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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에 분노한 그들이 한동훈 딸엔 조용한 이유는..."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에서 김동춘만큼 다방면에 걸쳐 이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비판하고, 활동한 학자가 있었을까? 역사, 노동 경제, 이념 등에 두루 걸쳐있는 김동춘의 레이더는 광범위하고, 깊은 병증을 찾는 그의 그물은 늘 촘촘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시험능력주의>를 통해 이 사회의 교육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물론 그간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동춘은 이번 책을 통해 한국형 능력주의가 교육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구조적으로 해부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교육의 문제를 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학을 넘나들며 빈틈없이 논증을 전개하는 김동춘의 칼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관련하여 지난 16일 <시험능력주의>(창작과비평사)의 저자 김동춘 교수를 만났다. 우리는 이 학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험능력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
- 그간 과거사, 이념 갈등, 노동과 계급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병폐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셨다. 다만 이번 저작인 <시험능력주의>는 그간 천착했던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느낌인데?
"처음엔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한국의 노동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육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과 교육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언젠가 제대로 다뤄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관련해서 글도 많이 썼었고. 게다가 교사와 교수를 거치면서 학생들을 계속 만나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 문제를 지켜보고, 절실히 공감하기도 했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나 현대사 쪽으로 연구하면서 계속 미뤄졌는데,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이제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동과 교육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예를 든다면?
"2016년에 구의역 김군 참사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학벌이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있고, 이 현실로 인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한국은 아주 특별한 시험사회, 사람을 평가할 때 시험성적 이력을 거의 절대시하는 시험만능주의 사회'라고 하셨는데,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시험만큼 어떤 사람의 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게 아닐까?
"한국의 시험은 이른바 '지필 고사'고, 사람을 점수화, 수치화해서 등급과 랭킹을 매기기 위한 시험이고, 다수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학교 내신, 수능시험이 그렇듯이 4지선다, 5지선다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화된 기준을 제시해야만 승복한다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한 번에, 한 칸에 당락을 좌우하고, 그것이 일생의 운명을 좌우한다. 물론 시험은 어느 나라에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만 다수의 경쟁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이런 시험은 전형적으로 일본, 중국, 한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국가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 시민사회에서의 자체 평가의 능력이 약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것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폐가 있다."
- '시험능력주의의 앞면을 지배체제라 보면, 뒷면은 노동(배제)체제이며, 그 결과는 부정적인 사회병리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사회병리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신다면?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명문대, 좋은 학과가 1차, 고시 합격 같은 것을 2차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시험능력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평생토록 지배한다. 문제는 이 시험이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남긴다는 점이다. 패배자는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승리자는 부당한 지배체제를 갖는다. 사회적인 부정이나 불법이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하면서 부당한 권력과 불법을 계속 유지하는 식이다.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청소년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일탈, 좌절감, 정신적 상처, 자살, 부모들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스트레스, 부모들이 겪는 상처 등등이 우리 국민이 겪는 시험주의 체제의 병리라고 본다.
한편으로 승리자들도 상처가 있다. 더 위에 있는 승리자들에 대한 콤플렉스다. 또 하나는 사람이란 무릇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야 하는데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혹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야말로 온 사회의 병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이런 시험능력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기보다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에 더 분노하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조국 사태 때 그랬고. 같은 맥락으로 보면 한동훈의 딸에게는 또 별다른 분노가 없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보는지?
"우선 조국의 딸에게 분노했던 것은 소위 SKY대학의 학생들이지 지방대 학생들이 아니다. 대학 서열 하위권 대학 학생들은 분노할 힘도 없다. 이게 따지고 보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제로 선언 때(문재인 정부 시절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60개 협력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정규직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한 일-기자 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기득권자들의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다. 공정하지 않은 방법이나, 혹은 시험 보지 않은 아이들과 나눠 먹기 싫다는 의미다. 이런 분노는 모든 청년이 가지는 게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잘나가는, 잘나갈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에게서 나타난다.
