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마을 구석구석엔 70년대 모습이 그대로… 전라북도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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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불리는 옛 군산세관. 낡은 사진첩을 꺼낸 듯 그 당시의 풍경을 재현할 수 있어 군산을 찾은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다. 세관의 역할은 그 옆에 세워진 신식 세관 건물로 이전됐다. /군산=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근대문화역사 거리인 장미동을 시작으로 월명동, 신흥동 등 군산 내항 일대를 걷다 보면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군산시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1899년 개항 당시 군산의 인구는 한국인 511명, 일본인 77명 등 고작 588명이었다. 하지만 20년 뒤인 1919년에는 1만3000명으로 늘었으며 그중 일본인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무역으로 부를 일군 이들이나, 호남평야를 점거한 대지주들이 몰려 집단으로 거주했다는 증거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에 등장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일명 히로쓰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도 당시 일본인의 호사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한 일본인 히로쓰 요시사부로가 건축한 2층 집이다. 대지 1239㎡(375평), 건물 363㎡(110평)로 내부에 작은 수영장도 있다. 해방 후에는 50년 가까이 호남제분주식회사의 관사로 사용됐다고 한다. 보존의 문제 등으로 2월 말부터는 내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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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경암동 철길 마을에서 화물열차가 다니던 실제 모습. 2007년 7월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조선일보 DB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소속 승려 우치다 붓칸이 세운 절이다. 들어가자마자 태극기가 달려 있는 게 눈에 띈다. 대웅전 왼쪽의 범종각 앞에는 일본 조동종이 2012년 건립한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 비석이 있다. 참사문은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고 적혀 있다. 내부엔 시대상을 볼 수 있는 각종 영수증, 문서, 화폐 등이 전시돼 있다. 동국사로 진입하는 골목에 하나씩 자리 잡은 디자인 갤러리와 카페들이 마치 서울의 서촌 풍경을 엿보는 듯하다.
군산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곤 한다는 초원사진관을 거쳐 군산의 명물 빵집 이성당으로 향했다. "최소 40분에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대로 이미 긴 줄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오기와 포기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한다. 이성당 빵집은 1920년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이즈모야'라는 제과점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찹쌀 과자의 일종인 아라레와 일본식 전통 과자를 만들어 팔았다가 해방 후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 되면서 이성당으로 바뀌었다. 야채빵과 쌀로 만든 팥빵 등이 인기다. 군산엔 재료가 풍부하고 먹을거리들이 많아 맛집들이 많다. 복성루·빈해원·쌍용반점 등 '전국구 중국집'으로 불리는 식당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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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길 마을 담장을 덮은 벽화./최보윤 기자
최근 '출사족'들의 인기 여행지로 꼽힌다는 경암동 철길마을로 향했다. 군산항에서 약 3㎞ 떨어진 곳으로 이마트 맞은편이라고 하면 금방 찾는다. 철길마을이라 해서 과거 철로가 놓였던 공간을 관광지로 꾸며놓은 줄 알았더니, 철길 바로 옆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사람 없는 폐허인가 했는데, 어디선가 곰국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잠깐 난 겨울 햇볕을 받기 위해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도 보인다. 일제가 신문용지 제조업체에 원료를 대기 위해 1944년 군산항과 조촌동 제지공장을 연결한 곳이라 한다. '북선제지 철도' '고려제지 철도' 등으로 불리다 1970년대 이후 '세대제지' '세풍철도'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세풍 그룹 부도 이후엔 새로 인수한 '페이퍼코리아 선(line)'으로 불렸다. 가난에 몰린 사람들은 철길 주변 자투리땅에도 집을 지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실제상황이다. 총 2.5㎞의 코스 중 마을과 닿아 있는 철길은 1.1㎞ 정도.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한 시민은 "기차가 지나가는 날이면 바닥이 들썩들썩 거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며 "승무원 두 명이 기차에 매달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2007년 7월 기차는 운행을 멈췄지만, 그 빈 곳을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중간 중간 벽화도 그려진 모습이 소박하다.
군산시 문화해설사 김경희씨는 "군산을 가리켜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들 하는데, 군산처럼 빠르게 변하는 도시도 드물 것"이라며 "비응항의 풍력 발전소를 비롯해 곳곳에 들어오는 산업단지는 미래의 먹을거리로 군산을 받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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