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쪼개 팔 땅을 찾고 있던 T기획부동산업체 대표 이모(54)씨. 경기도 여주•이천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를 샅샅이 뒤졌으나 매물 가뭄이 심해 결국 땅을 구하지 못 했다.
그런 이씨에게 최근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을 여주군 G마을 이장이라고 소개한 이 사람은 “아직 중개업소에 내놓지 않은 좋은 땅을 알선해주겠다”며 수수료(전체 매매대금의 2%)를 요구했다.
위축됐던 투자심리가 정부의 규제 완화, 대규모 개발계획 등으로 조금씩 되살아 나고 있는 토지시장에 각종 브로커의 편•탈법 행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토지 브로커란 땅 관련 매물•대출 등을 알선해주고 일정 수수료를 챙기는 업자들을 말한다.
땅을 미끼로 한 탕을 노리는 토지 브로커로는 물건•대출•인허가 브로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브로커들은 각종 편•탈법적 수단을 동원해 배를 불린다는 점에서 합법적인 부동산 편의를 제공하는 정식 부동산컨설팅업체와는 차이가 있다.
참여 정부 출범 이후 토지시장이 침체되면서 한동안 토지 브로커들의 편•탈법 중개 행위가 잠잠했다. 최근 규제 완화 등으로 토지시장에 기대감이 높아진 점을 틈타 브로커들이 일반 투자자나 영세 시행업체 등을 대상으로 다시 극성을 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편•탈법 늘어
물건 브로커란 지주와 매수자 간 땅 거래를 성사시키고 일정한 수수료를 챙기는 일종의 무허가 중개인을 말한다. 자기 동네를 무대로 소규모 땅 매물을 알선해주는 ‘똠방‘ 수준의 브로커도 있지만 각종 법률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수준의 브로커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대규모 골프장이나 아파트 등의 사업부지를 확보한 뒤 그럴 듯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투자자에 접근한다. 그러다가 소위 ‘이빨이 들어간다’고 판단되는 투자자가 나서면 먼저 은행잔고증명이나 매입 의향서 등을 요구한다. 매수 희망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눈치가 보이면 가계약을 치르자며 계약서를 들이 미는 게 그 다음 수순이다.
물건 브로커들이 매매를 성사시키고 챙기는 수수료는 대개 매매대금의 2∼3% 선.
중소 규모 부동산 개발 시행업체의 긴급한 자금사정을 이용해 수수료를 챙기는 대출 브로커도 요즘 부쩍 눈에 띈다.
경기도 평택 지산동에서 아파트사업을 하려던 B업체 정모(38) 사장은 부족한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업부지를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해당 은행은 해당 부지의 담보 가치가 떨어진다며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정상적인 대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아는 사람을 통해 대출 브로커를 소개 받았다. 전직 은행 지점장 출신인 이 브로커는 “실제 150억원인 땅 값을 250억원으로 부풀려 계약서를 작성하면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며 정 사장에게 접근했다.
그는 현재 브로커 제안대로 계약서를 작성한 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P상호저축은행에 대출을 신청하고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대출 성사를 조건으로 이 브로커가 요구한 수수료는 전체 대출금(100억원)의 3% 선.
전문 법률지식으로 무장한 인허가 브로커도 많아
대출 브로커가 시행업체의 긴박한 자금사정을 이용한다면 인허가 브로커는 전문적인 법률 지식, 관련 공무원과의 인맥을 무기로 한다.
전원주택 전문 시행업체인 W사 조모(47)사장은 최근 경기도 용인 Y면에서 B전원주택단지(3차)를 개발하면서 인허가 브로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자연환경보전권역인 Y면의 B전원주택 단지는 부지 면적이 총 7만㎡로 정상적으로 개발허가를 받기 힘든 사업이다.
용인시 규정상 부지 면적이 5000㎡를 초과할 때는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업체는 지난해 10여 차례에 걸쳐 부지를 5000㎡ 이하로 나눠 별다른 문제없이 허가를 받았다.
조씨를 대행해 까다로운 인허가를 풀어준 사람은 처인구청 인근에서 토지 개발 인허가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L씨다. 전직 공무원 출신인 L씨는 관청에 인맥이 풍부하고 관련 법령에 정통해 있다.
전문가들은 토지 개발 등에 브로커를 활용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브로커를 잘 활용하면 사업비 조달이나 인허가 등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브로커들을 잘못 만나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료원:중앙일보 2008.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