한동훈 딸에게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들과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게 상위 1~2%와 0.1%의 차이인 셈이다. 한동훈의 딸은 (아직) 대학을 안 간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기들 세계 밖에 있고, 조국의 딸은 자기들 세계 안에 있다. 이런 문제들도 올라가면 결국 큰 뿌리는 시험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시험능력주의 승리자들이 누리는 특권 줄여야"
- <시험능력주의>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앞면과 뒷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앞면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지점은 "사회적 폐쇄, 지위 폐쇄를 통한 지위 세습"에 관해서였다. 관련해서 좀 설명해 주신다면?
"지위 폐쇄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 학력이나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발로 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들만 특권을 누리려고 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의대 증설 방침이 거론되자 의사협회에서는 "의사 수가 늘어나면 능력없는 의사가 양산될 것"이라고 하고, 판사들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수가 464건에 달할 만큼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판검사 수 확대에 극렬히 반대한다. 이런 방식으로 가면 지배체제는 자꾸만 더 공고해지고 사회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코로나 사태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 공공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한 와중에도 의대생들이 나서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반대하는 촌극이 발생하지 않았나."
- 이번엔 뒷면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전국의 일터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는 노동인권 침해, 중대 재해, 노동 차별,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찍기, 학교에서의 노동 무시 교육이 시험능력주의의 산물"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한국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노동자 권리, 여성의 권리가 낮고, 노동조합의 조직률도 12%로 OECD 국가 중 최하다. 그러면서 중대 재해율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게 과거에는 노동 탄압에 기인한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지금은 왜 그럴까? 이유는 명백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단결과 조직화를 포기하는 측면 때문이다. 학교에서 노동은 피해야 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공부 못하면 노동자 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런 교육을 통해 아이들도 은연중에 받아들인다. 그런 청년들이 노동자가 되면 자기 기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 권리의식도 낮고, 권리의식이 낮으니 노동에 대한 차별이 지속된다.
시험능력주의는 노동 차별을 정당화하고, 좀 거칠게 말하자면 신노예를 양산한다. 시험능력주의에 패배했으니, 공부를 못했으니 라는 이유로 이 모든 위험과 불합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 그렇다면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교육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선 시험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줄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 시험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계층들, 이를테면 변호사나 법관, 의사, 약사, 교수들의 자격 독점을 완화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법원 판사를 반드시 고시 합격자로 제한해야 하나?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오히려 학문적으로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지위의 개방을 통해 좋은 자리에 대한 특권을 완화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우를 높여야 한다. 예컨대 배관공이나 청소노동자 같은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보수를 높이는 방식인데, 이건 또 재벌 체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처럼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로는 절대 바뀔 수 없다.
다른 맥락으로 수직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완화해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 지방 대학에 대한 공공투자 확충 등을 통해 대학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평준화하고, 입학이 아니라 졸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간략하게 말해도 이 정도이니까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다. 절대 하루아침에 안 된다. 지금부터 사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지점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한 세대는 걸릴 거라고 본다."
- 그렇다면 이 사회가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은 있을까?
"어려운데... 우선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의 반수 이상 그렇겠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거의 전부는 아예 이런 주장 자체를 부정한다. 시험 외에 인재 선발의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더 서열화해야 더 우수한 인재들이 나온다고 주장하니까 그 사람들과는 교육개혁이나 사회개혁의 방안에 대해 대화가 어렵다. 특히 50대 이상 한국인들에게 경쟁적 시험은 거의 자연법칙처럼 간주된다. 다른 방법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객관식 시험 외의 온갖 선발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민주당 지지자의 반 정도는 된다고 보시나?
