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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9: 7 법대로 하면 - 요 19: 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요 19: 7 법대로 하면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함으로 당연히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1]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이것은 빌라도에게 대한 그들의 협박이다. 그들은 이제 빌라도의 나약함을 알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법이 있다" 함은, 하나님을 훼방한 자나 거짓 선지자를 죽일 수 있는 종교적 법이었다.
* 레 24: 16 -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 신 18: 20 -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이렇게 악한 죄인으로 여겼다. 이때에 예수님의 고통은 무한히 컸을 것이다. 진리는, 사람들이 불신앙하는 그때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한다.
* 사 1: 12-14 –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2]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요 18: 30에 이들은 처음에 "행악자"라고 고발했다. 그런데 이제야 진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들의 법대로 '신성모독'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신성모독은 레 24: 16에 돌로 쳐서 죽이도록 되어 있다.
* 레 24: 16 -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그런데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율법에 대한 이행이 아니라 자신들의 적개심으로 인해 무조건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법대로 하면 죽음에 해당한다고 빌라도에게 설명함으로 적법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요 19: 8 이 말을 듣고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
빌라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나 두려움이 있었다. 모든 사람 속에는 그런 의식이 어느 정도 있다.
1]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이 말씀은 빌라도가 이 재판에 있어서 무리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마음으로 인하여 의리대로 결단하지 못하는 약한 태도를 지적한다.
빌라도는 이 재판에 있어서 줄 곧,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점에 이르러서는 "더욱 두려워"하였다고, 이 구절은 말한다.
그가 더욱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 유대인들의 태도가 강경하여 재판건에 그를 의뢰하지 않을 듯한 기세를 보인 까닭이다. (7절 상반)
(2) 빌라도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다는 유대인들의 말(7절 하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의 그릇된 종교적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어떤 신(神)에 대한 칭호인 줄로 짐작은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죽이도록 내어주는 일도 그에게는 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재판에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예수님에게 가서 심문한 것이다.
빌라도는 이교도이지만 신들이 사람에게 와서 그들을 해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태도와 담대함에서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음이 틀림없다. 또한 그 시점에서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꾼 사실도 말해주었다.
* 마 27: 19 -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요 19: 9 어디로부터냐? -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
두려움에 사로잡힌 빌라도는 다시 예수를 관정으로 데리고 들어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빌라도는 이미 예수가 나사렛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이 질문을 하는 의미는 '너는 사람이냐? 아니면 신이냐?'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빌라도는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너는 어디로서냐?” 그는 예수께서 정말 하늘로서 온 자인지 물은 것이다. 이것은 빌라도가 예수님의 내력을 물음이다.
이것은 그가 유대인들의 말("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라고 한 말(7절)을 듣고 겁이 나서,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알아보려는 질문이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으려는 진실한 질문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벌써 빌라도에게 분명히 증언하신 바 있다.
* 요 18: 33-37 –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또다시 질문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불신실한 질문에 대하여는 대답하시지 않았다. (10-11절)
이 두 구절은 최고의 권리가 자기에게 있는 줄 아는 빌라도의 인본주의와, 모든 권세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예수님의 신본주의를 대조시킨다.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 지라.
예수께서는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다.
본 절에서 빌라도의 질문에 왜 그리스도는 대답하지 않으셨는가? 그 한 가지 이유는 빌라도가 이미 받은 계시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이미 주신 것들에 우리가 순종할 때까지는 더 많은 계시를 주지 않으신다.
10절에서의 빌라도의 장담은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그리스도를 놓아 줄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무죄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며(19: 4), 그렇게 행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써 빌라도를 논박하셨다.
* 롬 13: 1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 잠 8: 15-16 – 15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빌라도는 특별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었으며,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다.
* 눅 22: 22 -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러나 예수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사 53: 7이 성취된 것이었다.
* 사 53: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처형할 죄목으로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당하려면 예수의 주장이 근거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근거 없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었다.
요 19: 10 빌라도의 권한 -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예수께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켜 예수의 침묵으로부터 답을 얻어내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시인한 것이 되었다.
1]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다고 말하였다.
2]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는 이 말로써 자기의 무식과 교만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인간인 자기가 최후 단안을 내릴 수 있는 권세의 소유자라고 자처한다.
