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 순간 20일 리비아 시르테에서 과도정부군에 체포되던 순간의 카다피 전 국가원수. 머리에 총상을 입은 카다피는 생포된 후 곧 사망했다. 사진은 과도정부군 병사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시르테 | AFP연합뉴스
압델 하피즈 고가 과도국가위 대변인도 앞서 “우리는 세계에 카다피가 혁명의 손에 처형됐음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고가 대변인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압제와 독재가 끝났다. 카다피는 자신의
운명을 맞았다”고 덧붙였다.
과도국가위의 압델 마지드 믈레그타는 카다피가 생포될 당시에 입은 부상이 악화하면서 숨졌다면서 카다피는 생포 당시 다리와 머리에 총격을 입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체포 현장에 있던 과도정부군의 한 병사는 카다피가 발각될 당시 구덩이에 숨어 있었으며, 생포 순간 “쏘지 마, 쏘지 마”라고 외쳤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AFP는 또 과도정부군 병사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카다피의 마지막 모습은 카키색 옷을 입고 얼굴과 목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과도국가위는 지브릴의 공식 확인 직전에
미국 정부에 카다피 사망 사실을 전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미 관리가 AP에 밝혔다. 친카다피 TV인 알 리비야는 이날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카다피가 체포됐다는 보도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추종자들이 퍼뜨린 것으로 근거없다”고 주장했다고 AFP가 전했다.
과도정부군은 지난 17일 트리폴리
남부의 카다피 정부군 근거지인 바니 왈리드를 점령한 뒤 시르테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해 이날 시르테를 점령하면서 카다피를 제거했다.
카다피는 지난 8월23일 사흘간에 걸친 과도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자신의 트리폴리 요새인 바브 알 아지지야를 탈출했다. 탈출 후 제3국 망명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카다피는 시르테와 리비아-니제르 국경 인근 사막에서 친위세력을 이끌고 과도정부군에 맞섰다.
카다피는 27세 때인 1969년 9월 육군 대위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 42년 동안 리비아를 통치해왔다. 그는 집권 후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며 독자노선을 걸었으나 올해 초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혁명의 바람을 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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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핏값이 42년 만에 제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권좌에 기대어 손 끝으로 생사를 가르던 독재자는 '쏘지마'란 말을 남기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열강부터 미소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력의 이익에 좌지우지 당했던 아랍에 민주화가 그 싹을 틔울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첫댓글 이제 북한도 저렇게 되면 되는데... 제발 김정일 김정은 여의도 광장에서 끌려댕기면서 두들겨 맞았으면 좋겠넼ㅋㅋ
그럼 나도 한두대 쥐어박아야짘ㅋㅋ
정말 궁금해진다.
카다피의 몰락과 사망은 진정 민주화를 원하는 다수의 리비아 국민들의 열망으로 이룬것인가?
유럽의 이익에 반해서 제거된것인가?
이 시각 이후로 수많은 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민생을 뒤로하고 지옥의 문고리를 돌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뭐...그런식의 해석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도 의문을 가질수가 있을려나요? 카다피의 몰락이 역사의 위대한 발자국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1人...우리 공화국도 시민혁명 크리를 한대 맞아서 어버이 수령께서 끌려내려왔으면 하는 희망이 있는데...
먼나라 이야기만은 아닌듯. 멀지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