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것인지 동생이 어른스러운 것인지 가끔은 웃기기도 하지만
내게 남동생은 언제나 오빠같은 존재다. 동생 앞에서는 늘 응석받이가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동생은 경제개념이 없는 나와는 달리 착실히 돈을 모아서
내가 읽고 싶어하던 책을 사서 몰래 놓아두던 아이였고
여고 졸업때에는 근사한 어린왕자 목걸이를 골라 선물해주었던 아이였다.
가끔 내가 고자질을 해도 변명도 잘 하지 않던 아이,
사고로 온 몸을 수술하고 사정상 진통제를 맞지 못하고도
아프다 신음 소리 한 번을 안 내서 의사를 놀라게 하던 아이가 내 남동생이다.
내가 고3 때 동생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는 바람에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겨우 만났고,
내가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아예 떨어져 지낸다.
그 사이에 동생도 대학을 가면서 다른 곳에서 자취를 시작해서
우리는 이제 고향집에 가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한참 예민했던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얼마 없다.
나는 서울에서 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내내 그것을 아쉬워하고 미안해하고 슬퍼했다.
군산에 내려와 있으면서 집에 가끔 내려오는 동생과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이제는 나도 응석받이처럼 기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챙겨주고 싶었는데 또 그러질 못해서 미안하다.
지난 9월 9일은 동생의 생일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주말에 동생을 불러서 조촐한 초대라도 하려고 했지만
내가 열감기로 앓아 눕는 탓에 이번 주일에야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 미안하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는 사이에 나는
내 아쉽고 미안하고 고맙고 슬픈 마음을 담기엔 너무 작은 케이크를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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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견과류 모카 파운드 케이크 (1호 쉬폰틀 1대 분량)
재료 박력분 110g, 버터 110g, 달걀 110g(2개), 설탕 70g, 물엿 1큰술, 베이킹파우더 2.5g, 소금 0.5g,
우유15g+인스턴트커피 1큰술, 깔루아 1작은술, 바닐라오일 1-2방울
필링 견과류 40g, 흑설탕 20g, 코코아가루 2/3작은술
토핑 초코칩 20g, 견과류 20g, 박력분 1작은술,
소보로(녹인버터 20g, 설탕 20g, 아몬드가루 20g, 박력분 20g, 베이킹파우더 1/8작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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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흑설탕과 황설탕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일반 하얀설탕을 사용했는데....
필링에는 되도록 흑설탕이나 황설탕을 사용해주시는게 좋아요.
필링이 들어간 부분만 진한 갈색으로 예쁜 색이 나오고 풍미도 좋아지거든요~^^
전체적인 설탕량은 입맛에 맞게 조절하세요.
전 생일케이크를 굽는 것이라 충분히 달콤하게 구웠어요.
+ 모든 견과류는 전처리 해서 사용하시는게 고소하고 위생적이랍니다.
땅콩, 아몬드, 캐슈넛 등은 마른 팬에 한 번 볶거나 오븐에 살짝 구워 사용하시고...
호두는 끓는물에 데쳐서 물기를 제거한 다음 마른팬에 볶거나 오븐에 살짝 구워 전처리 하시면 됩니다.
+ 깔루아는 향미를 더하기 위해 넣었는데 없으면 생략하셔도 됩니다.
대신 인스턴트 커피를 약간 더 넣어주세요~ ^^
+ 일반 원형틀이나 파운드틀에 구워도 무방합니다.
갖고 있는 원형틀이 18cm 납작한 형태라 모양 살리기가 어려워서 고민하다가
쉬폰틀에 구워봤더니 예쁘더라구요. 저처럼 쉬폰틀에 구우시려면
틀에 녹인 버터를 꼼꼼이 발라서 이형제 역할을 하도록 해주세요~
굽고나서는 뒤집어서 식히지 않아도 됩니다. 쉬폰틀에 구웠지만 파운드케이크니까요..^^
토핑을 만든다. 먼저 소보로 재료를 모두 한 그릇에 담고 포크로 긁어 소보로 형태로 만든 다음...
초코칩과 굵게 다진 견과류, 박력분을 넣어 섞는다.
필링을 만든다. 견과류를 잘게 다지고 코코아가루, 설탕을 넣어 섞는다. (설탕은 흑설탕사용하세요.ㅠ 전 백설탕~)
반죽만들기...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인스턴트 커피를 녹여놓고
상온에 두어 말랑말랑한 버터를 푼 다음 설탕, 소금, 물엿을 나누어 넣어가며 빠르게 저어 크림화 시킨다.
상온에 둔 달걀과 깔루아, 바닐라오일을 나누어 넣어가며 팔이 아프도록 빠르고 힘차게 저어 크림화 시킨다.
(빠르고 힘있게 저으면 사진에 보이는 상태보다 훨씬 더 부푼 크림상태가 되어요.)
체친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가르듯이 섞다가 날가루가 안 보이면 만들어둔 커피우유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틀에 녹인버터를 바르고 반죽을 1/2붓는다.
그 위에 필링을 얹고 나머지 반죽으로 덮은 다음 토핑을 올려 마무리하고...
175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35-40분간 색을 봐가며 굽는다.
유산지로 띠를 둘러주고 리본 하나 묶어주니 멋지진 않아도 어느정도 케이크의 모양새가 갖추어진다.^^;
이렇게.... 조촐한 생일파티를... ^^
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면서
꽤 오랫동안 베이킹을 했지만 동생을 위해 굽는 케이크는 처음이라는 사실이 또 미안했다.
스물네번째 생일 축하해....착한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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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없이 원본 그대로 가져가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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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함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