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0lEGY9b3eiI (보리고개)
개구쟁이,
해운대 사내아이는 쓰윽 고개를 돌린다 그래 장산봉과 칠성암에 해가 걸린 걸 보면 시간이 된
거야 아침에 봐둔 유엔통 성냥을 주머니에 넣고 헛간에서 낫을 찾다가 그냥 포기한다 그걸 들
고 나섰다간 어머니에게 당장 들켜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살금살금 마당을 가로질러 토담옆
으로 고양이 걸음을 한다 뒷집 양산 아재가 지게를 벗어놓고 대안으로 가는 걸 보면 일을 마치
고 들어온 모양이다 이젠 되었다
저 아재만 안 나오면 오늘 일은 거의 성공이나 마찬가지므로 신작로가 경계선인 밀밭에 당도할
때까지 아이는 쉴 새 없이 집쪽으로 고개를 돌려 살핀다 다행히 어머니도 양산 아재도 아무 기
척이 없다 바람에 물결처럼 하늘거리는 밀밭은 향기로운 풀냄새를 흘린다 참밀은 너무 딱딱해
서 맛이 덜하다 두밭 건너 청밀밭으로 몸을 숨긴 아이는 자기 키보다도 배나 큰 밀허리를 손으
로 움켜잡고 조금 설익어 밀 껍질 부스스한 밀이삭을 골라 찾는다.
너무 익으면,
구어놨을 때 톡톡 터지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저고리를 벗어놓고 그 안에다 수북이 밀싹을 뽑
아 넣는다 어떤 것들은 이삭만 쑥 뽑히는데 어떤 것들은 허리까지 꺾이고 심한 놈들은 뿌리째
뽑혀서 아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저고리 하나 가득 밀이삭을 뽑아 들고 아이는 밀밭을 나와 다시 살금살금 신작로를 가로질러
솔밭 사이로 스며든다 조금 소나무가 뜸한 공터에 밀이삭을 내려놓고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
해 보았지만 마른 소깽이를 찾을 수 없어 아이는 다시 그위 산중턱으로 내닫는다 솔밭에서
솔가 치를 우두득 꺾어서 한아름 안고서 저고리 있는 데로 온 아이는
주머니에서,
사방을 예의 주시하며 통성냥을 꺼내서 탁탁 불을 붙인다 생생한 솔가지가 쉽게 불이 붙을 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성냥을 그어 댄다 거의 반통이나 소모한 후에 겨우한
가치에 불 붙이는 데 성공한 아이는 다른 솔가지를 불붙은 가지 위에 놓고 엎드려 훌훌 입으로
바람을 분다 드디어 성공이다 불은 몇 개의 솔가치에 붙었고 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따
가지고 온 밀이삭을 여러 개씩 모아들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로 들이댄다 돌돌 이삭을 돌리
며 타지 않도록 껍질이 없어질 때까지 잘 구워야 알이 탱탱하니 연하고 집파리에서 잘 빠져나
온다
잘된 놈,
하나를 골라 손바닥 위에 놓고 살살 비빈다 끄름과 남은 밀 껍질은 떨어지고 집파리에서 나온
밀 알갱이는 오독하니 손바닥 위에 가득 모인다 마지막으로 입김을 후루룩 불어서 탄 재만 날
리면 작업 끝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는 밀알을 탁하고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토독토독 밀
알갱이는 압안 가득히 즐거운 소리를 내며 터진다 향긋한 여린 맛이 코끝을 쨍 하니 울린다 캬
햐 두 번째 밀 이삭을 비비던 아이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밀아삭이 휙!하고 살아지는 것과 동
시에 자신의 몸이 허공에 번쩍 들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네 이놈 여이야!
야가 뭐 하는 짖이냐 불 내면 어찌하려고 양산집 아재와 어머니가 눈을 부라리며 옆에 서있다
오들오들 떨고 서있는 아이를 보고 발로 불을 탁탁 끄던 양산집 아재가 소리친다
"뭐 하노 얼른 오줌 안 깔기나"ㅎㅎ
입 가상자리와 코끝에 새까맣게 묻은 끄름을 손으로 닦아주며 어머니는 아이의 궁둥이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여이야~아 얼른 낯 씻고 저녁 먹으라 두 사람의 뒤를 줄레 줄레 따라가며 아이
는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내가 왜 여이야 싸나이 마초 킴ㅎㅎ
김 영이지 푸하하하
~단결~!!
첫댓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보릿고개가
찾아왔지요.덜 여문 보리를 갈아서 죽으로도
쒀먹었고 산나물을 밀가루에 묻혀서 쪄 먹었
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건강식이었습니다.
