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책을 읽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위한 것이니 그렇게 대단하게 유세부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이렇게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행사가 주목을 받으며, 사진기가 참가자들을 찍어대는 것은 그만큼 책 읽는 사람이 드문 우리 사회 모습의 반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불사 지르고 머리 아픈 건 생각하지 않으며,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화씨451’속의 사람들과 우리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단순히 쾌락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어 스스로 사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밀고 늘 가벼운 잡담과 오락거리에 집중해 왔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책이었다. 여느 때의 소모적인 금요일 밤이 아닌 여유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금요일 밤을 보냈다. 책을 읽으러 와서 책의 소중함을 더 깨달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