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증
병세
중년을 넘긴 여름부터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더니 여름이 다 갈 무렵이 되자 이제는 온 몸에 기운이 없고 도무지 밀려오는 피로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서는 양기가 부족해서 그러니 보약을 먹어보라고 하는데, 원래가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보약을 먹고 살이 찌지나 않을지 걱정이 돼서 함부로 보약을 먹을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처방
“요즘 피곤해 죽겠는데, 살이 안찌는 보약은 없나요?”
여성들이 한의원을 찾아 으레 하는 질문입니다. 보약은 곧 비만증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방의학의 기본원리는 음양(陰陽) 이론입니다. 보약(補藥)도 크게 보기(補氣)약과 보혈(補血)약으로 구별됩니다. 기(氣)란 에너지의 개념으로 보기약은 신체의 기운을 돋우고 몸을 가볍게 해주는 약입니다. 반대로 혈(血)이란 인체에 필요한 영양물질을 가리키는 대명사로서, 보혈약은 혈액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마른 사람들에게는 살이 찌는 것을 도우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몸살이 잦고, 항시 무기력하며, 매사에 의욕이 없는 사람들은 보기약을 먹어야 체중도 줄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며 원기보충을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보기지제(補氣之劑)가 바로 인삼입니다. “평소 인삼차를 즐겨 마셨더니, 피로도 못느끼고 몸도 한결 좋아졌다”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기약을 장기간 복용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상(四象)이론으로 볼 때, 소음인에게 잘 맞는 인삼을 체질과 병증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습관적으로 복용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약재를 복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 상담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천연약물이라도 민간요법을 너무 과신하거나 부족한 상식으로 잘못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으로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몸이 허약하다고 하면 개소주나 흑염소탕을 우선적으로 떠올립니다.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을 살펴보면 개고기를 첨가하여 한약을 조제한 처방들이 더러 나오기는 합니다. 결국 개소주란 것은 구육탕(狗肉湯)이라는 한방처방의 변형이며, 여기에 들어가는 구육은 감초나 인삼처럼 여러 약재 중에 한가지에 불과한 보조 첨가제인 셈입니다. 즉 구육탕에서 넣은 한약재는 부재(副材)가 아니고 주재(主材)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한약이 빠지면 제대로 약효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한방의 이론을 빌려 설명하자면, 구육은 간양상승지제(肝陽上升之劑) 즉 양기(陽氣)를 보충하는 약인데, 몸을 덥게 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화기가 약한 사람이 구육탕을 먹으면 설사를 할 때가 있고,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몸이 열에 많은 사람이 이 약을 쓰면 고혈압이나 중풍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고칼로리로 인한 비만증의 위험성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흑염소탕도 구육탕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구육탕이나 흑염소탕이 필요한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보약은 고칼로리 영양분을 체내에 넣어주는 약이 아니라 스스로 먹는 음식물이 최대한 소화흡수되어 에너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본인 스스로 자생력이 생기므로 약을 다 먹고난 후에도 그 효력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환절기만 되면 날씨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모두 신체 적응력이 약한 것이 원인입니다. 이런 증상들이 검사상 이상증세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방치해선 안됩니다.
한의학적 이론상 음식물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물을 다섯 가지 맛으로 구분하는데,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을 일컬어 오미(五味)라고 합니다. 그중 신맛을 내는 음식물들은 수렴(收斂)작용이 강하므로, 기를 모아주어 원기부족을 일으키는 계절적 병리 현상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미자처럼 신맛을 내는 약을 깨끗한 물에 우려내어 차처럼 마시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원기가 부족한 경우에는 전통적인 한방 치료법으로 몸 안에 부족한 잔액을 보충해주고 원기 부족상태를 개선해주는 한약을 투여하는데 보통 10일 내지 20일 정도의 복용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방에도 효과가 있으므로 권장할 만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