"내가 너무 높게 잡았나?(웃음) 뭐 그래도 1/3은 된다고 본다. 어쨌든 그렇게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정치 세력이 1/3이라도 있다면 관련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권에만 기대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시민사회에서 움직임이 나와야 한다.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학벌 타파 운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SKY대학 학생들은 블라인드 채용도 반대하는 실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지금 이런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가 100중에 5 정도인데 20 정도만 되어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고, 독일이나 유럽 국가들을 봐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이 책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 꼭 시험능력주의가 아니라도 그간 다양한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이야기해왔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상위 1%가 너무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하위 80%가 우리나라에 대해 애착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위 1% 혹은 10% 정도만 어느정도 해피하고, 나머지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다. 10년 넘게 저출산과 자살이 압도적인 세계 1위라는 것만 봐도 이 사회가 얼마나 팍팍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교육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형평성이 필요하다."
https://news.v.daum.net/v/20220623200601134
생지옥은 있을까
기묘한 이야기. 근래 시즌 4가 공개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이다. 이 드라마 속 이야기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상상에 기초해서 전개된다. 하나는 비범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현실 세계’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공간 요소들이 뒤집어져 있는 ‘뒤집힌 세계’다. 건물, 자동차, 자전거, 기타 소품 등 현실 세계에 있는 ‘물건’들은 뒤집힌 세계에도 그대로 있다. 다만 뒤집힌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뒤집힌 세계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수많은 괴물을 조종한다. ‘현실 세계’와 ‘뒤집힌 세계’ 사이에는 몇 개의 문이 있고, 괴물들은 이 문들을 통해 현실 세계로 나와 인간을 납치하곤 한다. 뒤집힌 세계에 들어갔거나 끌려간 인간은 괴물들의 에너지원이 된다.
구 소련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 평행 이론 등 ‘현대적 사유’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이 드라마의 상상을 떠받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세계관이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현실세계’와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를 상상해 왔다. 하나는 천국, 다른 하나는 지옥이다. 내가 보기에, ‘기묘한 이야기’가 그리는 ‘뒤집힌 세계’는 지옥에 대한 현대적 상상의 표현이다. 드라마 속 괴물 데모고르곤은 옛 사람들이 상상했던 악귀 나찰 또는 사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뒤집힌 세계에는 모든 괴물을 지휘하는 염라대왕에 상당하는 괴물도 있다.
물론 지옥의 실재(實在) 여부를 입증할 수는 없다. 그곳은 논증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있는 공간이다. 다만 믿음이든 망상이든 지옥에 대한 생각이 선악(善惡)의 구분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류는 한편으로 자기 또는 타인의 행위를 선악(善惡)으로 구분해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답받지 못하는 선행과 징계받지 않는 악을 목도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생각했다. 착하게 산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보답받는 곳이 천국, 악하게 산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처벌 받는 곳이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지옥은 악한 인간을 끔찍하게 괴롭히는 괴물들과 그들의 수괴(殊怪)가 지배하는 곳이다. 악인들만 모여 있는 곳에 왜 별도의 괴물이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인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상상을 통해 선(善)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문화를 형성, 발전시켜 왔다. 인간의 윤리관과 도덕률, 정의감은 이런 문화를 토대로 형성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의 행위를 직접 강제하는 법률이 되었다. 선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천국을 지상에 구현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숙원(宿願)이었고, 정치의 궁극 목적이었다. 같은 이유로 악이 창궐하는 세상은 ‘생지옥’으로 묘사되었고, 근대 이후의 전체주의는 실제로 세계 도처에 생지옥을 만들었다.
