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簡潔)하게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증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 하느니라」(마6:7).
말은 간단명료하게 해야 한다. 요령부득하게 하는 경우엔 상대가 이해도 못하고 지루해 하기만 한다. 예배 드림에 있어서도 모든 순서를 좀 간결하게 할 수 있어야 되겠다. 예배는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 하나님께서 이해 못하시거나 하시지는 않으시지만 예배는 내 혼자만 드리는 것은 아니다.
같이 드리는 이들에게 지루한 감을 가지게 또 요령 없이 할 때에 예배의 의의조차 상실하게도 된다. 예배 순서부터 간단하면서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건성으로 지난 주보에 글자들만 고쳐 만들고 한다면 생각 없이 하는 일이라. 간결하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순서 한 순서를 닦고 갈아서 익숙해 가지고 교인들 앞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순서미를 꾸면 그 집행이 또 질서 없이 전개된다. 신선도가 있지 못함을 예배 때마다 느끼리라고 본다. 더욱 기도는 내 개인기도야 길든 짧든 관계할 것 없겠으나 공기도에 있어서야 좀 다듬어 가지고 대중 앞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내 기도하는 그 기도가 어떤 기도에 속함을 알고 해야 할 것이다. 부탁을 받은 어떤 조목 기도도 있고, 대중을 대표한 참회기도도 있고, 또 어떤 특수한 문제를 위한 기도회도 있음이라. 그 때마다 해당한 기도 제목을 간결하게 아뢰어 모든 사람들도 공감으로 아멘 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무슨 기도를 하는 것조차도 모르게 기도한다면 중언부언의 기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시간 드릴 기도답게 깊은 준비를 해 가지고 기도 시간에 임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또 같이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공감을 울리게 되어지는지라. 그 중심에서의 아멘이 흘러나온다.
간결하게 하는 일은 실로 거기 따른 준비가 있어야 한다. 준비 없이 간결하게는 되지 아니한다. 준비에 비례하여 더욱 간결함도 더해진다.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에 다른데 시간을 허비한다든지 시간을 길게 끄는 식은 예의로 보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만나며 찾는데 있어 예배 모범이 성경에 근거하여 되어진 바이요, 이는 또한 예배의 기본서가 되는 레위기에서 기인한다. 레위기의 제례가 곧 예배서이다. 자세히 읽어 보면 지극히 간결하게 함을 시사해 준 바 있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한다. 번제물은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 피는 제사 따라 그 처리됨이 제단에 뿌리든지 제단뿔에 바르게 된다.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식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 기도에 피가 흘러야 한다. 피가 흐른다 함은 생명이 흐른다는 말이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대화함이다.
모든 제물의 지체는 깨끗이 씻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가 잘 세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말 배우는 아이 같아서 말 한절을 모르는 아이의 그 글은 한마디가 어버이를 기쁘게 한다. 그 아이 말에는 수식어란 있지 않다. 소박한 자기 뜻을 표함이다. 간결하기 짝이 없다. 어른이 되어질수록 복잡해진다.
눈치를 보게 되는 등 듣기 좋은 수식어를 구사하기에 천진성을 잃어버림을 본다. 그리하여 모든 제물은 일 년을 표준으로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우리 예배에 간결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강연에 물엿을 뽑듯이 쭉쭉 뽑으면서 말을 늘여놓는 식은 그 순서 집행이든지 설교든지 기도든지 못마땅한 것이다.
순서를 간결하게 다듬지 못할까? 설교를 간단명료하게 알차게 하지를 못할까. 기도도 그러한 것이다. 자기 기도의 위치가 어디 있음을 모른다면 안 된다. 기도의 위치를, 기도의 제목을 분명히 하면서 닦고 다듬어서 세련된 기도에 중언부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좀 간결하게 예배 순서를 가져야, 좀 간결하게 설교도, 더욱 간결한 기도가 되어져야 그 개운함이 더할 것이다.
자신에게 흐뭇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게 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