우린 누구나 소싯적 밀서리를 해 먹던 기억
(記憶)이 있지요 지금에야 농작물 절도죄(竊盜罪)
로 잡혀갈지 모르지만 그 시절은 그냥 재미로
여겼으니까요 기억저편 아련한 옛 추억(追憶)이
머리에 맴돌아 채색되어 오는군요
옟 추억을 소환한 재미난글 잘 보았습니다
밀이삭을 끄실러 손바닥위에 놓고 후후 불어먹던 옟날 간식의 맛은 요즘 아이들은 무슨소린가 하겠죠
벼를 쌀나무라고하던 도시아이들이니까요
밀 이야기가 나오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소설이 생각나네요
옛추억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선배님
고마움을 표합니다
~단결~!
제가 유년기를 마냥 행복하게 천둥벌거숭이 처럼 뛰놀던 제 고향은 공주 산골입니다. ^^
집성촌이어서 촌수가 높은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뻘 되는 또래들을 따라 다니며 글에서 말씀하신 보리싹 구운 것 아님 감자 구운 것을 빙 둘러앉아 입가가 새카매 지도록 나눠 먹었으며 들에서 삐기를 뽑아 먹거나 얕으막하게 울동네를 둘러 싸고있던 산에서 참꽃인 진달래 꽃 그리고 연한 가지나 오이를 따서 먹던 행복 추억이 아지랭이 인양 아련히 떠오릅니다. ^^~
여름 날에는 길을 가다가 갈증이 난다싶으면 누구네 밭인지 모르지만 무우를 쑥 뽑아 입으로 껍질을 벗겨 제게 건네주던 그런 시절이 제게도 분명히 있었드랬습니다. ^^~
그래요 이 밀이삭을 손으로 비벼서 껍질은
입바람으로 후후 불어 날려 버리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밀알갱이를 새까매진 손으로
한입 가득 맛있게 먹다 보면 온통 숯검댕이
얼굴이 되곤 하였지요 그때의 추억 (追憶)속에
묻혀있는 향긋한 내음이 입안을 진동시키지요.
아득한 추억(追憶)담을 함께 해봅니다
넉넉한 글마중에 다시한번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고맙습니다
@수피
감칠 나고 맛깔스럽게 쓴 댓글 읽고서 침을 삼키고 있습니다ㅎ
부부의날에 멋지게 고고렛츠고로요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밀싹 서리 모습을
잼있게 잘 쓰셨네요
도시 태생인 저는
그런 추억은 없지만
암튼 어린시절에 추억은
아름답지요^^
허접스런 글을 이렇게 칭찬을 주시니
그래요 어린시절의 추억은 생각만 해도
푸근하여 어머님 품속과 같지요
풍성한 글마중 고맙습니다
어릴적 소중한 추억이시네요 ㅎ
전 도회지에서만 자라서
이런 추억들이 없네요~
지나고 나니 재미가 있었던 추억은 분명히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외다 ㅎ
글 마중 고맙습니다
저 역시 보리밭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요즘은 자치구에서 주민을 위해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놓더라고요
보리를 구워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옆에서 보는 것 같아 잼 있게 읽어 봤어요.
시골생활이란 늘 얘기책 동화 소설 속의 그 모습밖엔 없는 보리밭의
소중한 추억 많이 터뜨려 주세요 ㅎ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빌면서
늘 건 행하시고요~^^*
고맙습니다
옛날에는 보리밭을 많이 봤는데 지금은 보기가 힘들어요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던 유년시절(幼年時節)
보리밭 생각이 나지요 그 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살가운 댓글 늘 감사를 드립니다
갱상도에선 밀알을 그렇게 서리해서 구워먹나보네요
여기선 매주콩 서리해서 콩튀기 해먹걸랑요
뭣이라 메주콩 마늘 작물 같은 것 서리하다가 걸리면
중범죄로 다스려 곤장도 맞고 정말이여
콩튀기 해머근 그 곳이 어딘데 독립군 텃밭이여 ㅎ
@마초 형! 60년대 이야기지요 어디요즘감히 ㅎㅎ
난 선배 님과 같은 추억이 없어서
글을 읽으며 상상을 해봅니다.
광안리의 청보리밭을 생각하며 선배님의 글을 읽어봅니다
그때의 소년과 지금의 선배님을 비교하면서요 ㅎㅎㅎㅎㅎㅎ
하기사 광안리도 나의 나와바리지 ㅎㅎ
그때 그소년이 추억을 먹고 살다보니
이제는 백발이 되었구먼
건강하시고
어릴적 보리밭 추억에
얽힌 재미난 얘기 잘
보았네요
웃으면서 읽었네요~^^
요즘 아이들 보리를 불에 구워주면
무슨 맛인지 모릅니다 튀밥을 해주거나
뻥튀기로는 해주면 먹을지언정 보리서리
해 먹는 게 나이 먹은 사람들은 고소하거나 구수하다고 할지 모르죠.
그러나 그 맛은 엄밀히 말하면 보리의
미각적 맛은 아니죠 일종의 기억의 맛일 겁니다
휴 그래도 다행입니다 웃으면서 읽었다니 ㅎㅎ
만약 울면서 읽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요 ㅎㅎ
전 보릿고개를 모르는데 가난했어도 힘들었어도 추억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