두개의 세계...하나는 조국, 하나는 한동훈
지금 여기,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먼저 하나의 세계.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마자 청문회에 앞서 그를 대상으로 하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의 혐의는 없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의 운영과 관련한 비리 혐의, 사모펀드에 가입하고 그 펀드가 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배후에서 움직인 혐의 등이 제기되었다. 인사 청문회 당일 당시 한 야당 의원은 “부인이 기소되면 사퇴할 거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검찰이 했다. 그의 부인은 피의자 조사 한 번 받지 않은 채 공소시효 마지막날 전대미문의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되었다. 그의 자녀들과 관련해서는 표창장 위조 외에도 학술 논문에 제1저자로 기재된 것, 인턴활동증명서 내용이 허위 또는 과장이라는 것 등의 혐의도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혐의의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100차례에 가까운 압수 수색을 단행했다. 그의 아들에게 인턴활동증명서를 발급한 국회의원은 업무방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4년 징역형이 확정된 그의 부인은 지금 감옥에 있고, 딸의 대학원, 대학 합격은 잇달아 취소되었다. 그의 동생도 감옥에 있다. 설령 그와 그의 가족이 ‘악행(惡行)’을 저질렀다 해도, 현세가 그에게 내린 징벌은 전례 없이 혹독했다. 물론 이것이 현세의 보편적 도덕률과 법의식에 합치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징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녀들이 ‘교수 부부를 부모로 둔 덕에 누린 특별한 혜택’에 대해 거듭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자처(自處)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수시로 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하랄 때마다 사과해도 또 사과하라고 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른바 ‘조국사태’ 때문에 더불어 민주당에 망조가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와 그의 가족은 아무나 짓밟고 침 뱉어도 되는 사회적 천민이 되었다. 그가 이 참혹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세계. 그도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마자 ‘검증’ 대상이 되었다. 그는 표창장 위조, 인턴증면서 허위 발급, 논문 제1저자 기재 등의 혐의로 ‘앞의 그’와 그 부인, 자녀들의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었다. 수사 결과를 두고 보자면 그의 법의식과 도덕적 기준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의 딸은 어린 나이에 벌써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미국 명문대 합격에 성공한 그의 조카들도 마찬가지였다. 논문을 대필했다는 사람, 자기 논문을 표절 당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며칠 전에는 그의 딸에게 봉사 활동 확인 도장을 미리 찍어준 증명서가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다. 아직 오지도 않은 7월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도장이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혐의든, 공식적으로는 수사 이후에야 확정된다. 당연히 수사가 없으면 혐의도 없다.
게다가 ‘두 번째 그’에게 공개 사과하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민 사회 일각에서 ‘첫 번째 그’를 수사했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 ‘두 번째 그'를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있으나, 멀리 퍼지지 않는다. 검찰이 ‘첫 번째 그’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그 집에 음식을 배달하고 나오는 배달원 앞에 떼지어 달려가 “짜장을 먹었냐, 짬뽕을 먹었냐, 한식을 먹었냐”고 묻던 언론인들은 이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그’로 인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정치평론가는 아무도 없다. 그는 사회적 천민이 된 ‘첫 번째 그’와 정반대로 귀족으로 대접받는다. ‘첫 번째 그’가 사는 세계와 ‘두 번째 그’가 사는 세계 중 하나는 ‘뒤집힌 세계’다.
선과 악 나누는 경계 없다면 바로 '생지옥'
물론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렇기 때문에 현세도 둘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둘을 분리해 각각 다른 세계에 배치하는 것은 종교적 신심(信心) 안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윤리와 비윤리, 정의와 불의에 대한 관념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의 세계’는 유지될 수 없다. 공동선(共同善)과 공통의 가치가 없는 세계에서는 절제, 배려, 연민, 자선 같은 것들이 자리를 잃는다. 무엇이 선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는 선행을 할 수 없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만이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도 생지옥이 되는 연유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가 묘사하는 대로, 현세와 ‘뒤집힌 세계’ 사이에 드나들 수 있는 통로만 있어도 현세는 끔찍해진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13
혹자의 사람들은 정치엔 선.악이 없다고들 하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택도 아닌 말이라 생각합니다.
선.악이 없는 정치가 사실이라면 사람이 사는 세상엔 정의가 없어야 하고 선.악도 구분이 없어야 하는 것이죠.
저 개념이 모호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우리가 사는 현재가 썩었다는 소리입니다.
소위 힘가진 넘들만의 세상, 권력이 깡패이고 선한자는 사라져야 하는 세상.
조국이 살았던 세계는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가진 놈
힘센 자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계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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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같지 않은 것들이 배워서 뭐하나
인간 구실이나 제대로 할런지
몇 백년 동안 다져온 도리와 상식을 개나 줘버리는 20대 는 그냥 세상 살지 마시길
SKY영역...개들이 뿌리는 오줌같은 영역표시...
지금의 그 자리들이 저그꺼라는 생각..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