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퍽 괜찮다 외 4편 *2022년 제57회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작
부현철
괜찮다, 괜찮다며
곤돌라가
기웃거리는 달빛을 퍼 나른다
씹던 껌을 뱉고 나면
얼굴이 떨어져 나가도록 우스운 이야기
괜찮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마당을 오래 지킨 나무는 나무를 벗어나
후광을 입고
신의 제단으로 들어선 듯
노래는 뱉어내지 않으면 노래가 아니듯
흔해서 씹다 버리는 사랑쯤이야
괜찮아, 아직은 괜찮은 거다
저녁으로 걸어가는 무게가 등으로 쏟아져
안녕이라고 발차기를 하는 불안
괜찮네, 퍽, 괜찮은 걸
어차피 달은 가질 수 없어
오래 매달릴수록 찰나를 놓쳐버리는 손목
풍선을 불면 채워지는 트렁크처럼
느티나무가 자라 곤돌라를 품을 때까지
괜찮아. 아무렴 괜찮은 거지
퍼 나른 달빛에서 죽은 심장이 쏟아진다고 해도
퍼즐은 퍼즐일 뿐
방금 잡은 손가락 하나
가느다란 연줄에 매달린 기분이란
붙잡았던 손을 놓으면
붉은 열매 한 알이 손바닥에 놓여있다
고양이 발톱은 언제 별에 가 닿았을까
맞지 않는 퍼즐은 지루할 뿐
덥석 깍지를 낀다.
작은 집과 더 작은 집이 서로
매달린 골목으로부터
봄을 견디겠다는 나무들까지
길은 길 안에 갇혀
깍지 낀 손을 흔들며 걸었다.
잡은 손이 청동처럼 깊어진다.
너 없이 나만 데려가는 바람
가장 약한 손가락이 먼저 내미는 약속
어제는 너로부터 흘러왔지만
내가 믿고 싶은 건
매달릴 수 있도록 악력을 키워내는 일
길 끝에 집이 없어도
내가 만든 퍼즐에 너를 끼워 넣는 일
자기성찰
꿈에서도 네모난 방
색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걸어가죠
파도는 뭍으로 오르기 위해 어제의 각질을 깎아내고
절벽은 잠 안에 떨어진 고래를 방류해요
눈의 끄트머리에선
몇 해리를 지나쳤는지 해리 장애가 왔어요
문을 열면 내가 또 내가, 또 내가, 또 내가
희망은 상실이야! 라고 외쳐야
내가 아닌 걸 알게 돼요
뒤를 돌아볼 때마다 언제나 앞이 되고요
한숨의 품은 넓고 넓어서 호흡인지 아닌지
뒤죽박죽 나뉜 입자들이 입안에 가득해요
육지는 왜 동쪽에서 시작되어야 하나요?
알람이 울려야 기침을 시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보세요, 둥글지 않아도 가도 가도 모래인 것은
내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서겠죠
발바닥을 딛고
언제부터 일어설 수 있을까요
눈먼 소식
그녀는 그림을 그리듯 손을 빠르게 움직입니다.
나의 눈동자가 소리를 삼키면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눈동자엔 너무 많은 고백이 살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 그녀가 귀를 열고 사는 기간은 백 일인지, 백만 년인지
행여 내가 가진 손을 그녀가 읽는다면
사랑은 손끝에서 시작될 수도 있겠죠.
소리가 내 손에 와서 부딪치면
허공은 내 말을 기억하지는 않겠죠.
은하수 어느 곳,
적당한 거리에 서 있어도 내 말을 기억하죠.
소리가 닿은 자리엔
들짐승이 지나친 것처럼
주름만 늘어가고
화성이 떨어진 길 건너 배롱나무,
원래 첫눈은 붉은색이었다죠.
붉은 새는 날지 않는다
서쪽으로 아이라인이 번진다
치리릭 틱, 치리리리-
한쪽 발을 치켜세운 왜가리의 목이 더 길어진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리릭 틱, 치리리리-
늪에 빠진 신발 늪이 사랑한 병
태양이 돌고 있다는 건 모두 거짓말
흰 멧새에게도 미안하지 않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구름의 혈관
바람이 핏줄의 현을 튕기는 동안
치리릭 틱, 치리리리-
때로 나무의 경전은 모스 부호로 전송된다
새가 날아간 자리가 노래로 남는 것처럼
치리릭 틱, 치리리리-칙, 치
자를 수 없는 문장으로
붉은 새가 서쪽으로 날고 있다
― 계간 《시와사람》 (2022 / 봄호)
부현철
1970년 제주 출생. 다층문학동인. 2007년 제1회 CJ문학상 동상 수상. 2011년 제21회 제주신인문학상 수상.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