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LA)코리아타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한인거주지인 중국 선양(심양)의 <서탑거리>에 왔다. 병자호란(1636~1637)때 끌려간 50만 조선 포로들이 서탑을 중심으로 거주하면서 한인집단거주지가 됐다. '아픈 역사의 공간'이다.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한 후 한국인들이 대거 이곳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지금은 조선족 동포, 한국인, 중국인, 북한인이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만나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서탑 뒷길에서 조선족 중학교와 조선족 초등학교(소학교)를 만났다. 좁은 길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초등학교 교문 게시판에 교육목표가 붙여져 있다. “즐거운 동년(童年)의 체험장으로, 탄탄한 인생의 출발점으로”. 교육목표가 즐거움과 탄탄함이라니, 반가웠다. 게시판 아래에는 한복을 입고 상모 돌리는 모습,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운동장 너머 화단에는 무궁화가 심어 있다. 중국에 살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도 고마웠다.
두 학교 모두 교문이 닫혀 있다. '학교 보안관'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학교 보안관 제도는 학생 안전을 위해 많은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은 더 엄격하다. 교문을 드나들 때 다들 카메라를 보고 얼굴인식을 하고 등록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중국의 얼굴인식정보 수집이 사회 곳곳에서 이뤄진다. 숙박이나 관광지 예약할 때도 그러했다. 예전에는 외국인이 학교를 방문할 때는 여권 정보를 적거나 여권을 맡기고 들어가게 했지만 지금은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
랴오닝성(요녕성)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서 반가운 지도를 봤다. 당나라가 다른 나라와 교역한 지도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이 실크로드를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로마까지라고 생각하는데, 이곳 박물관에 있는 지도에는 신라와 일본까지 이어지는 지도를 전시했다. 실크로드학의 석학인 정수일 박사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신라 최치원, 장보고의 생애, 원성왕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 무인상, 신라 유리구슬과 인도네시아의 유리구슬의 동일성, 카자흐스탄 황금인간, 키르키스스탄 황금가면, 신라 황금보검과 금관으로 이어지는 황금 루트, 중앙아시아의 석상과 우리의 벅수, 돌하루방에서 한반도가 오랫동안 육상 실크로드, 해상 실크로드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옛사람들의 국제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점심을 북한 식당에서 먹으려 했다. 얼마 전부터 한국인을 받지 않는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혹여 하는 마음으로 갔다. 입구에서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중국어로 “한국인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표정도 쌀쌀하다. 예전에 중국 연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캄보디아 씨엠립 여행 때 북한 식당에 들러 정갈한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 시작 때는 <반갑습니다>를 듣고, 공연 끝날 때는 <다시 만나요>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혔는데. 최근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이렇게 되었다. 안타까웠다. 예전처럼 북한 식당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공감대를 확장하던 날이 다시 오기를 바랐다.
저녁은 숙소 옆 <신장양꼬치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주인의 아들인 스물한 살 위구르 청년과 말을 나눴다. 타클라마칸 사막 도시 허티엔(호탄)에서 왔단다. 호탄은 강에서 나오는 옥으로 유명하고, 전남 미황사 불상이 호탄에서 왔다는 설화가 있는 우리와도 친근한 도시이다. 기념이라며 500원 동전을 줬더니 호탄의 맥주 한 병을 서비스로 준다. 낮에 북한식당에서 문전박대당한 일이 떠올랐다. 먼 곳에 있는 사람과는 나누며 소통하는데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과는 얼굴을 붉히며 멀어지는 현실이 서글펐다.
어쩌면 한반도 평화, 동북아 평화의 해답은 이곳 중국 선양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병자호란 아픈 역사의 공간을 조선족 동포, 한국인, 중국인, 북한인이 서로 어울리면서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어 간 에너지에서, 서탑 뒷골목에 자리 잡은 조선족 초등학교의 교육목표인 ‘즐거움과 탄탄함’을 한반도와 동북아의 역동성으로 만들어 간다면.
첫댓글 안타까움...
받지않는게 아니라 받을수없어요..라고 말하고싶으셨을지도..
ㅠㅠ
똑딱이님의 안타까움의 표정이 보지 않아도 보여서
저 역시 서운함과 함께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계속 이렇게 지나면 안될텐데 말이죠.
유발 하라리의 <사피언스 – 그래픽 히스토리 2권>에 있는 그림입니다. 역사에는 평화와 폭력이 따로 있었다고 보고 있죠. 유발 하라리는 ‘힘에 의한 평화’란 언어유희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peace n resp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