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0) 아멘! 바울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의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얻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생명의 부활을 바란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이 어떤 것인가 싶습니다. 혹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말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은 방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세속에 물들어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그런 생각을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그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로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회복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풍요로운 이 세상에서 성도답게 절제하며 살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