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게 된 까닭
우리 동네에는 고양이가 많아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이 많은데
특히 그런 집에는 고양이들이 많지
할머니들은 착하잖아
나는 아니었어
아기 공룡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였어
우리 집을 그냥 스쳐 가는 고양이한테도
막 심술을 부렸거든
그러다 벌 받은 걸까
어느 날부터 쥐가 안방 벽을 갉아 대는 거야
그것도 꼭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얼마나 절묘한 위치인지 방 안에서
아무리 벽을 두들겨도 쥐한테는 안 들리는 게 분명했어
보름 정도 지났을까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고
쥐가 다닐 만한 곳에는 쥐약도 놔 보고
어찌해 볼 방법이 없어 잠잘 방을 옮겨야 하나
이사까지 가야 하나 고민에 고민이 깊어 갈 때
그 녀석이 나타난 거야 기적적으로
누렇고 퉁퉁한 애였는데 처음 보는 녀석이었지
우리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와서는
마치 나를 아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 다리에 자기 몸을 비비는 거야
울면서 또 울면서
분명 길에서 자란 녀석이 아니었어
사람을 조금도 겁내지 않았어
얼른 참치 통조림을 따서 그릇에 담아 줬지
운명인가, 구세준가 잠시 망설이다가
종이 박스에 헌옷을 깔아
우리 마루 밑에 집도 마련해 주었어
그날로부터 한 달이 흘렀지
우리 집에 오면 녀석을 만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제 집인 양 자연스러워 보일걸
우리가 지어 준 이름은 세주, 성은 구
세주야, 세주야, 구세주! 두세 번 부르면
한번쯤은 쳐다봐 줄지도 몰라
그럼 쥐는 어떻게 됐냐고?
상상에 맡길게
남호섭, 《동시마중》 제83호
카페 게시글
날마다 동시
고양이를 키우게 된 까닭/ 남호섭
문봄
추천 0
조회 67
24.03.05 21:5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