그것은 모든 권세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무식이다. 이런 무식은 그에게 교만을 낳아 주었다. 언제나 교만은 무식의 아들이다. 진리를 아는 자는 겸손해지는 법이다.
권세(權勢, Authority)는 남을 승복(承服)케 하는 힘이나 지배력을 말한다.
성경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고, 이 세상의 다른 권세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것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권세야말로, 승인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적 권세에 대해서도,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말한다.
* 롬 13: 1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성경에는 왕이나 하나님(롬 13: 1)에 대해서 기록되었다.
* 삼하 3: 6 -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 왕하 10: 34 - 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의 권세
* 마 7: 29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막 2: 10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 계 12: 10 -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음부의 권세
* 시 49: 15 -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 시 89: 48 -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어둠의 권세
* 골 1: 13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바울은 그 당시 여인들에게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찌니라”(고전 11: 10)고 권면했다. 모든 권세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했다.
* 골 2: 10 -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그리고 요한은 세상의 마지막에 사탄의 권세가 잠시 득세하지만 결국엔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당할 것을 예언하였다.
* 계 12: 10 -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 계 13: 2 -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 계 17: 12-14 –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 19: 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
빌라도는 자신의 권력이 로마 황제에 의해서 부여받은 사실만을 생각했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예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대답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해할 권세를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그는 예수님을 해하지 못하였으리라는 말씀이다.
* 롬 13: 1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빌라도는 사람만 보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만 보시고 진리대로 판단하신다. 정치적 권세도 하나님이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받을 수 없다.
"위에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방인인 빌라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또는 '나의 아버지로부터'라는 제자들에게 설명하실 때 사용한 어법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가진 재판 권세는 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재판관들의 재판관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의 죄는 더 컸다.
2]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있다.
Ⓐ 빌라도의 정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이 그것을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죽이는데 사용했으므로 그 죄가 더욱 크다는 뜻이다. (Calvin).
Ⓑ 슐라텔(Schlatter)은 말하기를, "빌라도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것은 죄악이다. 그러나 그 죄는, 받은 권세 없이, 또는 예수님을 잡도록 강요된 일도 없이 행동한 자들(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보다는 가벼운 것이다"라고 하였다(Pilatus Missbraucht die ihm gegebene Macht und das ist Schuld; sie ist geringer als did Schuld dessen, der ohne * handelte, den also nichts notigte, sich an Jesus Zu vergreifen.- Der Evangelist Johannes, p. 345).
예수님을 잡아서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정권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죄악은 더 크다. 이 해석이 더 유력하다. 이 말씀을 보면, 부패한 시대에 옳지 않은 교역자들이 정권에 붙어서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을 핍박함이, 무엇보다 큰 죄악임을 알 수 있다.
본문는 예수 처형의 문제에 책임을 예수님에 의해서 확실히 규명되는 말씀이다. "나를 넘겨준 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유대인의 대표기관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를 지칭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이들에게 더 큰 죄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빌라도에게는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빌라도에게도 죄가 있다는 뜻이나 자발적으로 참여한 유대의 주동자들에게 더 큰 죄가 돌아간 것이다.
"나를 네게 넘겨준 자"란 유다가 아니라 가야바에 대한 언급이다. 유대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친다. 6장 15절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고, 12장 13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찬양하였으나, 이제 그들이 그를 거절하고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의 세 번째 위기이다.
첫 번째 위기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으려 함 – 길 (6: 15) - 더 이상 그를 따르지 않음 (6: 66)
두 번째 위기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찬양함 – 진리 (12: 13) - 그를 믿지 않음 (12: 37)
세 번째 위기는 그리스도에 대한 최종적인 거부 – 생명 (19: 15) - 십자가에 못박음. 예수께서는 이미 충분한 대답을 주셨다고 생각하시거나, 빌라도가 신적 믿음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셨거나, 당신이 십자가에 지셔야 하는 일은 이미 하나님의 뜻으로 계획되신 것이기 때문에 이곳을 벗어나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게 됨으로 침묵을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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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소망 합니다.
밝은 미소와 기쁨이 가득 담은 행복에 문을 살포시 열어 봅니다.
향기에 예쁜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